웃음의 맥락
웃음의 뉘앙스, 프렌치 시크와 아메리칸 쿨
우리말과 서양어는 1:1 호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번역을 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바로 찾지 않고
문맥과 글의 맥락에 따라 우리말로 유추해 보고
이후 사전을 찾아 그 안에 열거된 뜻을 찾아 확인한다.
물론 사전을 먼저 찾고 거기에 나열된 뜻을 일일이 대입해서
문장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전체적인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단어의 의미는 문장 속에서 결정된다.
문장이 빨간색일 때는 빨간 뉘앙스의 의미로
문장이 파란색일 때는 파란 뉘앙스의 의미로
번역해야 자연스럽다.
이건 반대로 단어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단어 하나에 담긴 스팩트럼에서 적절한 의미를 찾지 못하면
그와 비슷한 단어를 찾아
상황과 문맥에 맞는 적용 해야 한다.
맥락이라는 전체 퍼즐판에
딱 맞는 퍼즐 조각을 찾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비슷한 모양새라도 넣어야 한다.
같은 색이라도 동그라미 자리에 세모를 넣어 사용하면
생뚱맞게 오해가 생기거나 소통이 막힐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외국어를 배울 때는
'하루에 단어 20개 달달 외우기' 방법보다는
상황이 보이는 대화문을 반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외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조금은 민망하고 어색하지만
작은 연극처럼 상황극을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외국어 상황극의 맹점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말로 옮길 때
적절하게 옮겨낼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감정 표현은 여전히 어렵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희로애락이지만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은
문화에 따라 너무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화의 뜻 그대로 해석을 한다 쳐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그 뜻이 변하는 사례가 자주 있다.
나는 여전히 Chic와 cool에 대응하는
우리말을 잘 모르겠다.
이 두 단어는 '시크'와 '쿨'로 옮겨도 무난하기는 한데
우리의 시크와 프랑스의 chic,
우리의 쿨과 영미권의 cool 조금은 다른 것 같다.
프랑스에서 Chic는 어찌 보면 가장 좋은 칭찬이다.
예쁘고 아름다운 외적인 이미지보다
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아우라를 말할 때 시크를 자주 쓴다.
자신만의 색깔을 세련되고 멋지게 풍겨낼 때
시크는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데 시크를 멋진, 세련된, 도도한, 도시적인
이렇게 옮겨 적으면 뭔가 아쉽다.
더더욱 옮기기 어려운 뉘앙스는
시크한 미소와 쿨한 웃음이다.
도대체 시크한 미소와 쿨한 웃음은
어떤 상황에 나오는 표현일까
시크한 미소는 거의 웃음이 보일 듯 말 듯
눈웃음도 아니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도도한 미소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회적으로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때나
당황한 순간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미소로 넘어갈 때도 시크한 미소를 보인다.
그래서 시크한 미소는
때로는 냉소적이고 냉정한 미소라고 번역할 때도 있다.
시크한 미소의 여자는
남자가 떠날 때 잡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잘 가라고 먼저 선수 치면서 남자를 보내고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에 한쪽 입꼬리만 올리면서
눈물 가득 째려볼 것 같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자존감을 지키려는 웃음이랄까?
쿨한 웃음은 상황을 지배하려는 느낌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의도적으로 상황을 긍정적으로 만들려는 웃음이기도 하다.
떠나는 사람을 잡지도 못하면서
또 울지도 않기 위해 쿨하게 웃는 남자.
속은 타들어가지만 겉으로는 의연한 척 멋진 척하는
그런 남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시크가 반사광이 담긴 회색빛이라면
쿨은 투명한 파란빛이다.
시크가 여성적이라면 쿨은 남성적이다.
남성과 여성을 괜스레 구분하면 뭇매 맡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쪽 문화에 담긴 맥락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뉘앙스로 사용될 수도 있으니까
오늘 미팅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있는 미팅이라
나름 차려 입고 시간 맞춰 갔다.
'쿨 가이'로 소문단 담당자는
나에게 '시크해요'라는 멘트를 날렸다.
10년째 입고 있는 낡은 리넨 원피스였는데....
사회적 멘트임에도 듣기 좋은 소리에 맘이 팔랑거렸다.
하지만 쿨가이는 회의 내내 쿨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그가 뿜어내는 침방울로 내 얼굴은 촉촉해졌으리라
회의 내내 내가 쿨가이 역할을 했다.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면 어색해질 상황 속에서
날이 선 대화가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의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쿨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바둥거렸다.
회의가 끝나고 비 속을 걸어 돌아오는 동안 다리가 풀렸다.
빠져나가려는 영혼을 겨우 붙들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내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왜 나는 웃음의 가면을 이리도 잘 쓰는 걸까?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 했지만
꼭 그런 것 만도 아닌 듯하다.
내가 잘 웃는 사람인데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 이상하다.
사람들 앞에서는 억지웃음 짓고
혼자 웃음 일기를 쓰며 화를 내고 있다니
뭐가 쿨하고 뭐가 시크한 건지 혼란스럽다.
오늘 마지막 웃음 일기에 이렇게 썼다.
'억지로 웃느라 아구가 아픈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