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마지막으로 웃었을까? '
'웃을 일이 없는 걸까? 아니면 내가 웃지 않는 걸까?'
어젯밤 잠들기 전 스마트 폰을 손에서 내려놓으며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잠들기 전에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날이면
내가 들리는 곳이 있다.
알고리즘으로 우연하게 추천된
한 아기의 별 스타 그램이다.
아이의 엄마는 꾸준하게 사진을 업로드 한 모양이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까지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예쁜 글과 함께 올라와 있다.
난 아이가 백일 정도 되었을 때부터 팔로우를 해서
지금도 랜선 이모로서 충실한 팬심을 보이고 있다.
아이가 자라나면서 아이의 웃는 모습이 자주 올라온다.
지금은 엄마와 옹알이로 감정의 대화를 하는 듯하다.
그 아이가 사진이나 짧은 영상 속에서 웃으면
나도 어느새 따라 웃고 있다.
요즘은 아래 윗니 4개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쌀알 미소'에 푹 빠져 있다.
코로나 전후로 일상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전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코로나 핑계로 그 전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개인 사업을 했을 때 생활 반경은 세상만큼 넓었다.
내 발로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바퀴와 날개 달린 기계들의 도움을 받으며 다녔다
번역과 창작으로 전업한 이후
내 튼튼한 다리가 주요 운송수단이다.
집과 작업실, 마트와 서점 이 네 꼭짓점을
신발이 닳도록 다닌다.
출장을 다니던 시절, 혼자 시간이 많았고
낯선 곳의 방문, 낯선 이들의 방문으로
언제나 조금은 들뜨고 긴장한 상태였다.
글밥을 먹고사는 지금은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은 많지만
잘 알고 있는 익숙한 곳으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안정적으로 무료하게 보낸다.
사람 만나 일을 했을 때는
웃지 않으면 차가워 보인다는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나는 웃는 상을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웃음이라기보다는
목적에 따른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치 화장하듯
사람을 만날 때는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씩 작업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프리랜서라 외부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으니
의도적으로 애써 웃지 않아도 된다.
마치 하이힐을 벗어던지고
운동화로 갈아타던 때만큼
억지 감정에서 벗어나 자유로웠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웃을 일 또한 없어졌다.
웃음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신체와 마음의 변화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져 생기는
마음의 물둘레 같은 거다.
혼자 있어서 외부 자극이 적으니
자연스레 감정 변화도 적어졌다.
누군가는 내 나이가 되면 세상을 달관할 즈음되어
희로애락에 대한 반응이 적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노인어르신들은
웬만한 일에 눈물도 보이지 않는 다고 했다.
하지만 웃음이 줄어든 자리에 울음이 자리 잡았다.
툭 건들면 뚝 떨어진다.
가끔은 민망할 정도로 눈물이 나와
주변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슬픈 감정은 오래 머물러 때로는
종일 우울해지기도 한다.
혼자 있다 보니 감정에 너무 솔직해진다.
그런데 거기에 반응하는 내가 좀 이상했다.
부정적인 자극에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긍정적인 자극에는 심드렁한 것이다.
이게 내 성향인지
인간의 보편적인 태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억지로 웃는 것보다
감정에 솔직한 것이 더 좋다 생각했는데
가끔은 부정적인 자극에 너무나 솔직해져
이제는 내면의 바닥을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한여름에 민낯으로 다니다가
마음의 얼굴이 새까맣게 타 버린 느낌이다.
마음이 따끔따끔 아프다
마음이 아플 때면 손글씨로 일기를 썼다.
스마트 폰이 생기고 글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손글씨 일기를 쓰지 않은지 꽤나 오래되었다.
옛날 일기장을 펼쳐봤다.
걸러지지 않은 날 감정으로 가득한 문장으로
마음이 어지럽다.
일기장에는 온통 죽는소리뿐이다.
이해되지 않은 세상과
소화되지 않는 감정의 찌꺼기가
가득한 쓰레기통이다.
성급히 덮어 버렸다.
자아 성찰과 반성에서 시작된 일기장은
온통 자기 위로와 연민이 가득이었다.
어떤 날의 기록은
'내가 이랬다고?' '내가 쓴 거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기장 행간에는
내 안의 두려움과 욕망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내 일기장에서 특이한
건 즐거운 날의 기억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평생 살면서 난 좋은 기억 즐거운 기억이 많은데
왜 그 순간들은 기록하지 않은 걸까?
'아.... 기쁜 순간들은 사진으로 남겼구나'
앨범을 펼쳐 보고 PC 파일을 뒤졌거렸다.
기쁘고 아련한 기억으로 한참을 모니터 앞에 있었다.
저 기억 속의 나는 감정을 해소할 쓰레기통이
전혀 필요 없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 풍덩 빠져 아무 생각이 없는 거다.
억지로 소화하거나 이해할 필요 없이
온통 세상이 순리대로 이해가 되는 그 행복한 순간들은
말이 아닌 이미지로 남아 있다.
아날로그식 기록 습관을 여전히 좋아하는 터라
수첩과 볼펜이 늘 나와 함께 한다.
거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을 뿐
더 이상 감정의 쓰레기도
무지갯빛 행복도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무료하고 건조한 일들의 연속인 듯
무채색의 날들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이 무채색의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직업은 타인이 보고 읽는 글을 쓰는 거다
내 생각을 쓴다고는 하지만
읽는 독자를 시청자를 무시할 수 없다.
독자들의 선택과 댓글은
또한 인기와 판매로 연결되기 때문에
독자들 즉 내 글의 소비자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일기장은 내가 쓰고 내가 읽는다.
작가와 독자가 같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보고 민망한 너저분한 감정이 아니라
조금은 순수하고 때 없이 맑은 웃음을 기록하기로 했다.
아침이면 할 일을 적고
저녁이면 해 낸 일을 두 줄로 박박 그어내는
하루 스케줄 대신,
오늘 읽은 책의 독서 목록 대신,
웃음의 순간을 적기로 했다.
행복 강박증에 빠진 것도 아니고
웃음 치료 전도사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다.
맹맹한 일상에 색 물감 한 방울을 톡 떨어트려
순진하고 솔직하게 다시 웃고 싶을 뿐이다.
다시 웃기 위해 웃음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보면서 또다시 웃고 싶다.
랜선 조카인 그 아이의 '쌀알 미소'처럼
나도 해맑게 다시 웃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