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스미디어 김창원 대표가 리얼리티 리플렉션 노정석 대표와 2005년 공동 설립한 태터앤컴퍼니는 구글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인수한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매각 이후 2년여 간을 구글 본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김창원 대표가 주목하게 된 것이 한국의 스낵 컬쳐다. 당시 한국에서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짧은 길이의 웹툰, 웹드라마가 빠르게 유통되고 있었다. 이에 영감을 얻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소량의 음식을 의미하는 ‘타파스(Tapas)’를 사명으로 걸고 북미에서 웹툰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경험한 실리콘밸리는 어떤 곳일까.
12일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개최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에서 진행된 김창원 대표의 발표를 정리해봤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 중심 문화, 회의실이 락 콘서트장 같았다
구글에 다니면서 엔지니어 중심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창업 생태계를 논할 땐 상당 부분이 투자 쪽에 초점을 맞춘다. 그 점이 안타까웠다. 물론 투자와 창업 환경 조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뛰어난 개발자들이 얼마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처음 구글에서 회의를 했을 때 ‘락 콘서트장’인가 싶었다. 회의 시간의 대부분이 프로덕트 데모 시연에 소비된다. 시연이 성공적이면 박수 치고, 휘파람 불고 난리가 난다. 문제가 생기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쪽 구석에서 ‘나 해결했다’는 소리가 나오더라. 멋있었다.
나는 국내 대기업에도 있었는데, 그 때 문제를 해결했던 방식과는 너무나 달랐다. 대기업 당시 내가 배운 것은 전화하는 요령이다. 협력사에 전화를 해서 ‘사장님, 이러시면 조금 어렵다’고 말만하면 그 다음 날 문제가 기적처럼 해결되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모든 것이 엔지니어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프로젝트 매니저는 엔지니어를 설득하기 위해 데이터를 찾아야 한다. 엔지니어가 못한다고 하면 끝이다. 이런 개발자 중심 문화 덕분에 실리콘밸리가 기술로 세상을 먹어치울 수 있는 거다.
경쟁도 치열하지만, 그 이상의 시장 가능성이 있는 땅
당연히 실리콘밸리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우버나 리프트를 봐라. 가끔 정말 치사하게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보다 더한 경쟁 사회는 없더라. 미국의 경우 아무리 경쟁을 해도, 각 회사가 노릴 수 있는 시장이 몇천 조 규모로 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신감과 여유가 기저에 깔려있는 것 같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학습된 낙관주의
투자 부분에서 이 학습된 낙관주의가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내가 아는 VC(벤처캐피탈)이 말하길, 이전에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 왔더니 왠 이상한 애들이 머리도 안 감고 와서 턱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더라는 거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에 필터를 입혀서 공유한다는 둥, 좋아하는 사진을 보드에 건다는 둥 어이없는 소리를 하길래 다 돌려 보냈다고 한다. 이 기업이 나중에 인스타그램이 되고, 핀터레스트가 되었다 한다. 절대 성공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비즈니스들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서 이제는 말이 안되보이는 아이디어도 한번쯤은 다시 검토해보게 됐다고 하더라. 실리콘밸리의 이런 학습된 낙관주의가 더 많은 시도와 도전을 해볼 수 있게 하는 토양을 만든다.
미국 진출하고 싶다고? 한국이 아닌 ‘서울’이라는 도시 단위로 구상해라
한국에서 미국에 맞는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게 될거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샌프란시스코 사는 사람과 미국 농촌에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은 판이하다. 오히려 샌프란시스코와 서울 간 공통점이 더 많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단위가 아니라 도시 단위로 서비스를 구상해야 한다.
서울은 도시화를 마친 거대 도시고, 그 주변에 상해, 도쿄 등 큰 도시가 많다는 강점이 있다.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면 서울을 베타 테스터로 삼아야 한다.
우버와 테슬라의 공통점은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플랫폼을 만들려면 아주 초기 단계라 할지라도 80, 90%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우버는 리무진 서비스를 공들여 만들었고, 이를 우버 엑스로 확장했다. 테슬라도 스포츠카 만들 때 세웠던 공장과 설비 시설로 전기차를 만들어낸다. 처음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지만, 확장성이 좋다. 한국 기업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서울을 기반으로 플랫폼을 잘 구축해놓으면, 글로벌 확장에 용이하다.
미국 진출은 편견에 대항하는 하나의 방식
더 많은 창업가들이 실리콘밸리로 왔으면 좋겠다. 이러한 도전들이 모두 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구글에 있을 때 미국인, 호주인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다. 가만 보면 한국인들은 자기 할 일을 잘 해내고도 겸손한 탓에 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이나 호주인들은 말을 너무 잘한다. 해외 살다보면 그런 경험 많이 할 것이다. 우리가 창업을 하고 한국인으로서 글로벌 시장에 나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시안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