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래텀 Jul 12. 2016

도시인이 농부의 이름을 아는 세상을  꿈꾼다.

농부의 불안함을 해소하겠다는 것이 농사펀드의 출발이었다.”


농사펀드는 농부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표방하는 서비스다. ‘빚 없이 내 철학대로 농사짓고 싶은 농부’들을 위해 대중으로부터 영농 자금을 모아준다.


대학 3학년 때부터 13년간 농촌 관련 일만을 해왔다는 박종범 대표. 무엇이 그를 ‘농촌 일 말고 다른 건 안 해’라고 마음먹게 했을까. 자칭타칭 ‘농촌 기획자’라고 불리는 그를 직접 만나봤다.



나는 ‘농촌’ 기획자다.


나 자신을 ‘농촌기획자’로 정의했다. 우연히 대학 졸업 전 입사하게 된 첫 회사에서 농촌 컨설팅 일을 맡게 됐다. 그 이후로 13년간 농촌과 관련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만들며 살아왔다. 농촌 마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역사와 사람 간 미묘한 알력 관계를 파악해야 된다. 방법? 자주 출장을 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시 회사 입장에서는 출장 횟수를 줄일수록 이익이었다. 그때부터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활용해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후 ‘총각네 야채가게’에서도 온라인 사업 마케팅 담당을 맡았다.


나는 농촌 ‘기획자’다.


어떤 기획을 했었냐고? <농촌 레인부츠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다.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골이 깊은 마을이 있었다. 한 무리의 중견 예술가들이 우르르 귀농을 했는데, 이들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고 원주민 입장에서도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생활 방식이 게으르게 보여 갈등이 심화된 상태였다. 그래서 두 집단을 연결하는 매개체를 장화로 잡고, 농부들이 매일 신는 장화에 예술을 입혀드렸다. 회사 일이 없는 주말에 짬을 내서 했고, 친환경 기업이나 지자체에 직접 기획서를 올려 자금을 마련했다.


<농사펀드> 역시 농촌기획자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건 아니다. 프로젝트 규모를 조금씩 키우다 보니 그게 창업이 된 거다. ‘총각네 야채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시절, 블로그에서 농부를 위한 모금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더니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몇 있었다. 그래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첫술에 배부른 법 없듯 2013년에는 모금이 50%밖에 안 됐다. 다음 해에 문제점을 보완해 다시 도전했더니 1,300만 원이 모였고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별도 프로젝트로 진행하다가는 한 해에 많아도 두 세 개 밖에 다루질 못하더라. 이 일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농사펀드다.


21세기형 노비가 만들어지고 있는 농촌의 현실.


농부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빚 없이 농사 짓고 싶다’는 거다. 그게 그 사람들 꿈이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규모가 큰 대농의 경우 국가의 지원 자금을 받을 기회가 많다. 사업계획서를 써서 내면 자부담 10%로 억 단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나중에 갚을 필요도 없고.


하지만 국내에서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중소 농가 비율이 85%다. 농사지을 돈이 없어지면 농협에서 대출을 받는 게 정상이다.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냥 일반 금융사와 똑같아졌다. 신용 평가만으로 대출을 거절해버리는 거다. 소농들은 자기 땅 없는 경우도 많고, 땅도 임대하다 보니 자산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농협에서 거절하면 제2금융권으로 가게 되는데 이자율만 20~30%다.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지역 유지랑 은행에 같이 가서 그 사람 이름으로 대출을 받는다. 사채랑 비슷한 높은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돈 빌려서 농사지었는데, 그해 재해를 입거나 농산품 가격이 폭락하면 돈을 못 갚는다. 두세 번 농사가 망하면 파산이다. 농부에게 있어 파산은 자기 농사를 접는 거다. 그리고 큰 대농에 노비, 그러니까 소작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고용 조건도 형편없다. 하루하루 4~7만 원을 받으며 연명해 나가는 거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다.


그래서 농사펀드가 정확히 뭐냐고?


농부가 농사 자금을 안전하게 모을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사이트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하고, 펀딩이 완료되면 리워드 방식으로 농산품을 가정에 배송해준다.


농사펀드에서는 몇 가지 기준으로 프로젝트 농가를 선정한다. 3, 4년 간 지켜보며 소신 있게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부터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현재 농사펀드가 목표로 하는 것은 전체 107만 농가 중 친환경 안전 농사를 짓는 22만 가구, 그중에서도 자기 철학을 지키면서 농사를 짓는 9만3천 농가다. 현재 180가구가 농사펀드와 함께하고 있다.


시장은 언제나 크고 탐스럽고 반짝거리는 농산물만 원한다.


예를 들어 나뭇잎 그림자가 져서 하얗게 바랜 사과는 제값을 받지 못한다. 이를 위해 빨간 착색제를 바르고, 과수원 땅에는 반사 필름을 깐다. 자칫하면 사과가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피해는 고스란히 농부에게 돌아간다. ‘사과는 사과대로의 생김새가 있다’는 자연스러운 명제를 대중에게 교육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농약 치는 농부는 안 받냐고?


그렇진 않다. 화학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는 농가도 프로젝트로 올릴 때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 간에 걸쳐서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할 의지가 있는 농부들에 한한다. 또 언제, 몇 번 제초 작업을 했는지를 밝히게 되어있다. 쓰고도 안 썼다고 거짓말하는 농가는 제외된다.


실제 농부를 추천받으면 주변 지인을 통해 그 농부에 대한 레퍼런스 체크를 먼저 한다. 그리고 실제 농가에 방문해서 창고나 논두렁이 쓰레기를 다 뒤집어본다. 농약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농산물이 배송되지 않을 걱정?


농부님들에게 모금 금액을 나눠서 정산해드리고 있다. 처음 선금액을 드리고, 배송이 다 끝나고 송장 번호를 확인해 이상이 없을 때 나머지를 정산해드린다. 크게 문제 된 경우는 없다.


돈은 어떻게 버느냐고?


작년 한 해는 크라우드펀딩 수수료 모델로만 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B2B 모델도 실험 중이다. 요식업소 정기 배송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작은 레스토랑이나 신선 배송 기업에서 채소나 과일류 제공을 우리에게 의뢰할 때가 있다. 이때 농사펀드와 일하는 농부들 4, 5명을 묶어 식자재 납품을 연결해주는 중간 역할을 우리가 하게 된다. 벌써 몇 건 정도 계약이 완료됐다. 또 농산품에 대한 전반적인 브랜딩 작업도 점점 늘려갈 예정이다.



<후원하기>가 아니라 <농사 함께 짓기>.


말 그대로다. 투자자는 자기가 직접 몸을 쓰지는 않지만, 농부에게 투자함으로써 그해 농사를 함께 짓게 된다. 작물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재해로 얼마만큼의 피해가 있었는지 등 농가 소식을 우리가 메일로 전달해준다.

내가 돈을 낸 농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A라는 농부에게 투자했다면, 그가 그해 농사를 잘 지어야 우리 집으로 농산품이 도착하는 거다. 이 관심을 농부에 대한 ‘응원의 한마디’로 표현하게 만들어놨다. 농부 입장에서는 그런 피드백이 힘든 농사를 포기하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누군가 나를 믿고 투자를 해주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 농부가 딴짓을 잘 못한다. 열심히 농사지을 수밖에 없다.


농촌에서 번 돈은 농촌에서 쓰여야 한다.


농업 먹거리가 존재하려면, 농사짓는 사람과 그가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농촌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 이름은 농사펀드지만 사실 농사뿐 아니라 농업과 농촌 전체를 다 포함하고 싶다. 그래서 조만간 강릉의 게스트하우스를 복원하는 펀드 상품을 만들 예정이다. 농촌 공동체를 활성화 시키고,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 혹은 연구도 우리의 일이다.


강릉 해안가 주변의 숙박업 건물주가 모두 외지 사람들이라는 것 알고 있나? 마을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마을에서 벌어들인 돈이 마을에 쓰여져야 한다. 숙박업으로 돈을 번 주민이 마을 공동체 세탁소에서 세탁을 하고, 마을 도서관에서 아이를 기르고, 마을 마트에서 장을 봐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농촌에서 벌어들인 돈이 모두 서울로 올라간다. 관광 명소가 돼도 농촌은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지는 거다. 그래서 마을 공동의 게스트 하우스를 살리는 작업은 매우 중요했다. 앞으로도 농촌 공동체를 살릴 수 있는 일에 농사펀드가 기여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다.



‘도시 사람 한 명이 농부 한 명의 이름을 아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일차적으로는 물론 농부가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복잡한 중간 유통 과정 없이 직접 거래해서 농부에게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말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농사펀드가 하고 싶은 일은 ‘도시민과 농부를 연결하는 일’이다. ‘내 쌀을 책임지는 농부는 OOO 씨야’, ‘내 사과를 책임지는 농부는 OOO 씨야’ 하는 식으로 도시민이 농부의 이름을 아는 세상. 농부는 내가 지어낸 농산품을 누가 먹고 있는지 알게 되는 세상. 먹거리를 매개체 삼아 서로가 서로에게 ‘덕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이걸 어떻게 서비스로 구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리의 숙제다. 앞으로 준비하는 앱 개발도 그런 쪽에 집중되어 있다. 내가 투자한 농부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농사 과정을 지켜볼 수도 있으며, 메신저를 통해 농부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앱을 만들고 있다. 자신의 농사를 응원하는 사람 100명만 있으면, 그 농부는 걱정 없이 농사짓고 살 수 있다.


농사펀드의 성공을 확신하느냐고?


모든 일에 100%가 있겠나. 그냥 하는 거다. 다만 전체 농가 85%의 농부가 우리의 파트너가 되고, 이들의 필요는 명확하다. 판매 안정성을 확보하는 거다. 도시민들은 먹거리에 관해 국가인증제도도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좋은 먹거리를 팔고 싶고, 사고 싶은 사람. 이 둘을 연결함으로써 계속해서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 본다.


또 요즘 젊은 층의 귀농이 늘어나고 있다. 그 친구들이 농촌에 갔을 때 농사 기반을 만드는 방법으로, 농사펀드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시야를 넓히다 보면 꽤 많은 사람과 이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목표? 제 기능을 잃은 농협을 대체하는 것.


단기적으로는 올해 연말까지 500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거다. 지금까지 190개의 프로젝트가 올라갔다. 앞서 말했던 B2B 수익 모델도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제 기능을 못 하는 농협을 대체하는 게 목표다. 농부가 안정적으로 농사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 싶다.


TO. 농부 여러분,


아직 농사펀드도 초기 단계이다 보니 필요한 영농 자금을 100% 다 마련해드리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믿고 약속대로 농사를 지어주시는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고요. 철학을 지키면서 농사 짓다보면 소비자들도 분명 알아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농사펀드는 중간에서 철학대로 농사짓는 농부님들을 돕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지금처럼 믿을만한 농사를 지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 경영? 답은 직원에게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