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뮤즈트래블 오서연 대표
장애인이 편리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라고 답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장애인에게 특화된 여행 상품을 제공하고 있는 어뮤즈트래블(amuse travel)이다.
어뮤즈트래블은 2014년 설립되어 2015년에는 한국관광공사 문화창조벤처단지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올해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삼성전자 기술 나눔 사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지난 2월 본격적인 관광 상품 판매를 시작하면서, 올 1분기에 3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많은 금액이 아닐 수 있지만, 장애인 여행 시장의 존재만큼은 분명히 증명해 보인 것이다.
향후 ‘장애인 에어비앤비’ 모델로 세계 무대에 진출하고 싶다고 밝힌 어뮤즈트래블 오서연 대표를 직접 만나봤다.
착한 사업이냐고? 되는 사업이다.
장애인 여행 기업이라고 하면 우리가 사회적 기업이나 봉사 단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분명한 영리 기업이고 고객인 장애인의 니즈에 합당한 상품을 제공하고 돈을 번다. 시장을 확신했기에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전에 대기업 기획실에서 사업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고, 예산 관리를 했던 사람이다. 돈 관계에서는 상당히 민감하고 꼼꼼하다.
국내에만 장애인이 250만 명이 있고 일본에는 1,500만 명, 미국에는 4천만 명이 있다. 해외 장애인이 1년 동안 여행에 쓰는 돈은 평균 180만 원이라고 한다. 이미 미국, 유럽권 장애인들은 동남아 여행을 즐기고 있다. 국내 장애인이라고 욕구가 없을까. 이들은 물질적 욕구보다는 정신적인 감동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특히 우리의 주고객인 지체 장애인들은 체육이나 여행과 같은 육체적 활동이나 체험에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직접 만나보니 여행을 정말 가고 싶어 하더라. 올해 1월부터 시작해서 상반기에만 3천만 원 매출을 올렸다.
보이지 않는데, 움직일 수 없는데 여행은 해서 무얼 하느냐고?
일반 관광객이 ‘천지암 코스를 방문해서 폭포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여행이라고 부른다면, 시각 장애인에게는 ‘폭포의 소리를 즐기고, 주변 바위를 만져보고, 천지암의 향기를 맡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여행의 방법이 있다.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사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 ‘장애인’과 ‘여행’이라는 두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거다.
분명히 일반인과 장애인의 여행법은 다르다. 이를테면 지체 장애인의 경우 소화 능력도 약하고 이동을 많이 못하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해야 한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는 식당 주인과 우리 고객 모두가 불편하기 때문에, 몰리는 시간 앞뒤로 예약을 한다. 식사 시간도 2시간으로 넉넉하게 잡는 식이다. 시각 장애인의 경우 고성에 가서 잣나무 향 가득한 숲길을 따라 걷고, 지역 명물인 판소리를 들려준다. 식당에서 전을 먹으며 지역 문화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들려준다. 이런 컨셉이라면 꼭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원가 구조도 낮출 수 있다.
우리나라를 한 해에 방문하는 실버·장애인 관광객이 60만 명이나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 관광객의 불만도 많고, 시설도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선호도가 높은 국가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일본의 경우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유럽의 경우 장애인 관광객 선호도 1위 도시가 로마다. 그런데 로마는 장애인들이 여행하기에 편한 곳은 아니다. 시설도 열악하다. 결국은 인식 문제인거다. 좀 불편해도 옆에서 누가 도와주기만 하면 여행할 수 있다. 계단이 있으면 옆에서 잡아주면 되고, 식당에 턱이 있으면 종업원이 나와서 도와주면 된다. 로마와 서울은 시선과 인식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실버·장애인 관광객이 줄어드는 추세다. 한류 콘텐츠만으로는 지속적인 해외 관광객 유치에 한계가 있다.
싸워서는 장애인 인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장애인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싸우거나, 읍소하는 방식은 맞지 않다고 본다. 비장애인들이 자연스러운 소비 속에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만드는 게 우리의 전략이다. 우리가 장애인 여행 상품 뿐 아니라 일반인 여행 상품도 같이 하는 이유다. 일반인들도 어뮤즈트래블을 통해 여행할 수 있는데, 그 수익 중 10분의 1을 장애인을 위해 기부한다. 또 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한 단체 관광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이 기업이 여행과 동시에 기부도 했다는 내용의 콘텐츠를 만들어 홍보했더니 반응이 좋더라.
우리나라가 장애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문화 자체가 없지 않나. 억지로 끌고 오기보다는 여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식 변화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엔 알래스카가 없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측에서도 장애인 여행 쪽은 투자 대비 효율이 좋은 분야다. 이들은 새로운 관광 상품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자연 경관을 만들어내거나 큰 건물을 세우려면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아기자기한 곳이 많다. 쓰리센스(3sense, 후각·촉각·청각)를 부각시키면,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장소들에도 관광적 가치를 더할 수 있다. 뻔한 페스티벌, 뻔한 장사 활동 들로 상당히 많은 관광지가 망가져있다. 일단 정부 측이 움직이게 하려면 사례를 보여줘야겠지. 그런 마음으로 장애인 특화 상품들을 발굴해가고 있다.
장애인 여행의 에어비앤비가 되고 싶다.
오프라인 관광 상품과 동시에 준비하고 있는 것이, 온라인 관광 사업이다. 어떤 방식이냐고? 쉽게 말하면 장애인용 에어비앤비를 만드는 거다. 일반인이 호스트가 되어 장애인에게 집을 빌려주고, 더 나아가 직접 가이드 역할도 하는 모델이다. 초기에는 장애인 가족과 장애인 봉사 활동을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호스트 제안을 할 예정이다. 현재 이상엽 장애인 인권 영화제 위원장도 호스트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플랫폼 모델은 자신이 있다. 에어비앤비도 소수의 충성 고객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인데, 여행 분야에 있어서 장애인 역시 대단한 충성 고객이다. 여행에 대한 니즈도 많고, 검증된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공유경제 모델로 해외로까지 진출하고 싶다.
호스트 확보가 어렵지 않겠냐고?
사실 제일 문제가 호스트다. 게스트는 니즈가 확고한 편이다. 하지만 호스트 입장에서는 사회적 인식 문제도 있고, 아무래도 손이 가는 일이 많다 보니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많은 사례를 만들려고 한다. 먼저는 장애인 봉사 단체, 종교 기관을 중심으로 접촉하고 있다. 또 사회복지 학과 출신의 평균 소득이 높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수입원을 늘려나가고자 하는 니즈가 있다. 가이드 등의 활동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어필할 수 있을 거다.
스토리텔링에 기술을 더한다.
오는 9월 테크크런치를 시작으로 11월에는 세계관광박람회(WTM)과 핀란드의 슬러쉬(SLUSH) 행사에 참여한다. 해외 관광객에게 우리의 존재와, 우리가 가진 기술적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현재 우리가 도입하고자 하는 기술은 비콘(beacon)이다. 관광객의 스마트폰을 통해 위치를 인지하고, 특정 위치에 들어서면 그 지역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을 음성으로 들려주는 방식이다. 조향 업체와도 협의 중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향기를 뿜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제주도 바닷가 냄새’, ‘고성 잣나무 냄새’ 등 여행 다녀온 지역을 기억하게 만들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고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올해 내 2억 매출이 목표다.
숫자가 아니라 이게 ‘되는 사업’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앞서 말했듯, 싸우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걸로 설득해야 된다. 우리 모델을 통해 많은 해외 관광객이 유치되면, 정부나 지자체도 안 움직일 이유가 없다. 우리의 슬로건이 ‘모두를 위한 여행(Travel for all)’이다. 여행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나가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싶다. 열심히 하겠다.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