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첫 필름 카메라
필름 카메라에 대한 첫 기억은 중학교 3학년 수련회를 떠나기 전 엄마가 쥐어 준 일회용 필름 카메라이다.
기억나지 않는 먼 어린 시절부터 동네 구석구석 골목 어귀나 놀이터에 나를 데려가서 셔터를 눌러주던 엄마의 모습이 드문히 기억나지만, 내 손에 쥐어진 첫 필카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시절의 그 모습은 그때뿐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열심히 흔적을 남기고 그 시절을 온전히 보관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걸 엄마는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엄마는 이제 혼자 찍고 싶은 것을 찍고 오라며 16살 어린 내게 일회용 필카 두 대를 주셨었다.
카메라를 쥐어주기엔 내가 못 미더울 나이였고, 그냥 감아서 셔터만 누르면 되는 일회용이 제격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엄마의 의도와는 다르게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거의 반 이상 담아왔었다. 현상을 맡겼던 엄마가 나에게 와서는 왜 너의 사진이 이렇게 없냐고 아쉬워하셨을 정도로.
본인의 딸인 내 모습을 많이 담기를 원하셨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그 시절 친구들의 앳된 모습을 잘 간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엄마에게 감사하다.
또 한 가지 기억은 새해를 보러 떠났던 마지막 가족여행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름 카메라가 그저 일상적으로 쓰이는 특별할 것 없는 물건이었으므로 동네 곳곳엔 사진관이 적어도 한 군데 이상씩은 존재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난 2000년대 중반 즈음부터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때 엄마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동네 사진관에서 현상해 준 마지막 가족여행 사진이 아직 있다.
철없이 멋도 모르고 이 일상 속 온기 어린 부대낌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여행에 대한 감상이 그저 차를 몰고 오래가야 하는 정동진에 다녀왔구나 정도였던 어렸던 나.
그때 해안가를 빙 둘러 걷던 가족의 모습에 행복해하던 엄마의 모습이 여전히 겹쳐 보인다. 그때도 엄마는 나와 가족의 모습을 아낌없이 남겨주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나서부터 엄마의 사진이 거의 없었다. 왜냐면 항상 찍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거슬러 올라간 나의 어린 시절에 필름 카메라는 엄마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요즘도 가끔 내가 휴대폰으로 전송한 사진들을 인화해서 간직하거나 나에게 선물을 주시기도 하는 걸 보면 여전히 실물사진을 좋아하신다.)
그러다 우연히 작년 초에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제주도 작은 책방 안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함께 들어간 비닐 포장지 안에 안락하게 존재하고 있던 일회용 카메라.
유리 보관함 안에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하나 남은 것을 홀린 듯 꺼내어 이리저리 돌려보곤
‘이거 판매하는 물건인가요?’라고 여쭤봤었다.
책방 주인의 끄덕임에 마치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 마냥 머리 끝이 삐쭉 서던 그 순수한 기쁨이 여전히 살갗에 여열처럼 남아있다. 아직도 그때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미지수다.
거의 10년이 지난 후 다시 마주한 필름 카메라 한 대를 구입해서는 애지중지하며 한 컷 한 컷 남겼다.
제주의 겨울은 필름 카메라로 담기에 적절했고, 날씨도 끝내주었던 그때가 내가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첫 롤이다. 여전히 나의 모습이 거의 담기지 않은 컷이 대다수인 롤이었지만, 36컷을 온전히 채우기까지 기다렸던 한 달과 현상을 기다리던 그 길고 길었던 3일의 시간은 설렘에 잠 못 이루는 풋사랑의 기억처럼 모든 걸 감수하게 했다.
필름 카메라를 보면 가끔 기억 속 그때의 엄마가 떠오른다. 어렸던 시절을 기억력이 나쁜 내가 그나마 선명히 그 시절 친구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해 준 사람. 나의 보이지 않는 족적을 남겨준 사람. 카메라를 좋은 기억으로 남게 해 준 사람.
그 찰나를 박제하여 가장 근접한 색에 가깝게 남겨무심히 지나치는 이 순간순간을 남겨주는 고유한 시간의 지문. 그 지문을 대신 남겨준 엄마.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이 모든 순간은 다 고귀하고 소중한 장면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셨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끔.
운명처럼 난 10년이 지난 지금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만의 고유한 족적을 남기고 기꺼이 보존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꾸준히 흥미를 느끼는 일이고, 애정이 많은 취미라 소중한 나의 카메라 미놀타와 함께 엄마의 족적 위를 되짚어 걷는 중이다.
기꺼이, 엄마의 사랑을 답습하며 나를 다독이며 시간의 옷깃을 조심스레 당겨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