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고 싶었어요, 아이와 함께

by 마잇 윤쌤

십여 년 전, 아이를 낳고 처음 알게 된 단어가 있었어요. 그 단어는 "맘충"이었죠.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방치하거나 잘못된 육아 방식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는 엄마들을 비하하는 단어였지요.


그런 상황에 불편함을 느꼈던 적도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벌레"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이 사회가 너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벌레"가 될 수도 있겠다고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런 날이 있거든요.


아이가 어릴 때는 유모차를 끌고 외출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어요.


갈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늘 한참을 기다려야 했죠.


유모차가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건 엄마의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어요.


식사를 하러 가면, 아이가 시끄럽지 굴지 않도록 더 많이 다그쳤고, 그만큼 엄마인 저도 더 많이 눈치를 보았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어 함께 찾았던 한 카페에서는, 주문을 하는 곳에서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노키즈존"이라는 안내문 하나 없던 곳이었는데 말이죠.


그 순간, 저는 딸아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민망했어요. 입장을 거부당할 이유도, 잘못도 아이에게는 없었으니까요.


그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도 솔직히 정말 싫었어요.

그 흔한 안내문구도 없이 단순히 안전상의 이유로 어린이 입장을 제한한다는 것도, 핑계 같았습니다.


딸아이 초등학교 운동회날도 마찬가지였어요.

며칠 전부터 양해를 구했음에도,


아이들이 뛰고 웃는 소리는 "소음 민원"으로 멈춰야 했지요.


아이를 낳은 기쁨은 정말 큽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희생과 어려움이 함께 따라와요.


아이에게 장애나 발달 지연 같은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온 가족이 "희생"해야만 하는 구조 속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현실을 더 미리 알았다면,

저도 임신과 출산을 다시 고민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라고만 했지,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아이와 함께 환영받고 싶었어요.








오늘도 마음을 잇는 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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