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일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듣고서

by 마잇 윤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에 잠겼습니다.


누군가 "요즘은 그냥 적당히 일하는 게 더 좋더라"라고 말했을 때, 유난히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적당히 일한다는 건 어떤 걸까,

'적당히' 해본 적이 있었나...


딸아이가 4살, 5살 때, 저는 팀장이었습니다.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젊은 나이에 승진을 했고,


동시에 어린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또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열심히'라는 이름으로 저를 몰아쳤던 것 같습니다.


3개월에서 6개월에 한 번씩은 급성 장염으로 응급실에 실려갔고, 그 사이사이 링거와 영양주사는 일상이었습니다.


몸은 신호를 보냈지만, 저는 그조차도 버텨야 할 과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날도 장염으로 고열과 구토가 이어져 결국 저녁에도 문을 여는 365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퇴근 후에야 엄마를 만난 딸아이는 "엄마 옆에 있을 거야" 하며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링거를 한 시간 넘게 맞아야 했고, 남편은 편의점에서 간편식을 사와 작은 보호자 침대 위에서 딸아이를 먹이며 기다렸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오후부터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일 행사가 있으니, 회의는 마치고 가야 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의 제가 떠오릅니다.


몸이 무너져도, 마음이 이미 '버텨야 한다'는 기준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겠지요.


저에게는 월급보다 중요한 제 자신의 기준이 있었고,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보증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괜히 마음이 차가워졌습니다.


일이 이렇게 많은데, 야근을 안 한다고?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죠.


야근수당 한도가 정해져있는 구조에서 누가 자발적으로 남아서 일을 하겠어요.

구조적으로 잘못된 문제를 개인의 열정으로 덮으려고 했던 제 기준이 큰 문제였던 겁니다.


사실 그 누구도 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회사의 분위기를 읽은 제가 스스로 세운 기준에 저를, 그리고 모두를 억눌렀습니다.


어쩌면 그 기준은 애초에 제 안의 잘하고 싶었던 욕망과 신임 팀장으로서의 불안함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알고 있어요.

열심히 사는 건 나쁜 게 아니라,


'어디까지 해야 나다운가'


'어떻게 해야 나를 잃지 않으며 열심히 살 수 있나'를 스스로 정하지 않으면, 삶이 언제든 일에 삼켜질 수 있다는 것을요.



요즘은 그 기준을 조금 낮추려고 합니다.

낮춘다기보다 부드럽게 다듬고 있습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고,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자주 말해주려고 합니다.


완벽함의 이름으로 몰아치던 그 시절을 지나, 이제는 저만의 속도로 살아가려 합니다.








오늘도 마음을 잇는 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을 잇다 : 마잇 윤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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