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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Mar 13. 2022

장미와 보아뱀과 여우, <어린 왕자>

여러분, B612로 함께 떠나요!


▲ 소설 <어린 왕자>

이 소설 모르는 사람 있어요?


여기, 화가의 꿈을 품었던 한 비행사가 있어요. 그는 어릴 적부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직접 그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자신 있게 어른들에게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어른들은 그림에 관심을 갖기는 커녕, 오히려 그림보다는 다른 것에 흥미를 가질 것을 권했죠. 이에 낙심한 그는 화가라는 꿈을 접고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해요. 그러나 마음 깊은 곳 한 켠에는 그림에 대한 사랑을 숨겨 놓은 채 언젠가 자신의 그림 세계를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나길 바라고 있었죠.


어느덧 어른이 되어 세계 곳곳을 비행하던 그는 예상치 못한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하게 돼요.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훗날 자신에게 잊지 못할 깨달음을 선물할 어린 왕자를 만나죠.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어린 왕자는 불현듯 비행사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 부탁해요. 이에 비행사는 어린 시절 그렸던 보아뱀 그림을 조심스럽게 보여주었죠. 자신의 그림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어른들과는 달리, 어린 왕자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봐요. 이에 크게 감동한 비행사는 어린 왕자가 자신과 대화가 잘 통할 사람임을 느끼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누죠.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끝에 비행사는 곧 어린 왕자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요, 사실 어린 왕자는 다른 별에서 살던 존재였어요. 그가 살던 곳은 B612라는 소행성으로, 그곳에는 그가 소중히 여기는 장미 한 송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장미를 두고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을 떠나 지구까지 오게 된 건, 자신의 친절함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 장미에게 화가 나 그 오만함을 꾸짖기 위함이었다고.


그렇게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 긴 여행을 거쳐 마지막 행성인 지구에 도착하죠. 지구에서 그는 우연히 한 여우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요, 이를 통해 자신의 친구인 장미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돼요. 지구의 다른 장미들과는 달리, B612의 장미는 어린 왕자가 소중히 아끼고 시간과 정성을 쏟은 친구이기에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이후 어린 왕자는 다시 장미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별로 돌아가게 되고, 이를 마지막으로 어린 왕자와 비행사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고!


여러분도 알고 계실 법한 소설 <어린 왕자>, 오래 전에 읽었었는데 다시 만나니 너무 반가워요! 그런데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른데요?

▲ 영화 <어린 왕자> 속 어린 왕자와 장미, 출처: 네이버 영화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어린 왕자>


맞아요. 소설 <어린 왕자>는 다시 읽으면 읽을수록 어린 시절에엔 미처 발견하지 않았던 것들 보이면서, 읽는 시점에 따라 감상도 달라지기로 유명한 작품이에요. 어린 시절에 읽을 때는 거대한 바오밥나무의 모습과 어린 왕자의 흥미로운 모험에 눈길이 가곤 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본다면 우정, 책임인연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여우의 말이 더 크게 다가온다고 하죠. 이렇듯 <어린 왕자>를 통해 어른의 시점에서 주변을 돌아보고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거라고. 

또, <어린 왕자>는 읽는 사람에 따라 소설 속 ‘장미’를 다르게 평가하기도 해요. 어떤 독자는 어린 왕자의 친절함을 당연하게 여긴 장미를 이기적인 존재라 느끼는 반면, 혹자는 어린 왕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싶었던 장미가 그에 대한 고마움을 잘 표현하지 못했음을 안타깝다 여기죠. 이에 더해 어린 왕자와 장미를 보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과는 달리 서투르게 행동하다 다투기도 하는 실제 연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독자들도 있다고!


어렸을 때는 그저 장미가 나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다시 보니 장미의 마음이 이해되는 것 같아요! 그저 단순한 동화책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니! 이렇게 매력적인 소설을 쓴 작가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 프랑스 대표 작가, 생텍쥐페리, 출처: 중앙일보

비행기와 사랑에 빠진 작가 


소설 <어린 왕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생텍쥐페리에 의해 탄생했는데요, 생텍쥐페리는 독특하게도 소설가이자 비행기 조종사이기도 했어요. 어릴 적부터 문학을 좋아했던 것만큼이나 비행기 조종에도 큰 애정이 있었던 그는, 성인이 되어 공군 장교로 활동하기까지 했죠. 


우선 생텍쥐페리의 '비행 인생'에 대해 살펴보자면, 그는 20살이라는 나이에 공군 입대를 결심해 입대 후 민간 조종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어요. 게다가 그는 비행기 정비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다양한 비행기들을 정비하기도 했죠. 이렇듯 비행기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생텍쥐페리는 전역한 후에도 민간 항공사에 취직해 조난 비행사를 구조하거나 직접 항공기를 수리하는 등 비행기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해냈다고 해요. 그가 비행사로 활약하던 1920년대에는 항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마음껏 이륙할 수 있는 비행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걸 보면, 비행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마음이 얼마나 특별한지 알 수 있죠. 심지어 잦은 비행기 사고로 두개골이 골절되어 비행기를 조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음에도 비행기에 대한 열정과 타오르는 애국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고!

▲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비행기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무한한 애정은 그의 문학 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어요. 그는 그만의 조종사 경험을 살려 그의 첫 작품인 <남방우편기>를 1929년에 발표했는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비행기로 우편물을 배달했던 경험을 녹여냈죠. 이후 1931년에 발간한 <야간비행>은 그가 항로 개척에 참여했던 경험과 비행기 조종 중 자신이 느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해요. 그리고 이 작품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비행의 고독함을 밤하늘이라는 어두운 배경 안에서 훌륭하게 묘사했다는 찬사를 이끌어냈죠. 이렇게 ‘비행’을 주제로 한 두 작품이 연이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자,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에서 출간된 가장 우수한 문학 작품에 수여하는 상인 페미나상까지 수상했다고!


또, 생텍쥐페리는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영향을 미쳤어요. 생텍쥐페리는 자신이 비행을 하면서 그가 직접 마주했던 가파른 산, 변덕스럽고 드넓은 바다, 끝없는 사막과 같은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는 <인간의 대지>라는 작품을 집필하는데요,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거든요. 하야오의 아버지도 고장난 비행기를 뚝딱뚝딱 고치는 비행기 수리공이었기에 하야오도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고, 덕분에 비행기를 주제로 한 생텍쥐페리의 작품에 더 큰 영감을 받았다고! (생텍쥐페리의 영향을 받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어떻게 비행기를 표현했는지 궁금하다면 클릭해보세요.) 


애니메이션의 대가 하야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니 엄청난데요? 또, 비행기 조종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까지 집필했었다니, 그럼 소설 <어린 왕자>에 비행사가 등장하는 이유도 비행기와 관련된 생텍쥐페리의 삶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가요?

▲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출처: 한국일보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 


맞아요!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집필할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가 혼란에 뒤덮인 시기였는데요, 작가가 살던 프랑스가 독일 나치에 의해 함락되자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요. 하지만 좋지 못한 시기에 망명했기 때문일까요? 생텍쥐페리는 조국을 버린 배신자라는 누명을 쓰고 설상가상으로 정치적 색깔 논쟁에도 휘말려 우울증을 앓았어요. 이런 상황을 겪으며 그는 망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현실에 큰 회의감을 느꼈죠. 그래서 <어린 왕자>를 통해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싶었다고!


이러한 작가의 메시지는 소설의 곳곳에서 드러나는데요, 대표적으로 어린 왕자가 지구에 오기 전 여섯 개의 별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있어요. 먼저,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가 첫 번째 별에서 만난 늙은 왕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권력에 대한 욕심을 비판해요.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기만을 좋아하고 왕의 행세를 즐기는 권위적인 권력자의 모습을 꼬집으려 한 것이죠. 또, 세 번째 별에 사는 술꾼은 언제나 술에 잔뜩 취해 비논리적인 말들만 내뱉곤 했는데요, 이를 통해서는 앞과 뒤가 다른 인간의 내면을 표현했어요. 그리고 여우와 어린 왕자의 대화를 통해서는 진정한 의 중요성을, 비행사의 보아뱀 그림을 통해서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생각’을 말하고자 했죠. 이 밖에도 허영심을 가진 캐릭터, 무기력한 캐릭터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킴으로써 생텍쥐페리는 본인이 부조리하다고 느꼈던 어른들의 세계를 비판다고. 


이렇게나 많은 상징이 있다니!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느낌이 다른 이유가 있군요!

소설의 큰 흐름뿐만 아니라, 캐릭터 자체와 특정 장면에도 생텍쥐페리의 삶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어요. 실제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비행기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의 모습은 소설 속 주인공인 비행사에게 투영되었다고 하죠. 또, 어린 왕자가 쥐고 있는 과 갑옷은 생텍쥐페리가 전쟁 속에서 조국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을 상징한다고. 그리고 어린 왕자의 고향인 B612 소행성에는 활화산*과 사화산*이 등장하는데요, 이는 조국인 프랑스의 자유를 부르짖는 사람들을 활화산으로, 독일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화산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고!


*활화산: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화산.


*사화산: 활동을 멈춘 화산.


소설 속 내용뿐 아니라 캐릭터에도 작가의 의도와 경험이 녹아 있었다니..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을 다시 보니 정말 흥미로워요!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작품이라 큰 인기를 얻었을 거 같은데요?

▲  영화 <어린 왕자>, 1974, 출처: 네이버 영화

다양하게 만나보는 어린 왕자 


소설 <어린 왕자>는 무려 275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총 2억 부가 판매되며, 성경책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만큼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기에 소설을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각색한 작품들도 매우 다채롭죠.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1974년에 개봉한 영화 <어린 왕자>는 소설에 등장한 캐릭터들을 모두 의인화한 작품으로 유명한데요, 영화 내에서 장미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으로, 여우는 갈색 정장을 입고 다니는 아저씨로 그려졌죠. 특히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은 을 상징하는데, 실제로 뱀이 꿈틀대는 듯한 춤 동작과 '스으으' 소리를 연기하는 데에 큰 호평을 받아 관객들로부터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국내에서는 1999년 어린이에게 미래와 우주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내용의 어린이 드라마로도 방송이 됐고, 2019년에는 낭독 뮤지컬로 공연을 열어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대요. 심지어 <어린 왕자>는 ‘SKY - 빛의 아이들’이라는 이름의 어드벤처 게임으로도 각색돼 모바일 앱으로 만나볼 수 있다고!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니 인기가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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