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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Apr 24. 2022

별 하나의 브런치

이건 쉽게 쓰여진 레터

▲ 일본 교과서 속 윤동주, 출처: 지식채널e

일본 교실에서 울려 퍼진 <서시> 


1990년 일본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펼친 교과서에는 너무나 익숙한 윤동주 시인의 얼굴이 있어요. 바로 윤동주의 시를 담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수필집이 일본의 문학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인데요. 일제에 저항했던 시인의 작품이 수록된 것은 당시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죠. 이는 시인 이바라기와 한 편집장의 적극적인 노력 끝에 얻은 결과인데요. 덕분에 지금까지도 일본의 고등학생들은 매년 윤동주의 생애와 시를 배우고 있다고.


이바라기는 평소 윤동주와 그의 시를 매우 좋아했어요. 시를 통해 식민지 시절 한국의 슬픔을 알게 된 그녀는 일본인으로서 큰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죠. 자신의 수필집에 윤동주의 시를 실은 그녀는 자국민들의 올바른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결국 정부를 설득해 교과서 속에서 윤동주를 볼 수 있게 만드는 데 성공했죠. 이후에도 그녀는 윤동주를 비롯한 한국의 문학을 연구하고 알리는데 힘썼어요. 그렇게 이바라기는 번역한 한국의 시를 모아 <한국현대시선>이라는 시집을 냈고, 이 책으로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고. 


*요미우리문학상 : 일본 주요 신문사인 요미우리 신문사에서 시상하는 문학상.


일본에서도 윤동주의 시를 배운다니 놀라워요. 언제 어디서나 기억되는 윤동주 작품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 1941년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졸업 사진, 출처: Wikiwand

사랑받는 시인이 되기까지 


이 빼곡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 문장이 떠올라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바로 윤동주의 <서시> 마지막 연인데요.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조선의 청년으로 사는 동안 느꼈던 괴로움과 독립 의지를 시로 표현하면서 한국 문학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어요. 그는 시를 완성한 날짜를 꾸준히 기록했는데, 이는 훗날 입체적인 작품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해요. 또한 그는 한국어 사용을 엄격히 막았던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우리말로 된 시만 쓰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죠. 이처럼 조국을 걱정하던 청년, 동주의 아픈 고민은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의 작품으로 남아 오늘날 플로터들에게도 닿을 수 있었다고.

윤동주의 작품세계는 어릴 적부터 차근차근 만들어졌는데요. 영특했던 동주는 소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면서 일찍이 문학에 관심을 보였어요. 처음에는 여러 사물과 현상을 관찰하며 밝은 분위기의 작품을 주로 남겼지만, 그가 성인이 되어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면서 시에도 변화가 찾아와요. 이때부터는 삶에 대한 고뇌식민지 현실 등 훨씬 깊어진 주제 의식이 나타나죠. 우리에게 익숙한 대표작 <참회록>과 <쉽게 쓰여진 시> 또한 연희전문학교 입학 후의 작품인데요. 부끄러움과 성찰의 이미지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상징적인 언어로 그리며 비로소 자신만의 시적 세계가 활짝 열리게 돼요.


*소학교: 근대적 초등교육기관의 시초. 현재의 초등학교 개념.


*연희전문학교: 현 연세대학교의 연원이 되는 근대 대학교육기관.


 윤동주 시인하면 끊임없이 성찰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가 있었군령. 그의 문학적 방향성에 영향을 준 작가가 있다구요?

▲ 이반 투르게네프, 출처: Wikimedia Commons

고뇌와 괴로움의 출발점(feat.투르게네프) 


바로 대문호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20세기 초 조선의 문인들에게 큰 영감을 준 러시아의 대표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 그는 소설뿐 아니라 희곡, 산문 등 모든 장르에 걸쳐 문학 활동을 펼쳤어요. 특히 시를 너무 사랑했던 투르게네프는 다양한 산문시를 쓰며 시인으로서의 발자취도 남겼는데, 윤동주의 <투르게네프의 언덕>은 그의 산문시 <거지>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이라고.

그중에서도 1856년에 나온 소설 <루딘>은 시인 윤동주의 작품에 자주 보이는 성찰의 시작점이 되었어요. 주인공 루딘은 작품 속에서 잉여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데요. 재치 있고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을 뽐낼 줄만 알고, 직접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죠. 이 작품은 당대 러시아 인사들의 소극적인 행태를 비판하면서, 어려운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질문을 던져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행동하는 힘이 부족해 무력하게 죽음을 맞는 잉여 인간의 모습을 보며 윤동주는 남부끄럽지 않은 지식인이 되자 다짐한다고.


*잉여 인간 : 지식수준은 높으나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


 여기서부터 다양한 고민이 시작됐군령! 이외에도 슬픔의 미학이라고 불리는 작품이 있다고 들었는데,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 윤동주 <팔복> 육필 원고 복사본, 출처: yes24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팔복>은 그가 창씨개명을 한 뒤 1년 2개월간의 공백을 깨고 나온 시예요. 마지막 연을 제외하고 같은 구절이 8번이나 반복되죠. 사실 이 시는 성경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을 수정하여 만들어졌어요. 원래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온유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 등 8가지가 있었지만, 윤동주는 성경에 없던 ‘슬퍼하는 자’ 딱 하나를 가져와서 영원히 슬플 것이라는 문장으로 시를 마무리하죠. 그러나 결코 비극만을 노래한 작품은 아닌데요. 여러 번 고친 마지막 문장에는 그가 건네고자 한 이야기가 숨어 있죠. 시인은 처음에 '슬플 것이오'라고 썼다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오'라고 고쳐요. 그러다가 다시 '오래 슬플 것이오'가 되는데, 결국에는 '영원히 슬플 것이오'에서 수정을 멈춰 지금의 상태가 됐죠. 시가 쓰인 1940년대, 식민지 조선인은 '슬퍼하는 자'였어요. 그러나 그는 얄팍한 위로를 건네기보다 그들과 함께 슬퍼하는 쪽을 택했죠. 슬픔과 동행할 때, 비로소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산상수훈: 신앙인이 누릴 여덟 가지 복을 열거한 예수의 가르침


이러한 인식은 다른 시 곳곳에도 등장해요. <병원>에서 시인은 아픈 사람들 뿐인 공간에서 환자가 누워있던 곳, 즉 슬픔이 있던 곳에 다시 누워보며 같이 슬퍼하는데요. 마찬가지로 <서시>에서는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겠다’라고 다짐하면서 가엾은 존재의 슬픔도 안고 가려 하죠. 그가 처음 출판하려 했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원제목은 병원이었는데요. 아픈 시대에 영원한 행복을 바라며 시를 썼던 그의 소망이 담긴 작품들이죠.


 윤동주의 후배 정병욱은 앓는 사람을 고치는 병원처럼, 이 시집이 슬퍼하는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고 해요.


▲영화 <동주>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윤동주의 이미지는 바르고 순수한 청년 시인의 면모일 텐데요. 그가 남긴 작품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한 교수의 연구 덕분이에요. 1983년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연구> 논문을 통해 박사가 된 마광수 교수는 그전까지 자세히 연구되지 않았던 윤동주의 문학 세계를 수면 위로 올리는 역할을 했어요. 성찰뿐만 아니라 그가 사용한 상징적인 언어, 창작 시점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으로 오늘날 더 자세하게 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됐죠.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만으로는 윤동주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데요. 시 속 청년의 부끄러운 고백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에게는 순결한 이미지의 저항시인과 의연한 독립운동가의 자아가 동시에 존재했어요. 1943년, 동주는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와 함께 독립에 대해 모의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데요. 당시 그의 재판 판결문 내용을 보면, 부끄러워하던 시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외치는 당당한 모습이 드러나 있어요. 악명 높은 경찰의 고된 신문에도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었던 독립운동가. 이후 2년간의 실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되지만, 그날의 굳센 저항은 지금까지도 선명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고.

 슬픔과 함께해온 시인의 이야기가 참 감동적이에령. 그 아름다운 마음을 오래, 아니 영원히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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