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연극보러 갔다가 배우랑 키스했다..?
눈이 부시도록 호화로운 개츠비 의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 받은 관객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술잔을 맞대며 바로 옆에서 대화를 주고 받고, 직접 춤을 가르쳐주기도 해요. 모든 관객이 파티에 참석한 손님이 되어 작품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거듭나죠. 배우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던 관객들은, 이윽고 주인공 개츠비가 나타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자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해요. 그러던 도중 개츠비가 “잠시 전화를 받고 올 동안 기다려주시죠” 라며 자리를 옮기면,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우르르 서재로 이동하죠. 그렇게 이동한 서재에서 관객들은 개츠비의 애틋하고도 영원한 사랑 이야기를 훔쳐듣게 된다고!
어떻게 연극을 보러 간 관객이 작품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느냐고요? 이는 바로 연극 <위대한 개츠비> 의 이머시브 버전을 보러 가면 겪게 되는 일들이에요. 공연장에는 총 3개의 방과 로비가 있어요. 로비에서는 '위대한 개츠비'의 중심 이야기가 펼쳐지고, 나머지 3개의 방에서는 각 인물의 속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죠. 이 구간에서는 관객이 원하는 캐릭터를 따라가면 되는데요, 각각의 방에서 배우들은 관객들을 자신의 극 중 지인인 것처럼 대하며 적극적으로 작품 속에 끌어들이죠. 이를테면 불륜에 빠진 톰과 머틀이 함께 있는 방에서는 이들이 벌이는 진실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인물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경험이 달라진다고!
듣기만 해도 흥미로운데요? 그런데 평소에 알고 있던 연극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이처럼 관객이 직접 연극에 참여해 배우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연극을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er)’이라고 해요. 관객들이 자유롭게 무대 위를 누빌 수 있게 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공연 양식이죠. 이머시브는 액체에 무언가를 담그거나 몰두하게 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요, 그래서 이머시브 씨어터를 우리말로는 ‘관객 몰입형 공연’이라 불러요. 여기서 몰입은 공연장에서 전개되는 스토리에 흠뻑 빠지는 것을 뜻한다고. 관객은 이머시브 공연을 관람하며 온 감각을 공간과 배우에게 집중해요. 이 과정에서 관객 개인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거죠.
이머시브 연극은 보다 능동적으로 예술을 즐기고 싶어 하는 관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아요. 같은 연극이라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경험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관객은 마치 게임을 하듯 흥미진진하게 연극을 즐길 수 있죠. 하지만 기존의 연극 형식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완성도가 낮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고, 함께 관람하는 다른 관객들의 태도에 따라 공연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머시브 연극이 갖는 의미는 대단해요. 스스로의 선택을 바탕으로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즐거움을 찾아가는 과정은 흔히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죠. 예술의 역할이 관객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이머시브 공연은 이와 같은 예술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다고.
우와... 이머시브 연극이라는 장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이머시브 연극은 언제부터 등장한 건가요?
이머시브 연극은 2000년대 초반,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로 미국과 영국에서 등장했어요. 이후 2011년에 영국 극단 펀치 드렁크의 연극 <슬립 노 모어>라는 작품이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죠.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를 현대적이고 실험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에요. 게다가 뉴욕의 한 물류창고를 개조해 만든 6층짜리 호텔 전체를 무대로 사용하죠. 관객은 흰 가면을 쓰고 호텔에 입장한 후, 3시간 동안 100개의 객실을 마음껏 누비며 극 중 세계를 탐험할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이머시브 연극이라는 장르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시발점이라고.
*맥베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로, 지나친 욕망으로 서서히 파멸하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
스물다섯 명의 배우들은 역동적인 동선을 구사하며, 호텔 곳곳으로 흩어져 희곡 <맥베스>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요. 관객은 주인공인 맥베스를 따라가며 스토리를 파악할 수도 있고, 다른 배우의 뒤를 쫓으며 새로운 관점에서 신선한 이야기를 접할 수도 있죠. 배우와 함께하는 것에서 지루함을 느꼈다면 호텔 전체를 누비며 세트장을 구경할 수도 있어요. 공연을 어떤 방식으로 즐길지는 오롯이 관객 자신의 몫! 스스로 연극의 배우이자 연출자가 되어 자신만의 <맥베스>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운이 좋으면 배우의 손에 이끌려 키스를 받기도 하고, 오직 나만을 위한 연기를 만나볼 수도 있다고. ‘뉴욕에 오면 꼭 봐야 한다’는 명성을 굳힌 이 작품은 2011년 뉴욕 초연 당시 드라마 데스크 어워드를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어요. 이에 더해 장기적인 대흥행을 기록하며 대중성과 상업성까지 높이 평가 받고 있다고.
지금 당장 뉴욕 가고 싶어요! 이머시브 연극이 대중에게 생소한 장르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훌륭하게 연출한 감독이 누군지 너무 궁금해지는데요?
그 주인공은 바로 연극 <슬립 노 모어>의 감독인 펠릭스 바렛! 그는 2000년, 공연 그룹 펀치드렁크를 창립한 장본인이에요. 펀치드렁크의 총 예술감독으로서 <슬립 노 모어>를 비롯한 30여개의 작품을 구상하고, 기획 및 연출하는 과정에 참여했죠. 그는 대학생 때부터 관객들이 보다 능동적으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전통적인 연극은 무대와 관객석을 서로 다른 공간으로 구분 짓고, 관객을 연극을 보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느꼈거든요. 따라서 관객을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여 직접 서사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창작의 세계로 이끌고 싶었다고.
또, 펠릭스는 관객들이 공연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장치들을 <슬립 노 모어>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어요. 실제로 공연 중 관객들의 휴대폰 사용과 상호 간의 대화를 엄격히 통제하죠. 이와 더불어 <슬립 노 모어>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면을 통해 관객의 완벽한 익명성을 보장하고, 보다 편히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이처럼 펠릭스는 연극 <슬립 노 모어>를 통해 이머시브 연극의 지평을 열었죠. 2016년에는 연극 산업 발전에 미친 영향력을 인정받아 국가공로훈장을 받았다고.
그런데 이머시브 장르가 연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요? 이머시브 장르를 확장시킨 전시가 있다던데!
이머시브 장르는 연극 뿐 아니라 전시에서도 만나볼 수 있어요.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릴 전시가 이머시브 장르에 해당하는데요, 바로 전시회 <비욘더로드>! <비욘더로드>는 환상적인 사운드와 몰입도 높은 영상, 화려한 시각효과와 함께 촉각과 후각까지 자극하는 전시에요. 기존 전시회와 달리 <비욘더로드>는 관람객이 직접 촛농을 만지고, 피아노를 치면서 뮤직비디오 속 배우처럼 곳곳을 누비는 등 오감이 극대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죠. 게다가 이번 전시는 이머시브 장르의 개척자이자, 앞서 소개한 연극 <슬립 노 모어>를 공연한 극단인 펀치드렁크 소속 예술가인 스티븐 도비와 콜린 나이팅게일이 꾸렸다고.
이 전시의 또 다른 포인트는 별다른 작품 설명이나 정해진 루트 없이 조명과 환상적인 사운드가 이끄는 대로 관람하면 된다는 거예요. 각 전시 공간마다 다채로운 조명과 사운드가 관람객 주변을 360도로 에워싸는데요. 그 속에서 관람객들은 조명과 영상의 현란한 변화와 움직이는 설치 작품의 생동감을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죠. 그런데 여러분들 중에는 누군가가 작품을 설명해주거나, 정해진 동선이 있었으면 하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전문 해설가들을 초청하여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도슨트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도슨트 프로그램: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관람객에게 전시와 관련한 설명을 해주는 것.
이젠 연극을 넘어 전시까지 이머시브 장르가 등장했네요! 눈으로만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라니 오감을 활용해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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