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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Feb 08. 2022

사람은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요?

명절 특선 방구석 플롯 영화관

▲ 영화 <코코> 속 미구엘, 출처: 네이버 영화


어린 내가 벌써 사후세계에?


따뜻함이 넘치는 멕시코의 한 시골 마을, 그곳에는 구두를 닦는 어린 소년 미구엘이 살고 있었어요. 미구엘은 증조할머니인 코코와 함께 지냈는데요, 그의 가문에는 딱 한 가지의 금기사항이 있었죠. 바로 음악가의 길을 걷는 것! 이는 미구엘이 태어나기 전, 코코의 아버지가 음악을 하겠다며 가족을 버리고 홀연히 떠나버린 이후로 집안에 내려진 특단의 조치였어요. 그렇지만 고조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미구엘의 마음 속에선 음악가의 꿈이 스멀스멀 싹트기 시작했죠. 가문의 금기에도 불구하고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미구엘은, 에르네스토라는 전설적인 가수를 동경하며 할머니 몰래 기타를 연습하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가족 사진에서 음악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집을 뛰쳐나갔다던 자신의 고조할아버지가 바로 에르네스토임을 깨닫게 돼요. 가업을 물려받아 신발을 만들며 살아가야 할 운명이 끔찍하게도 싫었던 미구엘은 고조할아버지인 에르네스토를 이어 음악가가 되겠다 선전포고하는데요, 가족들은 이에 분노하며 미구엘이 들고 있던 기타를 부수기까지 하죠. 망가진 기타를 보고 망연자실하던 미구엘. 잠시 동안만 에르네스토의 무덤에 보관되어 있는 기타를 빌려 연주를 시작하려던 그 순간, 갑자기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갑작스럽게 사후세계에 들어간 미구엘은 자신의 고조할머니이자 동경하는 에르네스토의 아내인 이멜다를 만나요. 그녀는 미구엘에게 현실 세계로 복귀하고 싶다면 음악을 포기하라는 강력한 조건을 내걸죠. 사랑하는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던 미구엘은 다시금 에르네스토를 찾아 떠나는데요, 그러던 와중 에르네스토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헥터라는 인물과 동행을 시작해요.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바로 미구엘의 진짜 고조할아버지가 헥터이고, 에르네스토는 그를 살해한 뒤 음악 작품들을 빼앗아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며 유명세를 얻었다는 것! 이에 미구엘은 에르네스토의 만행을 알려 사실을 바로잡지만, 헥터가 곧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게 돼요. 이승에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경우 저승에서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후세계의 규칙 때문이었죠. 헥터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유일하게 현생에 남아 있는 그의 딸 코코였어요. 이에 미구엘은 헥터를 지키기 위해 망설임없이 그녀를 찾아가게 된다는데.


예상치 못한 반전이 숨어 있었네요! 코코가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안타까워요. 

▲ 영화 <코코> 속 사후세계, 출처: 네이버 영화


멀지만 가까운 나라


여기까지가 바로 영화 <코코>의 줄거리인데요, 남미에 위치한 멕시코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 이유는 사후 세계의 존재를 믿고, 현실 세계에서 조상을 기리며 잊지 않고자 하는 한국의 유교 문화와 영화 <코코>에서 관찰할 수 있는 멕시코의 문화에서 유사성을 느꼈기 때문일 거예요.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멕시코의 기념일 ‘죽은 자의 날(Dia de los muertos)’은 조상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안녕을 축복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명절 문화와 매우 닮아있죠. 매년 10월 31일부터 3일간 진행되는 대규모 민족 기념일인 죽은 자의 날은 200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주인공 미구엘이 증조할머니 코코를 포함한 대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는 것처럼, 멕시코는 오늘날에도 대가족이 유지되는 나라이기도 해요. 가족들이 함께 모여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조상을 기리며 명절을 보내죠. 비록 대도시에서는 이러한 전통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멕시코 대부분의 지역에서 ‘죽은 자의 날’ 전통은 꾸준히 지켜지고 있다고. 영화 <코코>에서는 죽은 자의 날에 등장하는 또 다른 전통 문화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샛노란 꽃들은 마리몬드로, 마리몬드에는 '꽃잎의 길을 따라 조상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온다'는 멕시코인들의 믿음이 담겨 있어요. 실제로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의 날이 되면 온 도시가 마리몬드로 뒤덮인다고.


우리나라와 멕시코는 멀리 떨어져 있어 사람도, 문화도 모두 다를 줄 알았는데 서로 비슷한 문화가 있다니 신기하네요!

▲ 영화 <코코>의 감독 리 언크리치, 출처: Hollywood Reporter


어서 와, 멕시코 영화는 처음이지?


사실 죽은 자의 날 외에도 영화 <코코>에는 작품 배경이 멕시코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단서들이 가득해요.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멕시코의 특성을 반영해 영화의 대사에도 자연스럽게 "Hola*"와 같은 스페인어가 섞여 있죠. 또한 디즈니와 픽사의 콜라보로 제작된 영화이기에 초반부에 디즈니 성이 등장하는데, 이때 배경으로 나오는 라틴풍 음악은 관객들이 영화 시작과 함께 남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요.


*Hola: 스페인어로 ‘안녕’을 뜻하는 말

멕시코 문화를 다루는 작품이니만큼 제작진들 또한 멕시코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했을 텐데요, 놀랍게도 감독 리 언크리치는 이번 작품을 통해 멕시코나 라틴 문화를 처음 접한 것이었다고. 그래서 언크리치는 더더욱 철저한 사전조사를 했어요. 영화 제작을 위해 직접 멕시코를 방문하는 것은 물론, 직원 중 라틴계 사람이 있다면 개인적인 이야기까지도 적극적으로 귀담아 들었죠. 이에 더해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멕시코의 문화를 반영해, 영화 속 헥터와 같은 해골 캐릭터들은 이승에서 기억되는 정도에 따라 뼈가 닳는 정도가 달라지도록 표현했어요. 사후 세계 속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헥터의 모습은 병들고 초라한 반면, 에르네스토의 모습이 건강하고 화려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코코>가 멕시코의 문화에 뿌리를 둔 작품인 만큼, 디테일까지 담아내려는 노력을 바탕으로 멕시코 문화가 생생하게 드러난 영화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전체적인 설정부터 디테일까지 멕시코 문화를 녹여낸 고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이군요! 이거, 흥행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는데요?

▲ 영화 <코코> 속 미구엘(왼쪽)과 코코(오른쪽), 출처: 네이버 영화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사람


역시나도 개봉 직후 북중미를 휩쓴 영화 <코코>는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한국에서도 이름을 알렸어요. 이렇게 <코코>를 통해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은 감독 언크리치의 성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요, 이전에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토이 스토리 2>등의 감독을 맡아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죠. 작품의 흥행 비결은 현실감 넘치게 멕시코 문화를 반영했다는 점도 있지만,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들의 행동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몰입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 또한 발견하게 되는 거죠.

영화 <코코>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바로 ‘떠난 이를 기억하라’인데요, 죽은 자는 어떻게 기억되는지, 누가언제까지 그를 기억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죠. 예상치 못하게 사후 세계에 온 미구엘의 미션은 축복을 받아 이승으로 돌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헥터에 대한 증조할머니 코코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이기도 해요. 사라져가는 소중한 기억들을 되살려 보려는 미구엘의 행동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 또한 바쁜 일상 속 미처 잊고 있었던 사람은 없는지 되돌아보게 하죠.


영화 <코코>는 언크리치 감독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작품이기도 해요. 영화가 개봉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가셨거든요. 그는 “<코코>를 제작한 경험을 통해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기억하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내 아이들과 또 그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새기게 됐다”며 작품의 가치를 강조했다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엔 다소 무겁고 까다로울 수 있는 ‘죽음’을 주제로 했지만, 떠난 이를 기억하라는 핵심 메시지를 던져 관객뿐 아니라 감독 자신 또한 그간의 삶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작품이 된 거예요!


▲ 영화 <코코>, 출처 : 네이버 영화


진정한 가족 영화


영화 제목이 주인공  <미구엘>이 아닌, <코코>인 점에 대해 아마 영화 초반부에서는 의문을 가지실 텐데요, 여기까지 레터를 읽으신 플로터는 그 이유를 찾으셨을 지도 모르겠네요. 제목을 <코코>로 정한 이유는 바로 코코가 떠난 이를 기억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죠. 기억과 가족을 상징하는 인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선정해, 떠난 이를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작품에 녹인 거예요. 에디터는 실제로 영화 <코코>를 보며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됐고, 그래서 이 영화를 꼭 특선 영화로 추천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과 전통의 개념이 점점 무너지고 있어요. 학업, 직장, 결혼 등의 다양한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조차 어렵게 느끼곤 하죠. 그래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거나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이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고 말아요. 사실 이는 가족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에요. 주변에 있는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모두와 관련된 이야기이죠. 특히나 코로나19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없는 요즘에는 인간관계에 소홀해지고 그들과 함께했던 과거의 기억마저도 잊어버리기 쉽거든요.


그러니 이번 추석에는 영화 <코코>와 함께 오랜 시간 마음에만 담아 두었던 가족과 지인들을 추억 속에서 꺼내 보는 건 어떨까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은 헥터와, 아버지와의 기억을 성공적으로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코코를 지켜보며 말이에요. 다가오는 추석, 가족들과 함께 영화 <코코>를 보며 서로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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