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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롯 레터 Plot Letter Feb 08. 2022

초현실과 현실의 공존,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100년 후 사라지는 가문이 있다?!



▲ 책 <백년의 고독>, 출처 : Amazon


이렇게나 유명한 작품이었어?


헤르만 헤세의 <노인과 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그리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두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점! 1967년에 <백년의 고독>을 출간한 작가 마르케스는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돼요. 1901년 첫 시상을 시작한 이래, 남아메리카 출신 작가로는 무려 4번째 수상자였죠. 이 작품은 수많은 유명인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어요. 미국의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은 윌리엄 포크너* 사후 최고의 작품이라 칭했으며, 심지어는 당대 경쟁 작가였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 밀란 쿤데라까지 마르케스의 작품을 극찬했다고!


*윌리엄 포크너: 20세기 미국의 대문호. 194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함.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어요. <백년의 고독>은 문학계에서 등한시되었던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거든요. 뿐만 아니라, 소위 ‘엘리트주의 문학’으로 불리는 읽기 어려운 소설이 지배적이던 시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같은 소설을 부활하게 만들었어요. (마르케스의 작품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소설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게 이런 뜻이었군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전하는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듣고 나니 얼마나 대단한 작품일지 정말 기대돼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 <백년의 고독> 삽화집 속 마콘도, 출처: luisarivera


신비의 마을 마콘도


소설 <백년의 고독>의 배경은 마콘도라는 이름을 지닌 가상의 마을이에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아내 ‘우르술라’로부터 시작된 부엔디아 가문 100년의 역사가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지죠. (부엔디아는 스페인어로 ‘좋은 날'이라는 뜻이래요.)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은 시작부터 신비로운 일로 가득했어요. 호세와 우르술라가 마콘도로 오기 전, 그들이 살던 마을에는 사촌 간 결혼을 하면 돼지꼬리를 단 아이가 태어난다는 풍문이 있었대요. 이들은 사촌관계였기 때문에 풍문을 두려워했고, 둘의 관계를 알고선 그들에게 비아냥대던 친구를 죽이고 말았죠. 이후 호세와 우르술라는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는 친구의 유령에 시달리게 돼요.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살던 마을을 떠나 도착한 게 바로 여기, 마콘도인 거죠!


원래 마콘도는 누구도 죽지 않는 유토피아와 같은 곳이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마콘도에도 과학과 문명이 유입되면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도시가 돼요. 여기에는 근현대 역사에서 나타났던 침탈과 학살도 등장하죠. 이로 인해 부엔디아 가문의 일원들도 하나둘 고독한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지만 이들의 쓸쓸한 죽음은 놀랍게도 마술적으로 묘사되었어요. 부엔디아 가문을 세운 호세는 죽어서 유령이 되고, 우르술라는 씨앗만큼 크기가 작아지면서 죽음에 이르죠. 또, 그들의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가 죽으면서 흘린 피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 있던 어머니 우르술라의 발 앞까지 흘러갔죠. 이렇듯 마콘도는 현실과 초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유령은 그렇다쳐도 씨앗만큼 작아지는 사람이라니 믿을 수 없어요! 등장인물들이 이런 신비한 현상을 아무렇지 않게 그대로 받아들였던 건가요?


▲ 영화 <이웃집 토토로> 스틸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럼요, 이것이 바로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이에요! 마술적 사실주의란, 현실적인 배경 위에서 비현실적인 사건들이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표현하는 서술 기법을 말해요. 유령이 나타나고, 사람이 씨앗만큼 작아지는 신비한 사건들이 작품 안에서 의심받거나 의아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죠. 이런 요소는 현대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마술적 사실주의는 특히 지브리 스튜디오를 대표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데요. 영화 <이웃집 토토로>에서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공간 안에 토토로라는 신비로운 생명체가 위화감 없이 어우러지는 것도 마술적 사실주의의 한 예라고.


아하! 그래서 호세와 호세 아르카디오도 모두 의아해하지 않은 거군요! 그런데 등장인물 이름이 비슷해서 누가 누군지 헷갈려요… 여기에도 특별한 의미가 숨겨져 있나요?

▲ <백년의 고독> 속 부엔디아 가문의 가계도, 출처 : 민음사


인생은 이름을 따라가고


맞아요! 부엔디아 가문의 가계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여기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지역적 특색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데요, 이 지역에는 선조의 이름을 후대에 물려주는 관습이 있었죠.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같은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하지만 이 가계도에는 더욱 특별한 점이 숨겨져 있어요. 바로 선조의 이름만이 아니라, 그의 외모와 성격인생사까지도 모두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


작중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일란성 쌍둥이예요. 서로를 흉내내다가 그 누구도 그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들은 이름이 바뀐 채로 살면서 성격과 인생도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죠. 즉, 작품에서 그려지는 인물의 삶이 이름을 통해 결정되는 셈이에요. 100년간 지속된 부엔디아 가문은 결국 ‘아마란타 우르술라’가 자신의 조카와 결혼하고 돼지 꼬리를 단 아이를 낳으면서 몰락하게 되는데요. 그녀가 사촌과 결혼하면서 돼지 꼬리를 단 아이를 낳는다고 믿었던 ‘우르술라’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예견된 결말이기도 하죠.


이름과 인물을 연결하는 마르케스의 재치가 돋보여요! 실제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 <백년의 고독>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출처 : The Paris Review


콜롬비아의 가보(Gabo)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7년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연안의 아라카타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유년시절을 외조부모와 함께 보냈기 때문에 마르케스의 작품에서는 그들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죠. 특히 외할머니는 어릴적부터 마르케스에게 오래된 토속 신화와 전설들에 대해 얘기해주셨다고 해요. 그녀가 들려준 설화들 속에는 초현실적인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이것이 후에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그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창조하게 했다고!


마르케스는 문학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일찍이 문단에 데뷔했지만, 동시에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기도 했어요. 유럽 특파원이었던 그는 유럽에서 일했고, 이후 멕시코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 고향인 콜롬비아보다 유럽과 멕시코에서 더 오랜 시간 생애를 보냈죠. 기자였던 그는 정치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어요. 공산당을 지지한 마르케스는 쿠바 혁명*을 옹호하고, 혁명의 주동자인 피델 카스트로와 절친한 사이였기에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까지도 콜롬비아에서 그의 이름 '가브리엘'에서 따온 애칭 ‘가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쿠바 혁명: 식민지 체제를 없애기 위한 혁명이었으나, 혁명 이후 피델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한 공산 독재 체제가 자리함.


소설가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이자 정치 운동가였던 그의 생애가, 작품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요!

▲ <백년의 고독> 삽화집 속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타, 출처: luisarivera


라틴아메리카의 고독


마르케스는 무엇보다 당대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을 중시하고 있었어요. 그가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읽은 연설문의 제목이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죠. 라틴아메리카는 서구 열강들에 의해 약 300여 년 간 식민지배 하에 있었고, 독립을 이룬 20세기 이후에도 국제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 고독함을 겪었거든요. 마르케스는 이러한 상황을 마콘도라는 가상의 땅과 그 안에 있는 부엔디아 가문에게 적용했어요. 허구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건 당대 라틴아메리카의 고독한 실상이었던 거죠. 그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기법을 사용한 것도, 이것이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가장 잘 보여줄 방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 고독을 헤쳐나갈 방법으로 사랑과 소통을 제시했어요. 애정어린 마음과 진솔한 상호작용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고독에서 헤어나올 수 있다고 말이죠. 이뿐만이 아니에요. 이 작품은 허구의 시공간을 다룬 덕에 21세기의 독자들도 스스로가 겪는 고독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었죠. 지금까지도 <백년의 고독>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환상 같은 이야기 속에서도 삶에 대한 통찰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역시 노벨문학상 수상작 답네요... 환상 속 현실의 삶을 생각해보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임이 틀림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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