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동환과 도스토옙스키의 만남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부는 러시아 모스크바. 1821년,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길 한 소년이 탄생해요. 그의 이름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의사였던 아버지와 부유한 상인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죠. 그의 가족은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의 부속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병원과 가까이에서 지내던 그는 여러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봐 왔죠. 환자들 대부분은 가난하거나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는데요, 이들과의 교류는 도스토옙스키가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에 대한 연민을 작품 속에 생생히 표현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고.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에게 매우 엄격했던 아버지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병들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가 환자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조차 막아버렸어요. 불같았던 아버지의 성격은 도스토옙스키의 자유로운 생활까지 제한했는데요, 그는 10살이 될 때까지 한두 번의 외출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살던 도시를 떠나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고. 게다가 부모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았기에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도스토옙스키에게는 같이 놀 친구마저 없었죠. 그래서 그는 학교가 아닌 집에서 외롭게 알파벳과 성경을 공부해야 했어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라고는 그의 형제들이 전부였죠. 그렇게 고독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14살이 되어서야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던 도스토옙스키는 또래들과 어울리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요. 그래서 그는 누군가와 함께 하기보다는 홀로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읽거나 여러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탐구하는 일을 즐겼다고.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 발생해요. 안타깝게도 도스토옙스키가 15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죠. 슬픔을 회복할 새도 없이, 그의 아버지는 농노*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아요. 이렇듯 도스토옙스키가 병원 환자들에게 느낀 연민,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며 체감한 고독, 그리고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며 경험한 죽음은 그의 문학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농노: 일반 백성보다 낮은 신분으로 땅의 주인의 밑에서 일하는 농민.
사랑받으면서 자라야 할 어린 시절부터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의 작품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감정들이 가득 담겨있을 것 같은데요?
도스토옙스키의 첫 소설은 1845년에 발표한 <가난한 사람들>이에요. 이 작품은 러시아 최하층 계급의 관리로 살아가는 가난한 주인공 마카르가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야기를 보여주죠. 이 소설은 가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많은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는데요,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삶 또한 녹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도스토옙스키도 어린 시절부터 가난을 안고 살아오며 강한 박탈감을 느끼곤 했거든요.
그는 실제로 돈 많은 부모를 둔 친구에게 기죽지 않기 위해 일부러 값비싼 모자를 사는 등 과시적인 소비를 하기도 했다고. 극도로 검소했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도스토옙스키는 군대에서 월급을 타기가 무섭게 돈을 펑펑 써버렸죠. 또, 물려받은 유산도 한꺼번에 바닥낼 만큼 낭비벽이 극심했어요. 이러한 습관으로 인해 그는 항상 가난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본인이 사랑했던 글쓰기를 통해서라도 돈을 벌고 싶어 했다고.
대표적으로, 그의 경험이 녹아든 소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가 어릴 적부터 만나온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보여주고 있죠.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표현했어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풀고자 하는 심리를 꿰뚫어 봤죠. 그는 이와 같은 행동의 이유를 나눔과 베풂을 통해 빈곤의 아픔을 일시적으로 잊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 여겼어요.
주인공 마카르가 자신보다도 가난한 노숙인으로부터 10원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20원을 빌려준 장면을 통해 앞서 설명한 심리를 드러냈죠. 또,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일반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을 마냥 착하고 순수하기만 한 존재로 표현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범죄를 저지르고 거짓말을 일삼는 존재로 그렸죠. 결국, 재산의 크기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각자만의 욕망을 갖고 살아감을 전하고 싶었다고.
누군가의 마음까지 꿰뚫어 보다니 보통 인물이 아닌 걸요? 그가 활동했던 1800년대의 러시아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18세기 유럽에서는 여러 차례의 시민혁명*이 발생하는데요, 이때 도스토옙스키도 사회주의* 를 통한 변화를 부르짖으며 적극적으로 활동했어요. 그러던 1848년, 그는 혁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왕실에 체포된 후 사형을 선고받죠. 병사들은 사형대에 선 도스토옙스키를 향해 수많은 총구를 겨눴고, 죽음의 문턱에 이른 바로 그 순간! 현장에 마차 한 대가 난입해, 도스토옙스키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져요.
그 이유는 바로 처형 직전, 황제가 그들의 사형 집행을 멈추라고 지시했다는 것! (사실 황제는 사형을 집행할 생각이 없었고, 단지 혁명을 일으킨 젊은이들에게 겁을 주려고 쇼를 벌인 거였대요. 너무 소름 끼쳐요..) 하지만 그는 감형의 대가로 4년 동안은 감옥살이를, 이후 4년 동안은 사병 신분으로 재입대해 군에서 복무해야 했죠. 이 사건으로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은 도스토옙스키는 작품 하나하나를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처럼 집필했다는데.
*시민혁명: 계급 사회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평등함을 외치는 사회, 정치적 운동
*사회주의: 개인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운동
이후 도스토옙스키는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는데요, 그중 하나가 바로 1866년 발표되어 세계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소설 <죄와 벌>! <죄와 벌>에는 실제로 그가 감옥 생활을 하며 생생히 느낀 범죄와 처벌의 진정한 의미를 담아냈다고. 이 작품은 대학생인 주인공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인을 살해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살인을 저지른 후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든 합리화하려 애쓰는 주인공의 심리를 치밀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걸로 유명한 작품이죠.
또, 범죄를 저지르는 원인이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인지, 혹은 사회 구조로 인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요. 이는 범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독자와 더불어 사회 전체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고. 마찬가지로 이듬해에 발표된 소설 <백치>에서는 주인공이 사형대에 선 후, 앞으로는 1분 1초를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이는 자신이 사형대에 올랐던 생생한 경험을 고스란히 녹인 거라고!
경험 자체를 소설 속에 섬세히 드러내다니 역시 대단해요. 그렇다면 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작품은 무엇인가요?
도스토옙스키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건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에요. 이 작품은 ‘카라마조프’의 집안에서 일어난 재산 문제와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이 소설의 매력은 선과 악의 깊이를 입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에서 드러나죠. 그는 유일하게 맑고 순수한 인물인 막내 알렉세이와 커다랗고 시커먼 욕심을 가진 다른 인물들을 대비시키면서, 악을 복합적이고 깊이 있게 그려내요. 또, 도스토옙스키는 수많은 형태의 욕망을 드러내며, 우리는 어떻게 욕망을 다스리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죠. 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자신이 구상했던 소설의 1부로 집필했지만, 이후 폐결핵으로 사망하면서 이 작품은 영원히 미완성작으로 남겨지고 말았죠. 그래서 더욱더 가치가 높은 문학 작품으로 평가받는 거라고.
소설에서 드러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철학과 인간의 심리에 대한 탐구는 당대 내로라하는 지성인들에게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어요. 그의 작품은 사르트르, 막심 고리키,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문학가뿐 아니라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등 철학자와 과학자에게도 영향을 줄 정도였는데요, 그 이유는 문학, 철학, 과학 또한 결국 인간을 속속들이 탐구하는 분야였기 때문!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난 140년 후인 지금도, 수많은 평론가들과 문학가들이 도스토옙스키로부터 대단한 영감을 받고 있어요. 인간에 대한 치밀한 묘사, 내적 심리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남다른 밀도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그의 작품은 문학계뿐 아니라 다채로운 분야에서 영원히 기억될 거예요. 앗, 그런데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4년 만에 다시 연극으로 돌아온다고요?
인간의 선악과 욕망에 대해 치밀하게 묘사한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다가오는 10월 말, 무대 위에서 새롭게 탄생해요. 도스토옙스키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극단 피악의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사실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2017년에 무려 7시간 공연이라는 국내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우며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죠.
극단 피악은 단테의 ‘신곡’,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같은 고전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으로,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로 원작이 가진 인문학적 힘과 인간 존재에 대한 고찰을 예술적으로 표현한다는데. 게다가 이번 연극에는 여러분 모두가 아실 만한 드라마 <겨울연가>, <상속자들>, <호텔 델루나>에 출연하신 정동환 배우님이 주인공 카라마조프 역을 맡았죠. 정동환 배우는 풍부한 연륜과 경험으로 그 어떤 배우도 해본 적 없는 1인 5역을 연기한다고. 이에 더해 장장 6시간 동안 극을 이끌며 무대 전체를 꽉 채워주실 거예요! 연극에 대해 더 자세하게 소개해 드리기 위해 연출자님 인터뷰를 가져왔어요!
연출가님 안녕하세요! 이번 연극의 원작은 사실 정말 유명한 소설인데요,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도스토옙스키는 항상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을 작품에 녹이는 작가로 유명해요.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결과물들이 여럿 등장하죠. 그래서, 인간이란 결국 어떤 존재이고, 나는 어떤 의미로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어 이 작품을 선택했어요.
도스토옙스키의 메시지를 연극을 통해서도 표현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 정말 인상 깊어요! 그럼 4년 전 공연과 이번 공연이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이번 연극은 완전히 새로운 연극이라고 보시면 돼요. 내용을 전달하려는 형식도 바꾸었고, 무엇보다 관객분들이 연극의 메시지를 감각적이고 상징적으로 즐길 수 있게끔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무대 장치도 현대적인 요소를 다수 사용했죠. 연극적인 표현들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가를 봐주시면 연극을 보는 내내 머릿속에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실 수 있을 거라 자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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