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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sonAbility Nov 03. 2020

껍데기는 가라

타인의 창작을 대하는 자세



지난 토요일, 공예작가 한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카피'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의 작품을 지키는 일과 맞닿아 있는 것이 바로 카피에 대응하는 것이라서 작가들에겐 언제나 신경 곤두서게 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작업의 방식과 종류에 따라 창작자로서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은 다르기에 어떤 경우에는 지킬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현행법으로는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날 찾아온 작가 대다수는 민, 형사가 어떻고, 배상이 어떻고 하는 권리 이전에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아이덴티티, 다르게 말하면 자존심인데
계란 한 판 가지고 대법원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듯이
많은 법률 분쟁은 의외로 사소한 감정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 어느 분야보다도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 창작자들의 영역이다.
누군가에게는 자존심을 넘어 본인의 존재가치마저 부정당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꼰대 같은 소리겠지만 요즘 젊은 작가 들일수록 타인과 유사한 작업을 하는 것에 훨씬 관대한 걸 보며 적잖이 놀라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 문제 되는 행위이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다.

작가에게 가장 상처되는 말이 '어디서 본 것 같은데요?'라는 것처럼 창작자, 소위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는 사람들이라면
법적으로 저작권 침해냐 아니냐를 떠나 다른 것을 베끼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 것이 윤리 이전에 작가의 자존심이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나이가 어린 작가일수록 본인의 색깔과 주관이 더 강하기에 카피에는 더 엄격할 거라 생각했던 건 나의 크나큰 오해였음을 요즘 절감하고 있다.

상업적 성공에 대한 열망이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뛰어넘은 것인지 아니면 앤디 워홀의 말처럼 일단 유명해지는 게 우선이 된 세상을 내가 못 따라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몇몇 안타까운 경우를 목격하고선 과연 창작이란 무엇이고, 작가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그럼에도 '카피하지 않는 것, 타인의 창작을 존중해주는 것' 은 어느 분야를 불문하고 윤리 이전에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데 변함이 없다.

인테리어가 멋지다는 유명한 카페나 식당에 가봤더니 가구나 소품들이 카피 투성이라 실망하고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상업공간에 어떻게 오리지널을 두냐는 현실적인 얘기는 차치하고 어설프게 흉내만 낸 감성은 내 눈에는 껍데기로 밖에 안 보인다.

혹자는 오리지널을 갖고 싶지만 비싸서 카피 제품 사는 것 아니겠냐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번 묻고 싶다.
'정규직 고용을 하고 싶지만 회사가 어려워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쓴다'는 고용주의 논리와 과연 무엇이 다른지.

덧,  사진은 의뢰인 작가의 카피 제품을 적발해서 폐기처분 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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