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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sonAbility Sep 16. 2020

의심과 경계의 씨앗

순수함을 지키는 일

2020. 9. 15.
책을 읽다가 한 구절에서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어른은 아이와 달리 하나의 사물을 열 개,  스무 개의 줄거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판단하다가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할 순수한 감정을 마음껏 흡수하지 못한다고.
정말 기뻤다고, 정말 고마웠다고, 정말로 소중했다고, 느끼는 게 평생 동안 몇 번이냐 되겠냐'는 구절이었다.


어제 아침, 멘토링을 해주고 있는 스타트업의 대표와 온라인 미팅을 하면서 회사의 근황을 물어보았는데 재정 상황이 어려운 스타트업과 달리 별 문제 없다는 답을 들었다.
추후 투자를 해주기로 약속한 회사로부터 매달 1~2억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고 흡족해하는 대표에게
나는 그렇게 무상으로 제공받은 부분이 투자계약 할 때  여러모로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그 점을 항상 염두에 두라는 얘기를 건넸다.

그 상대방 회사가 어디인지도 그 회사의 대표가 누구인지도 묻지 않았으니 악의 혹은 편견에 차서 말한 것도 아니며, 호의를 폄훼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일하며 보고 들은 경험과 만에 하나를 항상 생각해야 하는 직업 정신의 발로였다.

변호사라는게 원래 여러 안좋은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직업이니 내 역할은 제대로 수행한 거다.


허나 상대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때 묻지 않은 어린 대표에게 '의심과 경계의 씨앗'을 심어주고 나니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찝찝함이 채 가시지 않은 오늘, 저 구절을 읽으니 나는 세상을 열 갈래, 스무 갈래가 아니라 백 갈래 정도로 보겠다 싶었다.
일이 아닌 내 삶에 있어서 만큼은 순수한 감정을 지키고 싶은데 과연 내 삶에서 느끼는 순수한 감정은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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