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함은 경험과 책임감에 비례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대개의 경우 나이가 들면 경험도 책임감도 많아지지만 누구나 그런건 아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된다는 말이 다 맞는 것도 다 틀린 것도 아니다.
사건에 대한 부담감인지 밤새 이를 악물고 악몽을 꾸다 전장에 끌려나가는 병사처럼 꾸역꾸역 일어났다. 샤워를 하며 언제쯤 스트레스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될까 생각해보다 문득 엄마가 내 나이였을 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10살 당시에도 엄마는 언제나 지금처럼 어른이라고 느껴졌는데 고작 37살의 나이였다니 새삼 놀라웠다. 37살의 엄마는, 본인 스스로였고, 누구의 엄마와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이자 누구의 며느리였다. 엄마는 그 역할을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골고루 잘 수행했던 것 같은데 나는 글쎄... . 나 역시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아내이고 누구의 며느리이지만 이들이 내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가 될까 말까 할 정도로 극히 일부분이고 대부분의 에너지와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쏟고 있다. 그럼에도 나란 사람 하나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헉헉대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37살의 엄마에 비해 너무 부끄러웠다.
얼마 전 남편과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만큼 앞으로 더 살면 곧 환갑이라는 소름돋는 얘기를 나눴다. 이렇게 눈깜짝할 새에 나이가 드는 거란 걸 수치로 따져보니 우리가 보는 어른들도 본인도 모르게 나이가 든 것이겠구나 싶었다. 그러니 어른에게 희생이나 배려를 기대하는 걸 당연시 하는 것도 폭력이란 생각도 들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하니, 나이가 든다고 갑자기 성숙해지거나 평안해지는 게 아님을 알고있다. 그렇지만 흔들릴 때 뿌리를 더 깊게 내리는 방법이나 하물며 흔들릴 때 속으로 외는 주문처럼 버틸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는 갖춰야 하는데 누군가는 자녀 둘을 길러내는 시간이었을 36년이 지나도록 나는 아직 찾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