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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윙크의사 Jan 20. 2023

고통에 대한 회고록 (4)

태어나, 가장 아팠던 날들의 기록

당시 내가 겪은 통증은, 일반적으로 뼈나 근육을 다쳐서 만들어지는 통증이 아니었다. 강한 충격으로 안구와 뼈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얼굴 부위를 지나는 삼차신경이 손상되며 생긴 ‘신경통’이었던 것이다. 삼차신경... 얼굴과 머리에서 오는 통각과 온도감각을 뇌에 전달하는 뇌신경이다. 의과대학 본과 학생 시절 배운 지식을 되짚어 떠올려 본다.


삼차신경 병증의 흔한 원인 중 하나는 외상이다. 두개골 기저부에 심한 충격이 가해질 때 근처를 통과하는 삼차신경이 손상을 입으면서 나타난다. 날카로운 칼로 찌르는 듯한 혹은 강한 전기가 통하는 듯한 심한 통증이 갑자기 나타나서, 수 초 혹은 수 분 내에 사라지고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참기 어려운 심한 통증이 오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얼굴을 움찔거리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대학교병원 의학 정보 참조)


환자들이 느끼는 ‘주관적인’ 통증을 ‘객관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의사들은 통증 점수 (pain scale)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입원하게 되면 병동 어디에나 붙어 있는 아래 그림이 바로 그 통증 점수다. 두 번째 마취에서 깨던 순간, 나는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9~10점짜리 통증을 느꼈었다.


입원실에 붙어 있던 통증 점수 (Pain scale), 전공의 때 나는 환자들에게 이걸 가리키며 지금 통증이 몇 점이냐 묻곤 했다.


아찔했다. 신경통의 예후가 얼마나 나쁜지 환자를 통해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후유증(sequele)이 남아, 평생 예측할 수 없는 통증으로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기도 한다. 나쁠 경우,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CRPS)으로 평생 고통받을 수도 있다.


두려웠다. 고통이 끝나지 않을까 봐. 평생 한쪽 눈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비극적인 운명을 이제 겨우 받아들였는데, 끔찍한 고통이 뒤따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렇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뒤돌아보거나 혹은 너무 앞서는 것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내가 너무나 잘 알았다.


야밤중에 동료 의사가 처방해 준 신경통 약을 삼키며 되뇌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에서나 최선을 다하자고. 그 외 영역은 함부로 욕심내고 넘보지 말자고.


그렇게 두려움과 공포와 싸우며, 나는 진통제를 삼켰다. 통증과 함께 요동쳤던 감정들도 서서히 함께 흐릿해졌다. 나는 며칠 밤을 그렇게 흐릿해진 상태로 잠이 들었다.


이후 세 번째 또 다른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다. 얼굴의 조각난 뼈들을 맞추는 성형외과 수술이었다. 6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을 발휘해 수술한 성형외과 교수님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이번 수술 후에는, 얼굴이 퉁퉁 부어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부은 얼굴이 가라앉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나는 얼굴에 얼음팩을 댄 채 3일을 내리 앉아서 잤다. 인간이 앉아서 잘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우친 힘겨운 시간이었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날들을 견뎌내는 동안, 많은 분이 안부, 응원,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도저히 핸드폰을 들여다볼 엄두도 나지 않는 시기였기에, 일, 광고, 알림을 더하니 카톡 메시지 700+ 가 쌓여 있었다.


고통에 점철된 시기 동안 오롯이 날 돌봐주신 엄마와, 의안보다는 본래 안구의 형태를 보존하기 위해 사명을 다해 애써주신 안과 교수님들, 매일 상태를 살피고 챙겨준 소화기내과 교수님들과 동료들, 기도로 함께 해주신 신부님, 수녀님들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고통스러운 시기가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끝나지 않을까 봐 겁이 났던 시간을 통해, 고통의 본질은 예측할 수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PCA (Patient Controlled Analgesia) 버튼을 누르는 것 말고는, 그저 이 통증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5초만, 1분만, 10분만… 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잠이 들어 있었다. 고통을 견뎌내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그리고 시간의 힘을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위대한 교훈을 얻은 순간이다.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비극적 사고로 평생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뎌야 했던 멕시코 초현실주의 여류 화가이다. 평소에 좋아하는 인물이었는데, 내가 이런 일을 겪게 되니 가슴에 큰 위로로 남는다. 고통을 예술과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강인함과 용기, 인내와 소명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32세 환자 서 O 주,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선물과도 같은 두 번째 삶을 얻었다.


고통을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의 숭고한 삶을 본받아, 나 또한 귀하게 얻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신중히 고민하기로 다짐하며, 고통에 대한 본 회고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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