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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윙크의사 Jan 11. 2023

고통에 대한 회고록 (3)

태어나, 가장 아팠던 날들의 기록

중환자실에서와 달리, 병동에는 담당 주치의와 담당 간호사 그리고 엄마가 있었다. 통증의 정도가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의지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안을 완화해 준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 겪는 정체불명의 강렬한 고통에, 나는 비명을 지르고 흐느낄 뿐이었으며 엄마는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때, 같은 병실의 90대 할머니 환자를 간병하던, 70대 할머니 여사님이 내 옆으로 오셨다. 본인을 ‘마리아’라고 소개하셨던 분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환자와 간병인이 둘 다 같은 할머니뻘인데, 누가 누구를 돌볼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게 여겨졌던 분들이다.


사실 입원 초에는, 잠시도 쉬지 않고 서로 말다툼하는 두 분을 보며, 마리아 여사님을 환자에게 못되게 구는 나쁜 간병인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참지 못한 내가 ‘조용히 좀 해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었고 말이다.


마리아 여사님은, 고통을 못 이기고 눈물을 흘리는 내 얼굴을 손수 닦아 주며, 무언가를 조용히 읊조리셨다. “성모 마리아님,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생면부지의, 그것도 내가 싫어했던 타인이, 나를 고이 쓰다듬으며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기도의 역할은, 고통의 양과 강도를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 기도의 힘은, 당사자인 내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견뎌낼 힘을 찾게 하는 데 의미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었을까.


두피와 좌측 안면부를 타고 뜨겁게 느껴지는 고통에 울부짖던 내 목소리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진통제가 도착할 때까지, 할머니 ‘마리아’ 여사님은 열심히 본인 눈물을 훔치며, 내 곁에서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도록 진심을 담아 기도해주셨다.


진통제가 기진맥진해진 내 팔 정맥을 통해 들어가자. 지친 나는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때까지, 여사님은 당황한 엄마 어깨를 끌어안고 손을 꼭 붙잡은 채 위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마음이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혹은 위로하는 일 모두가 말이다.


알고 보니, 마리아 여사님과 여사님이 돌보던 할머니 환자는 오랫동안 가족처럼 함께 해 온 사이였다. 수술 후 회복을 위해서 영양분 섭취가 너무나 중요한데, 잘 드시지 않는 환자를 어떻게든 먹게 하려고 매일 큰 소리로 씨름을 했던 것이었다.


소변에서 항생제 내성균이 나오거나 미열이 나서 퇴원이 무효가 되었을 때도, 마리아 여사님은 간병인으로서 그 흔한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마리아 여사님은, 환자를 아끼는, 좋은 간병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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