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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윙크의사 Jan 06. 2023

고통에 대한 회고록 (2)

태어나, 가장 아팠던 날들의 기록

첫 번째 수술이 끝나고 겨우 조금 나아졌다 싶었는데, 안구 혼탁과 급성 감염 위험으로 상태가 나빠진 나는, 결국 두 번째 응급 수술을 받게 되었다.


대학병원에서 갑자기 당일 응급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환자가 전신 마취에 적합한지 확인하는 검사들이 필요한데, 이미 꽉 차 있는 스케줄에 억지로 쑤셔 넣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담당 주치의는 숨이 넘어갈 듯 바빠진다. 검사가 빨리 진행되도록 부탁하러 다니고, 마취과에 수술방을 열어달라고 싹싹 빈다. 한때 나도 했던 일이기에, 맨 먼저 담당 전공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동식 쇠침대에 누워 수술방으로 끌려가는 내내, 안일했던 지난 시간들에 반성했다. 멀리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보내던 엄마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사원 선생님이 차갑게 식은 내 발에 이불을 끌어다 덮어준다. 낭떠러지 같은 순간에 느끼는 사소한 배려가, 그토록 눈물나게 고마울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간절한 나는, 속으로 수차례 읊조린다. '하느님, 제발 더 나빠지지만 않게, 해주세요. 이번 수술이 잘 되면,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게요.'라고.


차가운 수술대 위로 옮겨졌다. 하얀 천장과, 시릴 만큼 밝은 수술방 조명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야말로 '응급' 수술이었던 만큼 나를 뺀 주변은 온통 복잡스럽고 요란하다. 이 공간에서 당장 수행할 임무가 부재한 사람은 나뿐이다. 침을 꿀꺽 삼키며, 불안한 마음도 애써 함께 삼켜보려 노력한다. 살면서 두 번째 겪어보는 전신마취 수술이, 너무나 어색하고 남의 일 같이 느껴진다. 아니, 한쪽 시력을 잃은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다른 세상 일처럼 비현실적이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아니 그것도 모자라 꿈속에서만 가능한 그런 종류의 일 같다.


그 순간 누가 나를 부른다. 모두 스머프처럼 똑같은 파란 수술복과 빵모자, 마스크를 낀 상태라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다. 내가 못 알아보는 걸 눈치챘는지, 그 사람은 내 어깨를 다정하게 잡으며 말한다. "누나, 저 상훈이에요. 잘될 거니까 걱정 마세요."  학생 시절 친하게 지낸 동생이, 어엿한 마취통증의학과 치프가 되어 내게 위로를 건넨다. 잔뜩 긴장한 탓에 말은 안 나오고 한쪽 눈에 눈물만 또르르 흘렀다. "프로포폴 얼마.."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온통 아득해진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수술이 시작되었다. 깊게 잠에 든 채로.


두 번째 마취에서 깨는 순간, 깜짝 놀라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좌측 안면부와 두피 쪽으로, 생전 처음 느껴보는, 높은 강도의 강렬하고 타는 듯한 두통이 느껴졌다. 나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날카롭게 찢어지고 불에 타는 듯한 통증에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다. 시작과 끝이 가늠이 안 되기에 정말 힘들고 두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닿기만 해도 통증이 심해져, 손 끝을 두피에 댈 수 조차 없었다. 그렇게 엉거주춤 손을 머리 위에 띄운 채 나는 울부짖으며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늦게 들어간 수술이었기에, 끝난 시간은 늦은 밤이었을 것이다. 회복실이 문을 닫아 나는 중환자실 한쪽 구석에서 깨어났다. 전공의 시절 하루에도 수 회씩 드나들던 중환자실이다. 상태가 나쁜 환자 곁에서는 같이 밤을 지새우기도 했던, 그 익숙하고도 슬픈 중환자실 구석에서, 환자복을 입은 내가 아프다고 울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날따라 아는 얼굴이 하나도 안 보였다. 바쁜 업무로 무심한 의료진과, 고통에 울부짖는 나 자신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에 좌절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고통에 울부짖던 나는, 이내 침대에 실려 병동으로 올려졌다. 병실로 이동하는 입구에서, 나는 미친 사람처럼 "진통제.. 제발.. 모르핀 주세요.."라며 마약성 진통제부터 찾았다. 소식을 듣고 쫓아 올라온 담당 전공의와 간호사, 그리고 누구보다 우리 엄마는 생전 처음 보는 나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안압이 올라서 두통이 생긴 건지 (만약 그렇다면, 뇌출혈이나 뇌손상이 발생하는 중증 상황이기에) 확인해야 했으므로, 담당 전공의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는 내 눈을 벌려, 안압계를 대고 버튼을 반복해 눌렀다.


"삐빅 삐빅, 삑" 안압이 잘 재 지지 않다가, 최종적으로 확인된 수치는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 강한 통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두려움과 함께 나는 더욱 절박해졌다. 담당 전공의 선생님을 붙잡고, 안압 잘 못 잰 것 아니냐고 멀쩡한 눈을 다시 한번 재보라고 재촉했다. 내가 의사일 때 가장 싫어했던 언행을, 환자가 된 나는 마구 저지르고 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었기에, 나도, 담당 전공의도, 담당 전문의도 모두가 방법을 몰랐다. 보호자인 엄마도,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센 강도의 통증 앞에서, 내게 당장 필요한 것은 진통제였다. 허나, 마약성 진통제는 필요에 따라 바로 준비되어 맞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일단 처방을 하고, 간호사가 처방을 확인하면 약국에 연락하고, 약국에서 약을 준비하면, 사원 선생님이 그 약을 타다가, 병동에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30분은 소요되는 그 시간의 공백이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다. 인턴이었을 때, 환자가 진통제가 필요하다는 노티를 늦게 보거나 깜빡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세상엔 직접 경험해 본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이토록 많았다.


통증이 언제 끝날지 모른 채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온통 절망스럽고 끔찍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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