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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윙크의사 Jan 04. 2023

고통에 대한 회고록 (1)

태어나, 가장 아팠던 날들의 기록

사고 당일에 진행된 응급 안구 봉합술은 약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자정이 다 돼서 끝났다는데, 나는 진통제로 몽롱한 상태로 병실로 올라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시경실의 가장 어른 교수님께서,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곁을 지켜주시고 또 부모님께 상황을 전달해주셨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의사로 일하면서 수많은 환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마취와 수술 동의서를 받고, 또 수술방까지 옮기는 걸 도왔는데, 내가 그 수술대 위에 오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역시 인간의 삶이란, 예측 불가능한 거다.


첫 번째 수술 이후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시력은 잃었지만 외관상 최대한 이전과 비슷하도록 왼쪽 안구의 모양과 부피를 유지하는 것, 둘째는 감염이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 특히 외부에서 다친 눈에 감염이 진행할 경우, 반대쪽 눈도 잃을 확률이 크다고 했다. 유일하게 남은 하나의 눈, 내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그 소중한 눈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안과 선생님들은 매일 같이 양쪽 눈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퉁퉁 부어서 소시지 같은 눈꺼풀을 조심스레 면봉으로 들어 올려서 말이다. 내 눈은 지금 어떤 상태인 걸까. 궁금하고 겁도 나지만 내심 태연한 척 한다. 엄마는 매일 아침 시험대에 오르는 것 같다고 했다. 혹여나, 조금이라도 감염 징후가 보이면 큰일이었다. 상상만 해도 눈앞이, 그리고 머릿속이 새카매졌다.


절박하고 간절했다. 매일 새벽잠에서 깨자마자, 다치지 않은 눈이 어제와 같이 잘 보이는지 살폈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많은 균들을 죽일 수 있는 센 항생제 두 가지를 맞았다. 항생제가 독해서 혈관은 다 터져 쪼그라들고, 양팔은 온통 주사 바늘로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제발, 한쪽 눈만은 지켜주소서.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도와주소서. 매일 그렇게 되뇌었다.


하늘이 도와주었는지, 상태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멍과 부기도 빠지고, 수술한 안구의 출혈반(Ecchymosis)도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절박하고 간절했던 마음은 이내 안도와 함께 옅어졌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말에 안일해졌다. 환자로 지내는 병원 생활에도 익숙해져서, 나는 점차 이것저것 다른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SNS와 메신저도 보고 싶었고, 병문안 온다는 친구들도 만나고 싶었고, 더 좋은 헤드폰도 갖고 싶었다.


첫 응급 수술 후 느끼는 것들이 가장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통증도, 붓기도, 그리고 한 눈을 잃은 아픔도 잘 버텨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손발이 되어주는 보호자 엄마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할 만하다 싶었다. 점차 나아지겠지 싶은 희망, 그리고 더 나쁜 일은 없겠지 하는 교만을 동시에 품었다. 빼빼로데이에는, 여유롭게 빼빼로를 사다가 병동과 외래에 실어 날랐다. 아무렇지 않은 듯 씩씩하게 지내는 모습을 통해, 어쩌면 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일주일이 지나 주말이 되었다. 당직을 제외하고 의료진이 부재한 주말의 병동은 고요하고 한산한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이 감돈다. 내가 의사로 환자를 보던 시절, 금요일 퇴근 전에 들뜬 목소리로 "주말 잘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건네곤 했는데, 불안하게 병원에 갇혀 있을 환자들에게 얼마나 배려 없는 말이었는지 깨닫는다. 정말 고맙게도, 안과 선생님들은 주말에도 나를 챙겨주었고,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잠시 물건을 챙기러 집에 다녀오셨고, 엄마가 자리를 비운 동안 병원 안에 홀로 남은 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에어팟 맥스를 구입하고 엄마한테 부탁해서 받아 든 나, 얼굴이 아픈데 무리하게 껴보는 나.


그리고 분주한 월요일이 되었다. 눈이 피곤한 것이, 어제 무리를 했나 싶었다. 무겁고 꽉 끼는 에어팟 맥스를 주문해서 집에 들른 엄마에게 가져다주길 부탁했다. 얼굴뼈가 아직 어긋나 있는 상태로 헤드폰을 끼니 어딘가 아팠다. 컨디션이 별로인가 싶었지만, 대수롭지 않은 아침이었다. 그렇게 지난주와 똑같이, 아침 안약을 넣고 휠체어에 옮겨 탄 채, 안과 외래에 내려갔다.


다친 눈을 벌려 보던 안과 교수님이 멈칫하신다. 여러 차례 유심히 들여다보신 후,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신다. "눈이 흐려졌어요." 용혈 작용(Hemolysis)인지, 감염인지 모르겠지만, 다친 눈이 갑자기 혼탁해졌다고 한다. 어제까지 분명 괜찮았는데... 원래 환자가 나빠지는 일은 갑자기 생긴다는 것을 알면서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오후에 다시 한번 보자고 했다. 목이 타고, 마음이 불안했다. 결국 응급으로 '유리체절제술'이라는 안구 안쪽을 씻어내는 수술을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병실로 돌아온 내가 목이 타서 무심코 귤을 까먹은 바람에, 8시간 이상 금식이 필요한 전신 마취 수술은 오후 4시가 되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눕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채로, 그토록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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