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살펴봤듯이 자동 진행 게임은 터치 조작의 불편함으로 인해서 주류로 올라섰다. 하지만 자동 진행을 도입한 결과 게임의 특성을 잃어버린 게임답지 않은 게임이 등장했다. 게임의 중요한 특징은 1) 플레이어에게 '선택'이 있어야 하고,2) 선택으로 인해 결과가 '통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매체와 게임의 차이는 참여에 있다. 참여가 의미 있으려면 선택이 있고,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가 의미 있게 나타나야 한다. '게임 같은 영화' 편에서 인터렉티브 무비가 게임이 될 수 없는 이유 역시 이러한 게임의 특성이 결여돼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유형의 자동 진행 게임에 선택과 통제의 특징이 살아남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자동 진행 게임을 크게 ‘자동사냥형’, ‘방치형’, ‘수집형’, ‘오토 배틀형’ 4가지로 나눠보겠다. 각 분류의 게임이 선택과 결과 통제를 제대로 가지는지 분석해보고 게임으로 불릴만한지 판단해보자.
자동 사냥류 게임의 대표인 '검은 사막 모바일'
가장 대중적인 '자동사냥형' 게임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검은 사막 모바일’, ‘리니지 m’으로 대표되는 이 장르는 자동으로 사냥과 퀘스트가 진행되는 특징을 가진다. 자동진행 버튼을 누르면 그다음 어떤 선택도 굳이 할 필요 없다. 자동으로 사냥을 해주기에 어떤 방법으로 사냥을 할지 선택권이 없다. 전투력과 레벨이 충족될 때까지 게임을 켜놓을지 여부가 유일한 선택이다. 선택이 없으니 결과도 당연히 일괄적이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기계를 켜놓기만 한다면 엔드 스펙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선택도, 결과 통제도 가지지 못하는 장르이다.
힐링하기 좋은 '펭귄의 섬'
또 다른 자동진행의 대표 장르인 ‘방치형’은 이보다 나을까? 거지 키우기와 같은 게임이 대표적 예시인 이 장르의 게임은 선택이 존재한다. 다양한 육성 선택지 중에서 플레이어는 더 빠르게 성장할지, 안정적으로 성장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선택에 따라 결과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방치형 게임의 대다수는 게임오버가 없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다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결과로 향하는 속도만 달라진다. 선택이 결과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동사냥형 게임과 마찬가지로 결함을 가진다.
한때 재밌게 즐겼지만 한계를 느낀 '랑그릿사'
'수집형' 게임은 결함을 보완했을까? 페그오(페이트 그랜드 오더), 랑그릿사 등으로 대표되는 이 장르는 제한된 선택과 뚜렷한 결과 통제를 특징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이 유형의 게임은 카드 덱을 짜고, 조합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카드를 선택하고 조합한다는 점에서 플레이어의 선택이 있다. 또한 카드 조합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선택이 결과를 통제한다 볼 수 있다. 이쯤 보면 완벽해 보이지만, 수집형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있어서 게임 외적 요소가 제한한다는 점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안에서 모든 선택지를 처음부터 제공받지 못한다. 카드 뽑기를 통해 확률적으로 획득한 카드만 선택할 수 있다. 현금 투자를 통해 선택지를 늘릴 수 있는데, 이는 게임 외적 요소로 게임 자체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게임이라는 호위징아의 마법의 원을 파괴하는 행위다. 정리하자면 수집형 게임은 선택이 있고 그 선택에 의해 결과가 통제되지만, 게임 외적 요소(현실 자본)의 개입으로 선택권이 결정된다.
TFT(롤토체스)는 모바일에서 즐기기에 적합하다.
그럼 자동진행 장르의 게임은 게임 다울 수 없을까? 해답은 의외로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에서 인기를 끌던 유즈맵 타워 디팬스를 생각해보자. 어떤 타워를, 어디에 지을지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되고 선택에 따라 라운드 클리어가 결정된다. 랜덤 타워 디팬스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랜덤 성을 추가하되, 뽑기를 하는데 현금이 아닌 게임 내에서만 제공되는 단발성 재화를 통해 이뤄지도록 설계되었다. 게임 외적 요소인 현금이 게임의 선택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런 타워 디팬스 게임에 PVP 요소를 추가한 것이 '오토 배틀'(오토 체스류) 장르이다. 매번 선택지는 다양하고 랜덤으로 제공되며, 제한된 제화 안에서 선택을 내린다. 다양한 패와 위치 선정에 따라 다른 유저와의 승패가 결정된다. 이처럼 타워 디팬스와 오토 배틀 장르는 자동진행을 제대로 활용한 게임다운 게임이다.
스마트폰의 불편한 조작감으로 인해 자동진행 게임은 인기를 끌었다. 다만 일부 장르의 발전 방향이 게임의 본질을 훼손하는 정도에 이르러 더 이상 게임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영화의 게임화처럼, 게임도 선택이 없어지고 선택이 결과를 통제하지 못하며 상호작용이 없는, 영화와 다를 바 없는 게임이 되고 있다. 하지만 게임의 본질은 상호작용이다. 변화는 좋지만 변화의 바람이 본질을 삼키지 못하도록 게임 기획자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철저히 감시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