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다
돌이켜보면 딱히, 책과 인연이 깊은 삶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했다. 그런데 난 책을 그다지 즐겨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학시절, 그 당시 유행했던 일본 로맨스 소설을 줄기차게 읽기는 했다만, 인생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았다. 그저 동시대 유행했던 미드 '섹스 앤더 시티'를 정주행했던 것과 같은 유행 따라잡기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아무나 하나
그러니까 살면서 단 한 번도 '작가'를 꿈꿔본 적은 없었다. 당연히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초등학교 시절, 글짓기 우수상 한번 탄 것이 내 인생에서 글과 관련된 상의 전부였다. 입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책과 먼 인생을 산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 편입한 직후였다. 그 당시 '살 길'이라고 여겨졌던 편입 시험을 위해 1년여 시간을 공부에 매진했었다. 20대 초반의 선택이란 것이 지혜를 기대하기는 어렵기에 편입 성공의 기쁨도 잠시, 내가 잡은 동아줄은 인생의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선택은 나를 '홍보'의 길로 인도했다.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직감'으로 선택을 해왔다. 객관적인 데이터나 어른들의 조언 등 을 참고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그때의 내가 느낀 기분, 그때의 심리 상태, 그 당시 친했던 친구의 피상적인 조언, 그 시절의 트렌드 등에 휩쓸려 순간적으로 '선택'해 왔다. 대학교 전공이 그랬고, 편입이 그랬고, 학교와 학과가 그랬고, 첫 직장이 그랬고, 여행도 그랬다. 소신 있게 '선택' 했다고 믿어왔지만, 그냥 이리저리 휩쓸려 왔을 뿐이었다.
그래도 직장은, 첫 발이 가장 중요했는데
취준생 시절은 고단했다. 소신 없이 여기저기 찔러본 것에 불과하니까 서류통과도 어림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인데, 그 당시엔 '비련의 여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원망할 수 있는 것들은 죄다 긁어모아 원망하고, 탓할 수 있는 것들은 죄다 탓했다. 속이 후련하긴 했어도 인생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같이 취업 준비했던 동생의 취업소식이 들렸다. 남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뭔가 재밌어 보였고 그럴듯해 보였다. 같은 데를 지원했고, 회사 동료가 되었다. 그렇게 '홍보 인생'이 시작되었다.
직장이란 것이 한번 발을 디디면 빼기가 어려운 곳인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순진하게도 언제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겼다. 마치, 나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그러다 첫 번째 이직을 한 후에 깨달았다. '여기서 벗어나기는 정말 힘들겠구나, 나만의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겠구나.' 두 번째 이직을 한 후, 1년간은 적응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 싶었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었다. 1년이 지난 후, 회사 내외부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분위기였지만, 스스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근무 여건은 좋아졌지만,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나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의문점이 자꾸만 생겼다.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나를 잘 몰랐다. 나라는 인간은 누구인가. 나를 찾는 시간이 최우선 순위가 되었다. 책에서 길을 찾기 시작했다. 고전을 읽고, 철학을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었다. 현실을 부정할수록, 오히려 책에 빠져들었다. 책은 내게 다른 세계로 날아갈 날개를 달아주는 것 같았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책이 좋았다. 책이 나를 구원해줄 것 같았다.
나도 책을 써야겠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 생각을 불현듯 즉흥적으로 하게 되었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정말 거짓말같이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1년 반 동안 출근 전 2시간을 책을 읽거나 쓰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주말 하루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2년 8개월 만에 책이 나왔다. 중간에 결혼도 하고 그러면서 계획보다는 출간 시점이 늦춰지긴 했지만, 결국 원고를 완성했고 투고도 했고 수많은 거절을 겪은 후에 나온 결실이었다. 홍보일을 하면서 거절은 일상이지만, 거절당하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원고 투고 역시, 거절의 연속이었다. 출판사 28여 군데를 피칭했고, 모두 원고를 외면했다. 한 출판사는 출판을 한 후에 팔리지 않는 부수는 내가 모조리 다 구매를 하는 조건으로 출판을 해주겠다고도 하였다. 출판의 길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때였다.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책은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았다. 고백하건대, 책이 나오면 다른 인생을 살 줄 알았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아서였을까. 그보다는 '책을 대하는 태도'에서 발생한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책에 인생을 걸면 안 되는 거 아니었을까? 그 당시 난 나의 경쟁력을 '책'에서 찾고자 했던 것 같다. 업계 실무진 중에서 유일하게 '책을 낸 이'로 타이틀을 단 후에 경력을 더 쌓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책은 내 타이틀이 되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뤘다는 성취감은 아직도 가슴 한켠에 깊게 새겨져 있다.
그럼에도, 작가를 포기하지 않았다
첫 책의 실패를 맛본 후에도 나는 여전히 작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작가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책을 쓰고 싶을 뿐이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뼈아픈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전과 한 가지 다른 점은,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내 인생은 꽤 만족스럽고 또 책에 인생을 걸 만큼 절박하지도 않다.
내 생각과 인생을 담은 책들이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고 그들의 생각과 인생에 아주 작은 영향이라도 끼친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언젠가는 그런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