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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Sep 24. 2019

놀이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아이가 스스로 주도하고 즐길 수 있어야 '진짜 놀이'다

 나는 잘 놀아주는 엄마일까?


 날마다 아이랑 놀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는 전업 엄마. 이것은 내 브런치 작가 소개말이다. 그렇다. 나는 아이와 함께 놀면서 시간을 공유하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우연히 이러한 내 가치관에 맞는 한 책을 읽게 되었다.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이 지은 <놀이의 반란>. 마음 맞는 어린이집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한지도 어느새 3개월째. 4번째 책이 바로 이 <놀이의 반란>이었다. 응?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인데? 기억을 떠올려보니, 아이를 낳은 직후 본 EBS 다큐프라임의 제목과 같았다. 그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었다.


EBS 다큐프라임 <놀이의 반란> 3부작 (2012)

놀이의 반란 1편 : 놀이, 아이의 본능 

놀이의 반란 2편 : 엄마놀이, 아빠 놀이 

놀이의 반란 3편 : 놀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다 


 2년 전, 다큐를 처음 접했을 때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땐 아기가 너무 어려서 그렇구나, 하고 흘려본 것 같다. 어쩐지, 기억이 잘 나지 않더라니. 돌이 지나고 아이랑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을 땐 어떻게 놀아주는 것이 제대로 놀아주는 것인지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쓰지 않으며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함께 하는 것에 의의를 두면서.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책을 펴 들고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딴에는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봐 준다고 노력한 것 같은데...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문득, 아이에게 다른 놀잇감을 제시하고, 이렇게 놀아봐, 저렇게 노는 건 어때? 하며 놀이를 이끌려고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또, 이건 무슨 색이야? 이 숫자는 뭐지? 하며 아이에게 놀이랑 상관없는 질문을 했던 것도 생각났다.


 헉. 혹시, 나... 아이랑 '가짜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설마 나.. '학습형 엄마'나 '주도형 엄마' 였던 걸까? 나를 돌아보게 됐다. 스스로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엄마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는 동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건가 보다.



놀이는 아이의 본능이자 삶 그 자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실러는 말했다. "놀이는 인간 경험의 결정적인 요소이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최고 열망과 이상을 깨닫는다"라고.


 그렇다면 과연, 놀이란 무엇일까?

 놀이의 영단어인 '플레이(Play)'의 어원은 갈증이라는 뜻의 라틴어 '플라가(Plaga)'에서 유래했다. 목마른 이가 물을 마시듯,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원하는 행동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놀이란, 자발적으로 이뤄진, 특별한 목적이 없는, 즐겁고 재미있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러한 놀이는 아이의 삶이자 본능인 것이다.
-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 <놀이의 반란> 10p


어린이집 오전 산책시간에 나뭇가지, 앵두 등 자연을 관찰하고 매일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 © 엄마 엘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으로, 원장님의 교육철학이 마음에 들어 만족하면서 아이를 보내고 있다. 원장님은 '아이들에겐 자연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철학을 갖고 계신다. (어린이집 이름도 자연 어린이집이다)


 그래서 궂은 날씨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매일같이 단지 내 산책길을 걷고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는다. 아이들은 단지 안에 있는 사과, 감, 앵두나무에 열매가 맺히고 익는 것을 보며 계절을 느끼고, 개미, 거미, 매미를 관찰하는 등 일상에서 자연을 접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엔 특별활동 프로그램(체육, 영어 등)이 없고 아이 돌봄에 집중하기 위해 키즈 노트도 사용하고 있지 않는다.

  

 기관에 가기 전에도 아이는 밀가루, 설탕, 요구르트, 미역 등 오감놀이를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는 낯선 재료나 상황에 거부감이 적고 쉽게 적응하는 편이다. 자율성이 커지는 두 돌이 지나면서 엄마 품을 떠나 보다 적극적으로 바깥세상을 탐색하고 경험하며 스스로 놀이를 이끌고 즐기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32개월인 현재에도 매일같이 활발한 에너지를 놀이터에서 뿜어 낸다.



  '놀이=교육'은 성립될 수 없다


 많은 부모들이 '학습도 놀이처럼'할 수 있고, '놀이도 또 하나의 교육'이라고 착각한다. 이 책에 따르면, 실제로 부모들에게 "놀이가 무엇일까요?"라고 물으면, 많은 부모들이 "놀이는 아이가 재미있고 즐겁게 무언가를 배우고 얻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교육"이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작팀은 놀이는 교육이 절대로 될 수 없고 단언한다. 놀이는 온전히 놀이일 때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뤄야 할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놀이가 아니라 학습이 된다. 아이가 아무리 재미있고 즐거워 '보인다'라고 해도 말이다.


 아이는 자기가 시작하고 자기가 끝을 낼 수 없을 때, 그것을 놀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자유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놀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진짜 놀이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문화센터 미술놀이 시간. 달팽이를 그리라는 미션에 아이는 자신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있다 © 엄마 엘리


 놀이를 할 때 ‘잘 놀아야 해! 내가 이 놀이를 완주해야 돼! 이 놀이를 꼭 성공해야 돼!’라고 생각하며 노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시간이 나면 그냥 기분 좋게 노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기대감이 너무 높은 아이들은 접하는 모든 활동을 ‘잘 수행해야 하는 과제’로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학습이 아닌 놀이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잘 수행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책도 끝까지 읽어야 하는 과제, 퍼즐도 모두 맞추어야 하는 과제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노는 것도, 공놀이를 하는 것도, 블록을 쌓는 것도 모두 수행과제로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자신 없어하는 활동은 그것이 놀이든 학습이든 일단 방해를 하는 것이다.
-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 <놀이의 반란> 43p



모든 색을 섞어서 손도장, 발도장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 엄마 엘리



 원광아동삼당센터 이영애 소장은 "부모의 놀이 태도가 진짜 놀이를 만든다"라고 했다.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에 따라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놀이를 통해 뭘 키워주고 싶다고 생각하기보다, 그저 아이가 즐겁고 엄마, 아빠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그 마음가짐 하나로도 아이는 제대로 된 놀이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단순하고 쉬운 것을,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했던가.



아이 스스로 이끄는 놀이가 '진짜 놀이'다


 

 나는 아무런 목적이 없이 순수하게 아이와 놀고 있는가? 아이랑 물감 놀이를 하면서 색깔을 알려주려고 하고, 인형놀이를 하면서 숫자를 세고, 소꿉놀이를 하며 영어 단어를 알려주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반성했다.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를 구분하는 가장 명확한 기준은 '아이가 놀이를 주도적으로 하고 있느냐 아니냐'라고 한다. 아이가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할 때 알려주는 것은 물론 괜찮다. 하지만 놀이하는 과정에서 맥락과 상관없이, 아이는 관심이 1도 없는데 뭐라도 더 알려주려고 하는 부모의 태도는 아이가 놀이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가짜 놀이가 될 확률이 높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가위로 종이 오리기에 집중하는 아이(좌) 블럭으로 기차를 만들고 인형들을 태우며 상상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우) © 엄마 엘리



그럼, 아이의 진짜 놀이를 위해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 책에 나온 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엄마가 놀이를 통해 무언가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된다. '이건 노란색이야, 이건 굴착기야, 문어 다리는 8개야.' 이런 식의 놀이는 잘못된 놀이 방법이라고. (미안해, 이젠 안 그럴게)

둘째,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놀이 시간 동안 엄마의 개입을 줄이고 아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파악해야 아이는 자기 스스로 놀이를 이끄는 주도성을 배울 수 있게 된다.

셋째, 놀이를 통해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 멀뚱멀뚱 지켜보고만 있는 것보다는 옆에서 아이의 놀이를 지지해주고 아이의 표현을 칭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식목일날, 화분에 직접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기뻐하는 아이(좌) 수영을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우) © 엄마 엘리



 아이는 놀이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만난다. 놀이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진정한 놀이를 통해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대인관계를 형성하며 사회성을 기르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등을 키울 수 있다.
 어린 시기부터 제대로 된 놀이를 반복한다면 아이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고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놀이하기 때문이다.
-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 <놀이의 반란> 57p


 아이에게 놀이는 단순히 여가의 의미를 넘어선다. 아이에게 놀이는 본능이자 권리이며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바라는 부모라면 무엇보다 아이에게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부모가 특별히 뭘 더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그저 아이가 스스로 놀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아이가 원할 때 동참해주고 아이의 놀이를 지지해주는 것. 아이가 남보다 뒤처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해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무런 목적 없이 아이와의 놀이 시간을 즐기는 것. 이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놀이에 있어서만은 아이를 믿고 전적으로 아이를 따라가자. 놀이 시간에는 아이가 총 연출가, 부모는 연기자라는 것을 잊지 말자. 스스로 이끌고 즐길 수 있는 진짜 놀이를 통해서만 아이는 자신만의 개성을 갖는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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