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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Sep 16. 2019

인생에도 손절매가 필요하다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깝더라도 빨리 포기하는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

  아이를 낳고 주식에 눈을 떴다. 주식은 집안을 폭삭 말아먹는 요괴쯤으로 생각해 멀리했었는데, 다양한 재테크 책을 읽다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주식 투자는 자산을 증식시키는 데 효과적인 투자 방법 중 하나였다. 워런 버핏, 피터 린치, 조지 소로스 등 장기간 주식 투자를 통해 막대한 부를 형성한 전설적인 투자가들도 많았다. 이들의 인생에 녹아든 투자 철학을 공부하면서 주식 투자가 그렇게 위험하지만은 않는구나, 깨달았다. 주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식의 세계에 발을 살포시 담그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자본으로 조금씩 조금씩 사모으다가 오르면 팔고, 떨어지면 사모으면서 신중하게 접근했다. 장이 좋을 때였다. 자고 일어나면 빨간불이 켜졌고 차트는 우상향을 그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작은 간을 탓했다. '어제 더 많이 샀으면, 지금 더 많이 벌었을 텐데...' 손해날 걱정보다 이익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주식에 익숙해질수록 내 간도 커지게 되었고 그만큼 투자금도 불어나게 되었다. 주식은 내렸다가도 오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처럼 끝없이 내려갈 줄은 모른 채.


 -40%. 현재 내 주식 계좌 현황이다. '존버'라는 용어가 있다. 지금 나는 그렇게 버티고 있다. 나에게 남은 카드는 버티기 뿐이 없으니까. 그렇다. 나는 '손절매'에 실패했다. 진작에 발을 뺐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왜냐고? 처음엔 본전 생각이 나서, 그다음에는 버틴 시간이 아까워서.


 한 달 뒤면, 1년 뒤면, 다시 내가 산 가격으로 돌아올지도 모르잖아, 같은 헛된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이제는 안다. 본전 찾기는 요원해졌다는 것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그때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큰 손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손절매를 할 수 있을까? 손해를 감수하고 포기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이렇게나 어렵다


 여기, 소설가가 꿈인 작가 지망생이 있다. 그녀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매해 단편소설을 썼고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무려 30년 동안이나. 그녀는 30년간 소설 쓰기라는 한 우물만 팠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그녀는 50대가 되었고 '노안'으로 눈이 침침해지자 그제야 울며 겨자 먹기로 '절필'을 선언하고 만다.


 그녀는 왜 스스로 도전을 멈추지 못했을까?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꿈에 집착하게 만들었을까?



신춘문예에 30년을 매달렸지만 실패한 강은경 작가의 아이슬란드 여행기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엄마 엘리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포기는 아주 비겁한 것이라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다 보면 뭐라도 이루게 된다고. 목표 끝까지 가보는 도전정신을 우린 아주 높게 쳐준다. 반면,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실패의 동의어다. 그러니 한 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못하게 채찍질한다. 그만두는 것은 나약한 거라고, 한 번 더 도전해보자고, 여기까지 끌고 온 시간과 노력이 아까우니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고 자기 자신을 설득시킨다.

 

 그녀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꿈에 매달리느라 가족, 사랑, 부, 명예, 건강 등 모든 것을 잃은 그녀였다. 30년간 매달린 그 꿈조차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하고 절망했다. 그러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아이슬란드는 실패 그 자체를 찬양한다'는 구절을 보고 무작정 아이슬란드로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녀는 완전히 자신의 꿈을 내려놓지 못했다. 적어도 여행 초반에는. 잘 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멈춘다는 것이,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다.


 결국 포기하나? 양이 머리를 빼고 뒷걸음질하며 울타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더니 곧바로 울타리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거였다. 구멍 안으로 몸이 쏙 빠져 들어갔다. 와아, 영리한 놈이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멈추지 않고 있는 힘껏 더 밀어붙였다면, 나도 그 좁은 구멍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저버린 게 갑자기 큰 잘못처럼 느껴졌다. 저 양처럼 죽을힘을 다해 전력 질주했다면, 나도 바늘구멍 같은 '등단'이라는 구멍을 통과할 수 있지 않았을까?
- 강은경,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113p


 그녀는 꿈을 포기하고 떠난 여행길에서 조차도 자신의 '노오오오력'을 탓하고 만다. 30년간 노력했으면서도 죽을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그래서 포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인가 보다. 하완은 자신의 저서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노력과 시간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더라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실패했음에도 새로운 것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중략) 타이밍을 놓치면 작은 손해에서 그칠 일이 큰 손해로 이어진다. 무작정 버티고 노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겐 노력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아는 용기 말이다.
-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 56p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삶은 계속된다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결코 우리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걸 인정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인정하고 나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그녀는 햄버거 하나에 2만 원이나 하는,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아이슬란드에 단돈 300만 원(1주일 경비) 남짓의 경비만 들고 야영과 히치하이킹만을 이용해 71일간이나 여행을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중에 200만 원 가까이 남겨왔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한 것은 여행이 아니라 '고행'에 가깝다. 아이슬란드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겼다고나 할까. 실패한 인생을 산 자신에게 벌이라도 주는 냥 그녀는 아주 힘겹고 고생스러운 길로 자신을 내몰았다. 몸무게가 11kg나 빠질 정도로. 아주 지독하게 말이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그녀는 자신이 반 평생 미련하게 움켜쥐고 있었던 꿈을 마음속에서 서서히 내려놓기 시작한다. 아이슬란드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여행자,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대자연 속에서 그녀는 위로를 받고 치유를 받는다. 비로소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현재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긴 여행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장장 원고지 1700매에 달하는 실패 인생기 같은 여행기를 쓰게 된다. 이 원고는 서른세 번의 투고 끝에 마침내 500p에 달하는 두꺼운 책 한 권으로 세상에 나왔다. 소설가 강은경 대신, 아이슬란드 여행 전문가 겸 작가 강은경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남은 인생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다시 산다면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이라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고문 따위 붙들지 말아야지. 아이슬란드 사람들처럼 '내일', '다음' 따위의 단어도 버려야지. 수시로 땅속에서 불이 솟구쳐 오르고 땅이 뒤흔들리고 뒤집히는 걸 보며 사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겐 '지금'이 중요하지 '내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략)
 나도 어떤 먼 계획이나 거창한 목적 따위 없이, 그때그때 단기 계획을 세우며 나 좋을 대로 내키는 대로 여행하듯이 살아야지. 순간순간 잘 놀아야지. 뭐가 되려고 아득바득 애쓰지 말고.
- 강은경,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444p  


 꿈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실패는 과정 속에서 만나는 순간일 뿐, 우리의 삶은 이어지며 우리는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한다.


 인생의 길은 하나가 아니다. 용기 있게 꿈을 놓아주면 예상치 못한 다른 인생을 살 기회가 제 발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인생에도 손절매가 필요한 이유다.이것이 한 우물을 파다 실패한 산증인인 그녀가 머나먼 아이슬란드까지 가서 우리에게 펼쳐 보인 메시지가 아닐까.


 그러니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미리 좌절하지 말자. 여행하듯이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도 충분히 괜찮은 인생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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