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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Oct 28. 2019

먹는 걸로 장난치는 재미

표고버섯에 그리고 붙이고! 신나는 푸드 브릿지 놀이

 어렸을 적, 엄마에게 많이 듣던 말.


먹는 걸로 장난치는 거 아니야!



 나는 이 말에 늘 이런 의문이 들었다. "먹는 걸로 장난치면, 왜 안되는데요?" 게다가 난 음식으로 '장난'을 친 기억이 없다. 상에 떨어진 것을 손으로 주어 그릇에 담다가 보니 그 촉감이 궁금해서 좀 세게 짓누르거나, 남은 과자를 으깨고 부셔서 그 가루가 바닥에 흩어진 적은 있어도. 엄마가 보기에는 장난으로 보였을지언정, 난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하지만 내가 그럴 때마다 엄마는 번번이 "먹는 걸로 장난치지 말랬지!!"라며 내 등짝을 후려치곤 했다. 지금도 좀 억울한 기분이다.


 전지적 엄마 시점에서 보자면, 우리 딸이야 말로 '음식으로 장난치기' 1등 선수다. 식탁에 올려진 물컵에 양 손을 욱여넣고 비비적거리다 손을 빼 그 물을 쭈욱 들이켜는가 하면, '나는 아기니깐!'하고 명확한 근거를 대며 양 손으로 스파게티 면을 잡고 우적우적 먹다 머리카락처럼 제 머리 위에 얹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음식으로 장난치면 안돼..는데.." 그러나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아이의 귀까지 닿지는 못한다. 


 아이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장난을 치는 건 아닐 텐데. 아이는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식사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또 하나. 언제까지 음식을 손으로 만지며 비벼대겠어. 이것도 정말 잠깐일 텐데. 하는, 아련한 생각도 스친다. 



음식으로 장난치는 놀이, 푸드 브릿지



 이런 우리 아이를 위해 준비했다. 본격 식재료가 놀잇감이 되는 푸드 브릿지가 그것이다.


 딸아이는 야채, 채소, 과일을 정말 좋아하는데, 이런 아이도 버섯과 가지만은 잘 먹지를 않는 거다. 물컹한 식감이 낯설어 그런가 싶어 오븐에도 구워주고 볶아도 줘보고 튀겨도 줘봤지만 반응이 뜨뜨미지근 하다.


 어린이집에서 매달 야채와 친숙해지기 위한 푸드 브릿지 놀이를 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의 반응이 정말 좋다는 선생님들의 리뷰를 참고하여, 주말에 아이랑 집에서 표고버섯으로 푸드 브릿지 놀이를 하기로 했다. 



표고버섯 위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 © 엄마 엘리




 다양한 모양의 표고버섯을 준비했다. 둥근 부분과 꼭지를 분리하고, 몇 개는 얇게 저며서 그릇에 담았다. 종이와 펜도 그릇 옆에 살포시 놓았다. 아이는 보자마자 알아서 펜과 표고버섯 하나를 집고 콕콕 찍어내기 시작한다. 어느새 검은색 점이 콕콕 박힌 둥근 작품이 하나 완성됐다. 이번에는 뒤집에서 안쪽에 그림을 그린다. 잘린 표고버섯 꼭지 양 옆에 동그라미를 그리니 그게 꼭 눈동자 같다. "어머, 꼭 눈 같네?" 하니, 아이도 동의했는지 빨간색 펜을 뽑아 이번에는 입을 그린다. 눈, 코, 입이 완성됐다.


부엉이를 만들어 볼까?



 색도 모양도 부엉이가 연상됐다. 둥근 표고버섯을 아래 위로 눈사람처럼 놓고 저민 버섯을 양 옆에 놓으니 영락없는 새가 됐다. 세모 모양으로 잘라 뾰족 귀를 만들고, 잘린 꼭지를 활용해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자른 표고버섯을 깔아주니 나뭇잎 위에 있는 한 마리의 부엉이가 완성됐다.



표고버섯으로 만든 부엉이와 바다 거북이 © 엄마 엘리



  아이는 파란색 펜과 갈색 펜을 동시에 잡더니 스케치북에 무언가를 그려낸다. "뭘 표현한 거야?"라고 물으니, "바다야"라고 답하는 아이.


 같은 방식으로 표고버섯 거북이를 만들어 아이가 그린 바다에 띄워줬다. "바다 거북이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네?" 하자 아이는 신이 난 듯 박수를 치며 꺅, 꺅 웃는다. 거북이에 눈이 없다며 손수 눈도 그려준다.


 아이는 표고버섯을 원 없이 만지고 부러뜨리고 자르면서 놀았다. 평소에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던, 먹는 걸로 원 없이 장난을 치니 금기를 깬 묘한 쾌감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아이는 평소보다 더 재밌고 신나게 놀이에 몰입했다. 


 한 동안 집중한 아이는 "이제 그만 할래"라고 말하며 양 손을 들고 화장실 가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놀이를 그만하고 손 씻겠다는 얘기다. "정리 같이하고 씻자. 엄마가 오늘 표고버섯으로 맛있는 점심 만들어줄게" 하니 아이는 좋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표고버섯, 베이컨, 새우 등을 넣어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줬다. 아이가 원래 좋아하는 파스타지만 놀이를 끝내고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어치운다. 포크와 숟가락을 사용해서. 흘린 파스타를 손으로 집어 먹다 장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먹기 전에 놀이시간을 충분히 가져서인지 딸아이답지 않게 음식을 손으로 만지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푸드 브릿지 놀이의 1석 2조 효과랄까. 그래, 다음엔 보라색 가지로 한바탕 놀아보자꾸나. 속으로 다짐해본다. 입 밖으로 꺼낸 즉시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이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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