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 엘리 Oct 05. 2019

상상은 계란판을 타고

3세 아이가 계란판으로 노는 방법 (feat. 휴지심과 볼풀공)

 태풍 미탁이 비를 뿌리던 날. 계속된 비로 하원 후 아이랑 갈 곳이 없어져버렸다. 아이는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활발한 아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채유는 비가 그치면 나가 놀 생각에 신나서 박수를 친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 날 태풍은 심상치 않았고 결국 오후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밖에서 놀 수 없게 되자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날 맞이했다.


 엄마랑 집에서 놀까?
엄마가 재밌는 거 준비해놨어!


 아이랑 놀이터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거실에 비장의 무기를 한 움큼 꾸려놓고 나온 길이었다. 나는 자신만만했다. 엄마가 의기양양하게 '재밌는 놀이'를 하자고 하니 아이는 기대에 부풀어 눈을 반짝였다.



베란다에 쌓인 계란판과 휴지심 대방출


 우와아~~!!!


 현관문을 열고 준비한 놀잇감을 본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거실로 뛰어들어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부랴부랴 아이의 신발부터 벗겼다. 큰 맘먹고 오전에 물걸레질도 했는데, 참.



그동안 차곡차곡 모았던 계란판과 휴지심. 이들은 아주 훌륭한 놀이 재료다. © 엄마 엘리


 오늘의 놀이 재료는 계란판 17장과 10여 개의 휴지심, 그리고 볼풀이다. 평소 계란을 자주 먹는 우리 집에서는 2주일만 지나도 계란판 2~3개가 금방 모인다. 계란판은 물감 놀이할 때도 사용하고 만들기에도 사용할 수 있는 훌륭한 놀이 재료라 베란다 한 판에 차곡차곡 모아놓는 편이다. 가끔 재활용 버리러 갔다가 멀쩡한 계란판이 있으면 주어 오기도 한다. 이렇게 저렇게 모으다 보니 어느덧 17장의 계란판이 쌓였다. 계란 510개의 분량.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하고 같이 모아 온 휴지심도 이날 계란판과 함께 대방출하기로 했다. 비 오는 날, 집에서 신나게 놀아보자! 는 생각으로. 아이가 체력이 좋아지며 거의 매일 밖에서 몇 시간씩 놀다 보니 정작 집에서 놀이를 할 기회가 줄어들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엄마표 놀이를 준비하는 기분이 들었다.




끝없이 샘솟는 아이의 놀이 아이디어


계란으로 탑쌓으며 신난 아이(좌), 계란판 그릇에 볼풀 맘마를 올리고 휴지심 위에 공 아이스크림도 만든다 (우) © 엄마 엘리

 

와르르


 아이는 가장 먼저 볼풀공과 휴지심이 든 가방부터 엎어버렸다. 그리고 계란 탑을 요리조리 탐색하더니 차곡차곡 위로 쌓기 시작했다. 높이 높이 올리자! 하고 이야기하고 노래도 흥얼흥얼 부르면서.


 이어서 아이는 휴지심 위에 볼풀 공을 올려 아이스크림을 만든다. 엄마, 아빠, 채유 꺼. 우리 가족 아이스크림.



 이건, 그릇이야.
그리고 이건 맘마.
채유는 요리사야!


 

 그러다가 순식간에 계란판이 그릇이 되고, 볼풀이 맘마가 된다. 아이는 치, 치 하는 소리를 내며 요리를 하는 흉내를 낸다. "요리 다 했습니다! 맘마 여기 있습니다!" 계란판 그릇에 알록달록 화려한 음식을 만든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자신이 만든 요리를 나에게 대접한다.



볼풀 수영장을 만들러달라는 아이의 요청에 테두리를 둘러 만들어줬다(좌), 엄마와 함께 만든 계란판 집(우) © 엄마 엘리



 엄마, 여기서 수영하고 싶어!



 아이는 키즈카페에 있는 볼풀장이 생각났는지 공 수영장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가둬둘 공간이 없어서 난감했지만 어떻게든 아이의 아이디어를 재현해주고 싶었다. "아하!" 다소 과장된 몸짓과 억양으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이 검지 손가락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계란판으로 둥글게 울타리를 만들었다. 흩어진 공들을 그 안에 넣고 말했다.


 여기가 수영장이야! 볼풀 수영장!



 키즈카페처럼 공들이 수북하게 쌓이지 않았음에도 아이는 수영장 안으로 풍덩, 뛰어들어 어푸어푸 수영하는 시늉을 한다. 엄마의 작은 노력에도 기꺼이 호응해주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이가 주도하는 것이 놀이의 완성


 엄마랑 집 지어볼래?



 계란판 여러 개가 쌓였을 때 꼭 해보고 싶었던 놀이다. 계란판 집짓기. 하지만 아이가 처음부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아이의 놀이를 따라가다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그 틈에 내 아이디어를 제안한 것이다. 아이도 궁금한지 고객을 끄덕인다.


 계란판 집이 윤곽을 보이자 아이는 신기하게 쳐다보더니 "여기 세모네, 세모 창문!"이라고 외친다. 그러더니 그 위에 공을 몇 개 올려놓고는 "이거는 식탁!"이라고 하고 또 요리를 시작했다.



늑대가 되어 집을 무너뜨리는 아이 © 엄마 엘리

 

나는 늑대다!


 집이 완성되자 아이가 달려온다. 아기 늑대는 계란판 집을 사정없이 무너뜨린다. 무너지면 다시 올리고, 무너뜨리고 또 쌓아 올리고. 아이는 무언가를 파괴하면서 신나 했다. 놀이 시간만큼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다칠 위험도 적고 어질렀다고 혼나지 않아도 되니까.


 주도적으로 놀면서 아이는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한다. 엄마는 그저 아이가 스스로 놀 수 있도록 아이의 놀이 방식을 인정하고 흥미를 북돋을만한 놀이 도구를 제공하면서 아이의 행동을 지지해주면 된다.



아이의 요청에 따라 다음날 아빠랑 계란판 놀이를 한번 더 했다. 전날이랑 또 다르게 노는 아이 © 엄마 엘리



 다음 날, 아이는 아빠랑 또 계란판 놀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베란다에서 17판의 계란판을 고스란히 꺼내왔다.

 

 아이는 아빠랑 차곡차곡 탑을 쌓더니 나에게 큰 그릇을 달라고 요청한다. 그 그릇에 볼풀을 모두 담고 높이 쌓은 계란판 위에 올려놓는다. "뭐 하는 거야?" 묻는 아빠에게 "요리해" 하고 대답하는 아이. 그 말에 나는 주방에서 양푼 하나랑 국자를 더 가져다주었다.


 같은 재료인데도 전날이랑은 또 다른 방식으로 놀이에 집중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역시 아이의 놀이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스스로 어떻게 놀지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창의적으로 놀이를 이끌어가는 아이. 부모는 그저 아이가 자신만의 놀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면 충분할 것이다. 안돼, 하지 마. 이렇게 해. 같은 말은 저 깊이 넣어두고서.

매거진의 이전글 독후활동 놀이, 도형으로 집을 지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