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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Sep 28. 2019

독후활동 놀이, 도형으로 집을 지어요!

아이랑 놀이, 아빠만의 색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이따금씩 아이와 우리 부부는 주말 오전에 도서관 산책을 간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는 관계로 보통 내가 수영장 가는 날 도서관에 들러 아이 책까지 함께 빌려오지만, 한 달에 2~3번 정도는 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으로 산책 다녀올까? 하는 내 물음에 아이는 언제나 함박웃음을 짓고는 이렇게 되묻는다.


 엄마, 오늘은 무슨 책 빌릴까?



 내가 골라볼게! 를 외치는 31개월. 팬티도, 신발도, 머리핀도, 양말도, 읽을 책도. 아이는 요즘 직접 고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도서관에 도착하자 아이는 자연스럽게 계단을 올라 어린이 도서가 있는 2층으로 향한다. 한 계단, 한 계단. 차근차근 계단을 딛고 2층에 다다르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 부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길을 가는 아이 뒤를 말없이 졸졸 쫓아간다.


 아이는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방으로 되어 있는 유아책 코너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을 위한 책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신발을 스스로 벗더니 신발장에 턱 하니 올려놓고 당당하게 들어간다. 그제야 뒤를 돌아보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아빠와 나도 환한 미소로 응답하며 아이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인다.




유소프 가자의 그림책 '집을 지어요' © 엄마 엘리



 아이는 책을 좋아하지만 정작 도서관에서는 책에 집중하지 못한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는 것일까. 벽장 전체에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을 이것저것 빼보고 다시 넣고 다른 곳에 가서 또 책을 빼들고 넣고를 반복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다 아이가 한 선반에서 유소프 가자 작가의 '집을 지어요' 책을 빼들었다. 코끼리 표지를 한참 바라보더니 관심이 동했는지 읽어달라는 듯이 나에게 쓱 내민다. '오호! 이거 딱 채유가 좋아하겠는걸!' 일단, 동물이 나오는 책이면 반은 성공이다.


 이거 읽고 싶어?
그럼, 우리 한번 읽어볼까?



 아이를 무릎에 앉혀서 한 장, 한 장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도 금세 책에 빠져들었다. 코끼리가 파란색 정사각형, 빨간색 반원, 노란색 세모 등 색깔 도형으로 집을 짓는다는 내용이다. 단순하지만 책을 통해 다양한 색깔과 도형, 여러 가지를 조합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 등을 알 수 있다.

 


 

집에 와서 아빠와 함께 책을 읽고 색종이로 책에 나온 도형 만들었다. 놀이 아이디어는 아빠가 냈다. © 엄마 엘리



 여러 권의 책을 빌려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가방에서 자신의 책들을 꺼내 쭉 진열하더니 다시 한번 '집을 지어요'책을 들고 아빠에게 간다. 아빠, 이거 읽어줘! 아빠는 아이를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준다. 다 읽은 후 아빠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아이에게 다른 놀이를 제안했다.


아빠랑 색종이로 코끼리처럼 집 지어볼까?

 


아이는 방방 뛰는 시늉을 한다. 신난다, 신난다, 외치면서. 그러더니 재빠르게 서랍에 가서 자신의 가위를 챙겨 온다. 그 사이 아빠는 색종이를 가져와 그림책에 나온 색깔의 종이를 차례로 꺼낸다. 파란색은 여기, 노란색은 여기, 초록색은 여기, 그리고 빨간색은 여기.




그림책을 따라 코끼리가 지은 집을 짓고, 도형을 변형해 로켓도 만든다 © 엄마 엘리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아빠와 함께 책장을 넘기며 페이지마다 코끼리가 지은 집을 만든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앙 다문 입술이 점점 앞으로 튀어나온다.


 코끼리가 지은 집이 홍수로 떠내려가면서 도형이 분리되는 페이지에서 아이는 '늑대가 나타났다!'하고 소리치며 '후~'하고 불어 아빠랑 함께 만든 집을 다 날려버린다.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아빠랑 한 바탕 까르르 웃는다.


 그러고 나서 흩어진 도형을 다시 활용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로켓과 동그란 보름달을 완성시킨다. 자르는 것은 아빠가, 위치 지정은 아이가 맡는다. 아빠가 잘라놓은 도형들과 책을 유심히 비교하며 큰 노란 세모는 여기 위에, 작은 노란 세모는 네모 안에, 초록색 네모는 맨 밑에. 하며 야무지게 말하는 아이. 아빠와 아이가 서로 협력하다 보니 근사한 로켓이 뚝딱 완성되었다.


 


 


 상상력을 키우는 구름 놀이처럼 이 책으로 무슨 놀이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책을 빌린 적은 있었지만 책보다가 즉흥적으로 놀이로 확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놀이에서도 아빠만의 색다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빠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번 놀이도, 엄마인 내 시각에서는 색깔, 도형 인지에 신경 쓴 나머지 색종이로 코끼리 집을 만들어볼 생각은 못했을 것 같기에.


 <놀이의 반란> 책에서 엄마의 놀이는 학습이 가미가 되고, 아빠의 놀이는 철저히 재미위주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책의 내용을 그대로 경험한 셈이다.


 아빠의 놀이는 나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정해진 형태에 얽매이기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더 자유롭게 놀 때 아이와의 놀이가 더 풍성하고 즐거워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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