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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 엘리 Jan 15. 2020

새해에도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무엇이든 마음껏 하되, 그 무엇도 되지 않아도 되는 한 해를 살기를

 2020년도 어느새 15일째다. 새해 첫날, 아침 떡국을 한 그릇 비우고 나서 난 글 하나를 부러 찾아 읽었다. 김영민 교수가 쓴 칼럼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바로 그것이다.


 해마다 벚꽃 시즌이 돌아오면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매해 새해 첫날 이 칼럼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새해에는 왠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대(가령, 주가가 오를 것 같은)와 금빛 희망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이런 분위기에 기분에 취하다 보면 몸이 조금씩 하늘로 붕 뜨기 시작하고 허공에는 내 두 발만이 동그마니 놓이고 마는 것이다. 그럴 때 이 글을 읽는 거다. 잠시 밀려난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을뿐더러 오갈 데 없이 휘청대는 두 발도 무사히 땅에 닿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도발적인 이 칼럼을 막상 찬찬히 읽어내려가다 보면 적확한 그의 논리에 어느새 고개를 절로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그럴듯한 새해 계획을 세우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목표나 계획 같은 것은 없다고 못을 박는다. 애당초 '행복을 계획'한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행복의 계획은 실로 얼마나 인간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주는가.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하는 것은 대개 잠시의 쾌감에 가까운 것.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그러한 느낌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에, 새해의 계획으로는 적절치 않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행복이란, 온천물에 들어간 후 10초 같은 것. 이라니.

 10초 후면 곧 사라질 것을 어떻게 계획할 수 있겠는가? 이후 그 덧없음으로 인해 쉽게 불행해 빠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새해를 맞아 '무엇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겠다, 고 다짐해본다. 무엇이 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그것을 향해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했건만 종국에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되지 않는다면 나의 한 해는 무의미하고 불행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하루하루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나를 위해 마음껏 쓰면서 그저 다정하고 편안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 무엇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아무것도 되지 않더라도 매 순간 나 자신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나를 귀하게 여기며 살고 싶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엄마로 살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정말 많은 시도를 했다. 용기를 내어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고 재수 끝에 작가가 되어 에세이를 써나갔다. 쓴 글을 차곡차곡 모아 브런치 북으로 엮었고 그 책을 브런치 북 공모전에 응모를 하였다.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는 경험은, 공모전에 응모하기까지 일련의 그 과정은 서른 중반의 인생에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이 이렇게 뿌듯하고 보람된 일이었던가? 글을 쓴다는 것이 나 자신을 이렇게 또렷이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던가? 나는 글을 쓰는 과정을 사랑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시간이 참 좋아졌다. 글쓰기에 흥미가 생기다 보니 난생처음 단편 소설을 쓰고 웹소설도 써보게 됐다. 엄마의 인생을 살아가며 시도 짓고 아이의 말에 감탄하며 동시도 짓게 됐다. 그것들을 여러 공모전에 응모했다. 전부 낙선했다.


 무엇이 되기 위해 쓰고 응모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응모를 하니, 어느 날 갑자기 소설가가 된 나를, 시인이 된 나를, 동시집을 내는 나를 상상하게 됐다. 상상은 비눗방울처럼 맥없이 툭, 툭 터져버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놀이동산의 바이킹을 탄 듯, 턱이 구름 위에 걸렸다 갑자기 잔디밭에 처박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서, 어차피 빛도 보지 못할 글들을 왜 공들여 쓰고 있는 거지? 하며 파문을 일으키는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이 아닌데, 글을 쓰는 과정이 좋고 집중하는 시간이 좋다더니만, 시시때때로 나는 네가 무슨 글을? 하며 나를 업신여기고 있는 거다.

 

 그러므로 나는 새로운 한 해를 맞은 이 시점에 소망하듯 다짐해본다.


 새해에도 아무것도 되지 않기를.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무엇이든 마음껏 하되, 그 무엇도 되지 않아도 되는 한 해를 살 수 있기를. 시인 박노해의 시처럼 무엇을 위해 노력하기 보다 그저 나만의 발자국을 담담히 만들어갈 수 있기를. 


진실 - 박노해

큰 사람이 되고자 까치발 서질 않았지
키 큰 나무숲을 걷다 보니 내 키가 커졌지

행복을 찾아서 길을 걷지 않았지
옳은 길을 걷다 보니 행복이 깃들었지

사랑을 구하려고 두리번거리지 않았지
사랑으로 살다 보니 사랑이 찾아왔지

좋은 시를 쓰려고 고뇌하지 않았지
시대를 고뇌하다 보니 시가 울려왔지

가슴 뛰는 삶을 찾아 헤매지 않았지
가슴 아픈 이들과 함께하니 가슴이 떨려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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