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패턴으로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정책적 상상력에 제한 두지 말라"
지난 2월 24일,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긴급 추경의 필요성을 공식화하면서 문대통령이 한 말이다. '정책적 상상력?' 나는 두 단어의 조합이 낯설었다. 그러나 이 낯선 느낌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연초에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읽을 때도 느꼈으니까.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상상력'이라는 단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나 보다. 이혁진 소설가는 사설 [삶의 향기] 소설 『페스트』와 카뮈의 ‘상상력’을 통해 소설 속 난데없이 반복되는 '상상력'이라는 단어에 당혹스러웠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오역일 거라 생각했지만, 영어판과 불문판까지 살펴본 후에야 카뮈가 쓴 '상상력'이 작가가 의도적으로 쓴 단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로지 그 단어로만 분명히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사망자 수) 발표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봉쇄된 시에서 혼자 탈출하려는) 그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했다.”
“(공무원들에 대해) 그들에겐 상상력이 부족합니다. 재앙과 맞설 수준들이 아닙니다. 짜낸 해결책은 코감기 수준에 불과해요.”
“요컨대 당시 그들에게(봉쇄당한 시민들에게)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은 충분치 않았던 것이다.”
코로나 19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상상력도 크게 부족했다.
세계 보건기구(WHO)는 물론, 각국의 정상들, 세계 경제 석학들 모두 코로나 19를 그저 그런 전염병으로 치부했다.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가 100만 명이 넘어가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전염병으로 인해 세계가 한순간에 멈추고 갑작스레 경기 침체가 찾아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믿지 못할 일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금융시장이 붕괴되고 실물경제가 마비되었다. 조만간 수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은 역대 최고로 치솟을 거라는 암울한 예측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비관적인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위기는 언제나 극적인 반전과 함께 온다.
지금의 경제 위기도 마찬가지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예일대학교 교수 로버트 쉴러나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CEO 레이 달리오 등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2020년을 위기의 해로 지목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초, 코로나 19로 인해, 이렇게 갑작스럽게 세계 경제가 위기에 봉착할 줄은 그들도 전혀 몰랐을 것이다.
공포와 절망이 짙게 드리워진 요즘, 장기적인 희망을 갖되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는 '스톡데일 패러독스'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악의 공포를 대비하라는 많은 경제 전문가들의 말을 되새겨봐야 할 때다.
그래서 책을 찾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세계 경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런저런 말에 휩쓸리지 않고 어떻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지, 보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이 위기를 헤쳐나갈 방법은 없는지, 나름대로의 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달, 경제 관련 책 세 권을 차례로 읽었다. 세 권 모두 시의적절한 책이었다. 지금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세계 경제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박종훈 KBS 보도본부 경제부장이 쓴 <2020 부의 지각변동>은 미래가 보내는 7가지 시그널 (금리, 부채, 버블, 환율, 중국, 인구, 쏠림)을 예의 주시하며 변화의 시점에 기회를 발견하라고 강조한다. '어제의 패턴으로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다', '최악의 공포가 시작되는 그 순간이 기회'라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2019년 7월에 출판된 책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신기하기까지 했다.
앞으로 시작되는 2020년에는 다음의 3가지 사항을 반드시 명심하고 실천해야 한다.
첫째, 내일은 결코 오늘과 같지 않다는 것을 명심한다.
둘째, 세계를 넓고 깊게 바라보며 투자와 사업 전략을 짜야한다.
셋째, 최악의 공포가 시작되면 그 순간 공포를 담아라.
불황이 깊어질수록 영원히 경제가 회복되지 않을 것처럼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인류가 계속되는 한 반드시 경제는 다시 회복기를 맞이한다. 그 기회를 잡으려면 어두운 심연의 밑바닥에서 공포를 담아 희망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252, 253p
브라운스톤이 지은 <부의 인문학>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의 이론과 메시지를 중심으로 투자의 통찰을 쉽게 기술한 책이다. 진보정권이 집권하면 왜 부동산 가격이 더 오르는지, 노벨상 수상자를 파산시킨 블랙스완은 무엇인지, 부동산과 주식 거품을 미리 알고 피하는 법은 없을지 등 평소에 궁금했던 경제 현상을 저명한 노벨 경제학자의 이론을 통해 시원하게 풀어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플랜시스 골턴의 '자연은 평균으로 회귀하는 속성이 있다'에서 영향을 받은 주가 평균 회귀 이론,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의 '도시의 승리'에서 발견한 도시의 성공 요인 등은 투자의 원칙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신한은행 AI 자본시장분석팀장 오건영이 지은 <앞으로 3년 경제전쟁의 미래>는 세계 경제의 역사적 사건으로 돌아가 '환율'과 '금리'를 현미경으로 확대해 왜 이 사건이 이렇게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과 결과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이 책을 통해 환율과 금리가 어떻게 세계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는지, 얼마나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 장인 '미국 및 글로벌 금융 시장의 흐름과 미래' 편이 인상에 남는다. 그의 바람대로 전 세계의 공조를 통해 이번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 밝고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옛말처럼 이런 충격 이후 다시금 전 세계 국가들의 강력한 공조가 뒤따르고 그로써 2017년과 같은 강한 상승장을 다시 한번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전 세계 국가들은 전쟁과 공조를 반복하면서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세계 경제를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33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