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민케이 May 07. 2016

동안[童顔]의 직장학적 의미 고찰

동안은 회사생활에 약일까 독일까?

회사에 나보다 한 살 어린 동료가 있다. 한 살 차이가 별거겠는가. 특히 마흔을 넘어서면 그저 두세살 차이도 다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친구일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친구를 처음 봤을때 나보다 나이가 한 2-3살 위라고 생각했다. 옛날 식으로 올빽으로 빗어넘기고 포마드기름같이 보이는 번쩍거리고 번들거리는 머리. 마치 일제시대 엘리트처럼 동그란 철제 안경.무엇보다 나이 먹은 아저씨들 특유의 약간의 유들거림과 거만함이 배어나오는 말투와 태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그 친구의 나이를 알게 되었을 때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실제 나이보다 조금 적게 보일 수도 있고 많아 보일 수도 있으니. 그 사실을 알려준 동료의 다음 말이 압권이었다.

"그런데 그거 일부러 그러는 거에요."

"응? 뭐가요?"

"나이 들어보이는 거요. 저번에 술취해서 그러더라구요. 회사에선 나이 적게 보이면 사람들이 우습게 보고 승진도 잘 안된대요. 그래서 나이 많아 보이게 항상 신경써서 이미지 관리하는 거래요."

"헐..."

다음에 그 동료를 회의에서 만났을 때 옆에 앉아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정말이었다. 피부는 깨끗했고, 얼굴에 주름도 거의 없었다. 심지어 선해보이고 순한 큰 쌍꺼풀이 있는 눈이었다. 


동안 [童顔].

실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얼굴. 지금은 몇 년전에 비해서 미디어에서 떠드는 게 좀 덜해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동안은 아직도 화제의 중심에 있다. 외모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록 동안에 대한 갈망도 커진다. 보통 동안을 얘기할 때 몇 가지 특징을 얘기한다. 균일한 피부톤, 흰머리가 없고 머리숱이 많을 것, 적당히 살이 있고 주름이 없는 얼굴 등. 나이 들어보이기 위해 애쓰는 그 동료도 이 동안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들어보이는 데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그렇게 했을까?


직장 생활을 하는 남자의 경우 - 너무나도 심오하고 광활하고 깊은 여자의 외모는 내가 다룰 능력이 안되기에 여기선 논외로 하고 - 단지 동안과 젊어보이는 외모보다는 자세와 태도가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주위에서 특히 나이가 들어보이는 아저씨들을 보자. 유들유들하고 뻔뻔하다. 자신이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나는 다 해봤고 다 알아, 너희들은 몰라. 요즘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개저씨'라 불리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특징들이니 이 특징을 한몸에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고 믿고 싶다.) 


이렇게 개저씨까지는 안 가더라도 직장에서 나이가 들어보이게 하는 태도들이 있다.

-  회의에서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깔고 생각이 많은 척 한다. 말투는 너무 어려보이지 않게 노숙한 말투를 써야 한다. 

- 모르는 게 있어도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실이나 아이디어를 냈을 때는 원래 알고 있었던 듯이 행동하거나 혹은 그 새로운 것들이 중요하지 않게 보이게 다른 화제로 능숙히 돌린다.

- 자기 자신에 대한 얘기를 계속 곁들인다. 너무 티나게 하지는 않는다.

- 여유있게 피식 웃으며 상대방을 무시한다.


그런데 원래 천성이 그런 개저씨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상인 사람들이 왜 나이가 들어보이고자 원하는 것일까? 회사에선 정말 나이가 들어보이는 게 유리한 것일까......?

대답은 절망스럽게도 '예'이다. 회사 내부에서 나이가 적어보이면 성숙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존재한다. 실제로 고객들을 만날 때도 나이가 적어보이면 약간 경험이 적은 사람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려보이면 매니저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헤어스타일이나 옷 입는 게 젊고 쿨하면 일보다는 외모에 신경쓰는 사람으로 선입견을 가지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 경향이 대체적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알던 경험 많은 컨설팅 구루 역할을 하던 독일 사람은 하얗게 센 머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여자였기에 염색을 할 법도 할데 절대로 염색을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궁금했었다. 다른 사람을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옆에서 듣고 의문이 풀렸다.
 "How gray hairs make people look wiser...." (흰 머리 덕분에 현명하게 보이지...")


다행스럽게도 그런 경향은 변하고 있다. 요즘 잘 나가는 외국계 글로벌 기업들의 평균 연령은 점점 낮아진다. 그리고 좋은 외모 (여기서 외모란 잘생기고 이쁜 게 아니라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와 젊은 태도, 특히 요즘같이 극적으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활기찬 사람들이 득세한다. 같이 일하는 한국 대기업의 나이 지긋하신 부장님들도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고 예의를 깍듯이 차리는 분들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긋한 나이와 흰 머리가 경험, 연륜 그리고 능력을 나타낸다고 믿는 분들은 아직도 주위에 많이 있다는 걸 잊지 않길. 내가 처음 대하는 고객과의 미팅 자리엔 평소보다 얌전한 머리 모양과 넥타이를 하는 이유다. 살짝 서글프긴 하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