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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케이 May 08. 2016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세 문장으로 읽는 한 권 :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인간의 고통은 기체와도 같다. 기체를 빈 방에 넣으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는 고르게 방 전체를 가득 채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히 채운다.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이다
넘어야 할 시련은 얼마나 많은지!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대학 시절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11월에 군대를 방위로 (--;) 입대했다.

보통 방위라면 훈련소 안에서도 뭔가 느슨하고 5시 되면 모든 일과가 끝날 거라고 상상되기 마련이지만.  바로 전 훈련 기수에서 총기로 자살 사고가 난 터라 - 그 친구는 몇 시간의 사격 훈련 PT를 고통속에서 참아 내고 겨우 사격사로에 엎드린 순간 사격 개시 구호와 함께 M16 총구를 자기를 향하고 방아쇠를 당겨버렸다고 한다. - 짧으리라 생각했던 훈련은 너무나 길고 가혹한 4주가 되었다. 편하기 때문에 그런 사고가 난다고 생각한 사단장은 특별 지시를 내렸고, 매일매일 얼차려에 수시로 계속되는 5분대기 소집 훈련에 모두가 녹초가 되어갔다.


그 4주간의 훈련 중 3주차에 맞이한 생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 생애에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사심없이 마음에 진심을 담아서 축복해준 건 그 생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같은 내무반의 30여명의 동기들이 새파라니 빡빡머리와 추위로 트고 겨울 햇빛에 타버린 촌스러운 얼굴로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던 광경은 아직도 잊기 힘들다.

한 동기는 자신이 나중에 먹으려고 숨겨두었던 무려 초코파이를 제게 선물로 건네었고 다른 한 명은 건빵 한 봉다리를 멋쩍어하며 손에 쥐어줬다. 매점을 가는 것도 허용이 안 되었기 때문에 짬밥 이외에는 다른 군것질을 거의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정말로, 진심으로 눈물이 났다. 그건 정말 자신이 가진 소중한 거의 모든 걸 나에게 주고 싶어 주는 거였다. 내가 살면서 받은 최고의 선물 중에 하나였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할 만한 생일이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렇게 아름답게만 끝날 수는 없는 건가 보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건물대에 소중히 모셔놓았던 그 쵸코파이와 건빵을 누군가가 훔쳐가버렸거든. (웃음)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이 지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훈련소에서 맞았던 나의 이 생일이 떠올랐다. 당연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순간순간이 삶과 죽음의 선택이었던 작가와의 비교는 터무니없는 일이겠지만. 다만 작가가 얘기하듯이,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을 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
그런 사람들이 비단 강제수용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그리고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된다.
...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너무나 힘든 극한 상황 혹은 최고로 빛나고 중요한 순간에서만 중요한 성취의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든 운명을 만나고 크고 작은 시련을 겪는 그 순간순간이 자신을 성취하고 완성시킬 기회들이다라고 얘기하는 작가의 말이 너무나 공감되는 생일이었다.

누군가는 삶과 죽음이 갈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똑같은 처지에서 누군가는 동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주었고 누군가는 그걸 훔쳐가렸고. 사실 초코파이와 건빵이 없어진 걸 알았을 때 전혀 화는 안나고 웃음만 나왔다. '아 그 XX  진짜 먹고 싶었나보다. ^^;; '

삶의 의미에 대한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작가 빅터 프랭클 박사 (1905~1997)는 실제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던 자신의 체험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 레고테라피라 명명하는 실존 치료법을 발전시켰다.


빅터 프랭클

길지 않고 아주 쉽고 담담하게 읽히는 수용소에서의 체험에 대한 부분과 레고테라피에 대해 설명하는 2부로 나뉜다. 사실 이 책을 10여년에 걸쳐 한 20번은 되풀이해서 읽은 것 같은데 2부를 읽은 적은 거의 없는 듯.  산다는 것은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을 감내할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라는 것이 이 책에서 얘기하는 실존주의의 중심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지만 사실 힘들고 지칠때마다 그저 읽고 위안을 얻고 힘을 내는데 도움을 얻었다.


항상 뒤적이며 되풀이해서 보는 글귀들은,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

"인간의 고통은 기체와도 같다. 기체를 빈 방에 넣으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체는 고르게 방 전체를 가득 채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히 채운다.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이다"

"릴케의 시 중에서 : 넘어야 할 시련은 얼마나 많은지!"

"니체 :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고통을 이겨내고 힘을 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모든 고통과 부조리가 개인이 이겨내야 할 것으로만 비춰질 수도 있다. 실제로 니체의 유명한 말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도 나치에 의해 곡해되어 극한상황에서도 그 시련을 이겨내라고 독려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고 하던가.

아파야 청춘이고 고통스러워야 삶인 것은 아니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부조리와 잘못된 사회시스템을 고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일터.

다만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고통과 시련을 힘차게 딛고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순간순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를 도와주는 책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대 헬조선의 시대에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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