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오전에 비치 다이빙 후, 가는 길에 아귀니드폭포(Aguinid Falls)를 들렸다 숙소로 이동할 예정이다. 할 게 많다. 좋다. 간단히 씻고 바로 파낙사마 비치로 향했다. 오늘은 다이빙을 할 요량이었기에 장비를 챙겨서 갔다. 아침이라 해가 그리 뜨겁지 않을 거란 판단하에 슈트는 입지 않았다. 네네 판단 미스. 등짝이 탔다. 또 탔다. 마스크, 스노클, 3미리 삭스에 롱핀을 차고 칠리바 앞에 슬리퍼와 오토바이 열쇠, 선글라스를 두고 들어갔다. 다이빙 끝나고 오니 아무 문제 없이 잘 있었다.
해변에서 약 10미터만 나가면 산호들과 작은 물고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스노클은 여기서 즐겨도 충분하다. 약 20-30미터만 나가면 절벽이 보인다. 라이프 재킷이 있다면 여기까지 나와서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걸 추천한다. 수천 마리의 정어리 떼가 몰려다닌다. 거북이가 나오는 포인트라고 하는데 난 못 봤다. 내가 그렇지. 이미 방카 5-6대가 떠다니고, 거북이 대신 주황색 등딱지에 검은 머리의 중국인들이 동동 떠다닌다. 모알보알엔 중국인이 많다. (오슬롭을 제외한 그 외 남부지역에선 거의 못 봤다.)
이에 뒤질세라 나도 슈트를 입지 않은 검게 타오른 등딱지를 뽐내며 동동 떠다니기 시작했다. 나쨩, 베트남에서 이미 한 번 타올랐다. 이때는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하며, 흉악함을 드러냈다. 정어리가 엄청나게 많았다. 절벽은 완만하게 떨어지는 곳도 있고, 급격하게 떨어지는 곳이 있어서 초보도 즐기기 좋아 보였다. 나에겐 middle ear baro traumatic(이렇게 한 번 더 사용해 본다.)이 있을 거라 추측되는 가운데 설레는 마음으로 다이빙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의사님의 진단을 받지 않았기에 지금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걸로..
일단 5미터 이상 10미터 미만으로 내려가서 압력 평형(이하 이퀄)이 되는지만 확인해 보려 했다. 릴렉스, 릴렉스. 호흡을 가다듬고, 몸이 부르르 떨림을 느끼며 실례를 하지 않았다. 원래 다 이렇게 한다. 진짜다. 덕다이빙을 시도했다. 자, 내려가자. 팔로 한 번 휘졌고, 하나 둘, 하나 둘. 오, 이퀄이 된다. 의심은 꾀병이었음이 만 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니 달아오른 얼굴 대신 코를 부여잡고 좀 더 내려가본다. 이퀄이 잘 된다.
안도감과 함께 부끄러움이 목까지 차오른다. 이것은 숨이 참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차오름이다. 여유를 갖고 즐기기 시작했다. 스쿠버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마스터에게 뒷목덜미(정확히 산소통 밸브)를 부여 잡여5미터 어림에서 어시장 활어 마냥 기쁨에 펄떡이는 체험 다이버들도 있고, 저 아래에서 큰 방울들을 울걱울걱 뿜어대는 중급 다이버들도 보였다. 올라오는 큰 방울들을 온몸으로 맞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쉽게도 다이빙컴을 놓고 온 데혼자 다이빙을 즐기고 있는 상황이라 보수적으로 다이빙을 하기로 마음먹었음에도 왠지 저들과는 눈인사를 하고 올라와도 좋을 것 같았다. 호흡을 다듬고 내려가 본다. 내려와 옆에서 조용히 그들의 시야를 공유하니 있는 줄도 모른다.
잠시 후, 눈이 마주친다. 눈인사와 손인사를 하고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 돌아와본다. 돌아가는 물살이 부드럽게 스친다. 무너졌던 자신감이 차오르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래 난 다이빙을 즐기려고 하는 거였지.' 마음이 한결 가볍다. 허나 다이빙은 반드시 버디와 그리고 자만하지 않아야 함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오랜 시간 다이빙하지 못했음에도 쉽게 생각했다. 부족했던 날 돌아보며 반성하고 무너졌던 많은 것들이 다시 회복되는 시간이었다. 조금은 더 배운 걸까? 즐거웠고 행복했다.
다이빙 후 숙소로 돌아와 씻고 체크아웃을 했다.
"나 체크아웃 할게." 하루 더 안 자고?
"응, 나 볼준으로 가려고 6일 날 다시 돌아올 거야."
"그래 알았어 재밌게 놀다 와."
인사를 하고 시동을 건다.
자, 아귀니드 폭포로 가볼까. 했지만 배가 고프니 밥을 먹고 가기로 한다. 오늘 점심은 트립어드바이저 저렴이 식당 1위에 빛나는 더 쓰리 베어즈(The three bears)에서 먹기로 한다. 숙소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코앞에 있다. 숙소 위치가 너무 좋았다. 더 쓰리 베어즈에 도착했으나 이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두둥.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안으로 더 들어가 보자.
파낙사마 비치로 들어가서 바다를 보며,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가는 길에 벤즈 키친(Ven's kitchen)이 있다. 파낙사마 로드에서 비치로 꺾는 좌회전 길 바로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이게 여기 있네. 트립어드바이저 저렴이 식당 3위. 막 문을 연 듯하다. 운이 좋았다. 비콜 익스프레스와 부코주스를 주문했다. 부코 주스가 리얼 코코넛에 담겨 나왔다. 양이 많았다. 음식은 역시나 조금 짰다. 밥을 추가로 주문해 먹었더니 간도 양도 알맞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아귀니드 폭포로 향했다.
카와산폭포까진 이미 한 번 왔던 길. 그저 아름다운에 감탄하고, 자연에 감사하며 드라이빙을 즐겼다. 1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 아귀니드 폭포에 도착했다.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입구 바로 앞까지 가서 주차를 했다. 역시 여기서도 20페소의 주차비를 받았다. 현지인들도 내는 걸 확인했다. 싸우지 말고 주도록 하자. 카와산 폭포처럼 걸어가서 보고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여긴 뭔가 좀 다르다. 응? 뭐지? 입구에 가서 물어본다. 여긴 입장 시 가이드가 필요한 곳이다. 혼자 가도 되고 팀으로 가도 된다. 가이드는 2명이 필요하고 팁은 주고 싶은 만큼 주면 된다고 안내원이 얘기한다. 가이드 한 명은 안내를, 다른 한 명은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다. 찍어주는 아이는 나이도 어린데 수전증이 있는 듯했다. 사진의 퀄리티는 너무 기대하지 말자.
물에 다 젖어야 하므로 미리 수영복을 입고 가자. 레벨 0부터 레벨 5까지 본인이 원하는 레벨을 즐길 수 있다. 난 짐이 있었기에 짱구를 좀 굴려봤다. 올라오는 입구에 부코 주스를 파는 아가씨가 있다. 부코 주스를 하나 사며(사실 먹고 싶었다.) 물었다.
"나 짐 좀 맡겨도 돼? 폭포 다녀오려고."
"응, 여기 안쪽에 넣어놔."
아주 친절하게 짐을 보관해줬다. 혹시 나처럼 짐을 가져간다면 부코 주스를 꼭 마시기 바란다. 음료는 폭포에 반입금지이나 방수 가방 안에 넣어가는 건 괜찮다. 짐도 맡길 수 있고 맛도 좋다. 내가 그냥 부코주스를 좋아하는 건 안 비밀.
아쿠아슈즈를 50페소에 빌리고 60페소의 입장료를 낸 후, 안내원의 안내를 듣고 예정에 없던 폭포 원정(?)을 시작했다. 난 그냥 걷고, 폭포 보고 수영이나 하는 곳인 줄 알았다. 3-5분 정도 걸으면 레벨 0이 나온다. 조그마한 폭포가 있고, 물웅덩이가 있다. 물웅덩이를 건너가면 폭포를 맞을 수 있다. 안내원 2가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다.(이 사진은 다 망했..) 이제부턴 물길을 헤치며 올라가기 시작한다. 시원하다. 올라가는 길은 레벨마다 이지 웨이와 하드웨이가 있다. 쉬운 길, 어려운 길 둘 중 하나를 골라서 등반하면 된다.
난 무조건 하드웨이를 골랐는데 여자분들은 어려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무 타고 오르기, 줄 안 잡고 완만한 바위 오르기 등이 그것이다. 중간쯤 가면 3-4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점프를 할 수 있다. 안내원 1인 얼니가 멋진 백덤블링을 선보인다. (본인은 개구리 점프 성공.) 마지막 레벨 5에 도달하면 거대한 폭포가 있다. 폭포 뒤에 숨겨진 동굴이 있는데 그 안을 기어 들어갈 수 있다. 동굴탐험. 씐난다.
본인이 0.1톤에 달한다고 생각하면 폭포 뒤에 숨겨진 동굴을 통과해서 동굴 밖으로 나오긴 힘들 수 있다. 전설상의 축골공(무협지에 나온다.)을 익혔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동굴을 통과해 밖으로 나오면 폭포를 제대로 맞을 수 있다. 역시나 안내원 2가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고 동영상도 찍어준다. 사진과 동영상은 날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내가 이렇게 탔나..?? 전설의 타잔인 줄. 안내원 2가 잘못 찍은 거라 생각하며 애써 현실을 외면해 본다.
폭포를 맞고 잠시 동굴 안 바위에 앉아 얼니와 얘기를 나눴다. 사실 작년까진 레벨 6,7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아귀니드 폭포가 관광지화된 건 3년 정도 밖에 안됐다고 한다. 레벨 6,7을 가려면 라이프 재킷과 헬멧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난 모르고 그냥 올라왔다. 지금은 레벨 6,7을 한다는 건지 안 한다는 건지 정확히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난 이제는 왜 안 하는지 물었으나, 얼니는 동문서답. 단지, 이 폭포를 더 올라가면. 6,7이라는 것만 얘기해줬다. 하지만 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했으니 다음 모험은 후대(?)에 맡긴다. 다녀오신 분은 얘기 좀 해줘요!
올라오는 동안 8명가량의 필리핀 친구들과 으쌰 으쌰 하며 즐겁게 올라왔다.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두마게티에서 출발해 세부 남부를 여행 중이었다. 오호, 그렇다면 두마게티까지 오토바이를 싦고 갈 수 있다는 얘기렸다. 이번엔 시간이 짧기에 다음을 기약해 본다. 폭포를 내려와 친구들에게 팁을 주려 했는데 잔돈이 없었다. 500페소를 들고 잔돈을 깨기 위해 가게들을 기웃거려 본다. 잔돈을 바꿀 수가 없었다.(사실 없던 건지 안 준 건지 확실치 않지만)
그때 가게에 앉아있던 친구가 신박한 의견을 낸다. 쟤들 500줘 그럼 둘이 나눠 가질 거야. 나도 그렇게 계산할 줄 안다. 얼니에겐 200, 안내원 2에겐 100만 주려고 했건만 생각을 바꿨다. 그래. 얼니는 결혼해서 딸도 2명 있으니까. "얼니는 300, 안내원 2는 아직 젊으니까 200 갖는 걸로 하자. ok?" 사실 얼니에게 좀 더 주고 싶었으나 이렇게 나눠줬다.
아귀니드 폭포
신세를 진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짐을 찾아서 다시 시동을 걸었다. 부코 주스 아가씨께 특히 감사하다. 부자 되세요. 8명의 필리핀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하며 숙소로 향한다. "패들 세이프! 바이!"
이미 사위가 어둑해지기 시작했기에 풍광을 즐기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가는 길에 수밀론섬과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곳을 확인했다. (난 아마도 안 가지 싶지만.) 좀 더 가니 오슬롭 웨일샤크 와칭하는 곳이 보인다. 오키. 대충 확인했고 조그만 마을을 지나고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길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고 초행길엔 특히, 어두워진 저녁엔 찾기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운 좋게 한 번에 찾아서 안전하게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영민 누나에게 도착했음을 알렸다.
누르드지 호스텔
짐을 놓고 내려오니 영민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다. 여행 중 다시 만나는 인연은 항상 기쁘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었는지를 묻는다. 다행히 누나도 아직 식 전이다. 숙소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데 음식이 조금 비싸다고 했다. 누나랑 같은 방을 쓰는 외국인 친구가 낮에 마을을 걸어갔다 왔다고 했다. 우리도 마을로 가서 저녁 먹는 게 어떨지 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로 한다.
3분가량 달리니 마을이 보인다. 왼쪽으로 큰 성당이 있는데 안쪽에 오토바이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잘됐다 싶어 안에 들어가 보자고 물었다. 도도도도 오토바이를 몰아 안으로 들어갔다. 한 바퀴를 슥 돌아보고 나왔다. 맞은편에 야시장이 열려있다. 올레!를 외치며 진입했다. 내가 좋아하는 필리핀 현지 음식이 한자리에 다 모여있다. 바비큐집, 필리핀음식전문집, 피자집, 스퀴드볼과 시오마이집 완벽하다.
엄청난 배고픔에 돌아 간 눈을 부여잡고 주문을 난발하기 시작했다. 스퀴드볼 5개, 시오마이 5개, 피자 2조각, 포크누들, 포크바비큐 4꼬치, 닭다리 2꼬치, 시시그 하나 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주문을 하고 필슨 2병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먹기도 전인데 행복감이 몰려든다. 치얼스! 행복하게 병을 맞대고 저녁식사를 했다. 포만감이 느껴지고, 필슨 1병에 나의 사고를 내던지려는 그때, 어? 익숙한 아이들이 보인다. 아귀니드 폭포에서 만났던 두마게티에서 온 친구들이다.
인연이랑 정말 신기하다. 만나고자 간절히 바라면 어긋나던 것이 생각도 기대도 없이가벼이 앉아 시간을 즐기는 그때 소리 없이 찾아왔다. 열광적인 셀피를 찍던 중국인들은 기억 저편으로 던져놓은 듯, 나의 목소리가 돌고래의 그것 마냥 하늘을 찌른다. 우린 순수히 열렬히 반가움을 표하며 인사를 나눴다. 많이 아쉬웠다.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건만, 내일은 웨일샤크 와칭을 위해 무려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한다. 한 달간 여행하는 중 가장 일찍 일어난 하루가 아닌가 싶다. 친구들에게 내일의 일정을 알리며 아쉬움을 뒤로 한채 인사를 했다.안전하고 행복한 여행이었길 바란다. :)
볼준 야시장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한참을 헤맸다. 같은 자리를 3번, 4번 왕복을 했다. 역시나 나지막이 내려앉은 어둠은
나의 엄청난 길치력과 방향치가 빛을 발하는 시기다. 그래도 영민 누나 덕에 숙소를 잘 찾아왔다. 내일은 귀여운 고래들을 봐야 하니 스르륵 잠자리에 들어보려 한다. 오늘도 아주 행복한 하루였다. 분명 내일도 더 할 수 없이 즐거운 하루일 것일진데 선뜻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보내기 아쉬운 인연과 내일 보단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을 보내야 내일이 있음을 알기에 눈앞의 무거운 커튼을 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