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 구본형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9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토요일에는 사부님의 추모 학술제가 열렸다. 첫 번째 시간은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에 맞추어 구본형 선생님의 인생을 소개했다. 두 번째 시간은 구본형 선생님의 스승 그리고 스승으로서의 구본형 선생님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가장 훌륭한 스승은 ‘영감’을 주는 스승이라는 말, 구본형 선생님은 제자가 고민하고 조언을 구할 때 어떤 해답을 주기보다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질문’을 해 주는 스승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시간에는 ‘영성가’로서의 구본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례미사를 진행했던 신부님은 ‘영성가 구본형’으로 칭했으며, 그로부터 ‘구본형은 왜 영성가인가?’라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세 번째 시간에서 가슴에 와닿은 내용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영성은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어떤 태도나 정신 또는 가치관을 말하는 것으로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영성은 종교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성은 바람과 같고 물과 같고 공기와 같아서 어디에서나 속하고 통합니다.’
‘직업이 소명이라는 것을 믿어라. ‘나’라는 신의 수수께끼를 풀어라.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부름을 받는 것을 이르는 말이 소명이다.’
카를 융이 정의한 소명은 ‘인간의 깊고 무의식적이며 내적인 자기에서 비롯되는 자기실현의 욕구, 평생 자기 발견과 자기실현 과정에서 우리를 부르고 이끄는 내면의 목소리’이다.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닙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부님의 첫 번째 추모 학술제가 끝나고 사부님의 가르침에서 너무 멀어져 있지는 않았나 생각했다.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나의 소명’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고, 나 역시 사부님처럼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작은 불씨가 가슴에 지펴졌다. 생전에 사부님이 나의 질문에, 그리고 많은 제자들에게 대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질문을 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1년을 보내고 난 뒤의 1년은 내게 암흑의 시기였다. 돈을 벌기 위해 했던 일들은 회사 재정상의 이유 등 다양한 이유로 오래가지 못했다. 삼십 대에 접어든 내 인생에 직업적 안정기가 찾아올 거라 기대했으나 여전히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는 인생이었다. 삶의 버거움, 뜻대로 안 되는 인생의 스트레스는 매일 밤 혼술 또는 술자리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풀곤 했다. 그리고 그 시기 또 하나의 내 친구는 담배였다. 평소 담배 생각이 많이 나진 않았으나 술에 취하면 꽤 많은 양의 담배를 피웠다. 하루라도 끊어볼까? 늘 생각은 했으나, 하루에 한대도 피지 않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고 있던 2012년 4월 20일 사부님은 내게 숙제를 주셨다.
“너의 우드스톡의 시대는 지금이다. 지나간 날 속에서 찾지 마라. 책 속에서만 우드스톡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황이 있는 곳에, 슬픔이 있는 곳에, 고독이 있는 곳에 우드스톡은 있다. 우드스톡이란 네가 진심을 다하는 곳이다. 그 일 때문에 네 하루가 온통 해지는 곳이다. 늦었다 하지 마라. 나도 우드스톡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이기를 바란다.
신치야.
작년에 미*이는 하루에 100번씩 웃었다. 요새는 시도 때도 없이 실실 대지 않더냐. 루*는 내게 매일 인사 편지를 보냈다. 이제 그만두라고 해도 여전히 보낸다. 그러더니 똑똑해 지지 않더냐.
너는 내게 매일 전화하도록 해라.
네 목소리가 행운을 부를 수 있도록.
내가 못 받더라도 빠지지 말고 해라.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매일 하도록 해라. 언젠가 네 목소리가 비단 같아지면 우드스톡의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사부님에게 매일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전화보다는 문자가 편한 세대라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전화 통화를 오래 하지도 않을뿐더러 자주 통화하는 사람도 없는 내게 전화를 매일 전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었다.
“사부님 안녕하세요~”
늘 같은 인사말로 시작했고, 전화를 걸면 사부님은 시시콜콜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질문을 해 주셨다. 긴 통화는 아니었고, 짧게 끝나곤 했다. 그렇게 100일 가까이 사부님에게 매일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2012년 7월 26일 사부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어제는 통화하지 못했구나. 이제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에는 어떤 에너지가 있게 마련이다. 나는 네 목소리가 힘이 빠져있지 않기 바란다. 팟캐스트를 하면서 네 방송국 하나를 개국한 것이니 이제 그 목소리가 세상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구나.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그 인생으로 세상의 어떤 하나를 좀 더 좋게 했다면 그것은 좋은 인생이다. 너도 나도 그리 될 수 있으면 좋겠구나. 살아있음의 떨림과 흥분이 있는 순간들을 많이 갖도록 해라. 신치야, 이제 매일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 방송을 통해 늘 세상과 통화하도록 해라. '네가 사부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울 것이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세상에 대한 부드러움을 알고 있다.”
여기에 나는 사부님께 이런 댓글을 남겼다.
“사부님~~~~~~~~~~~~~~ 며칠간 계속 통화가 안됐네요. 제가 타이밍을 잘 못 맞추고,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사부님이 전화하라고 하셨던 그 순간부터, 매일 전화를 하면서, 매일 사부님께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임을 말씀드리기 위해 해 왔던 하나하나의 실행들이 모여 '실험하는 아이디어 컴퍼니'의 모습이 갖춰졌습니다. 사부님께 좋은 목소리로 전화드리기 위해 매일 집 밖으로 나오면서, 우울에서 조금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팟캐스트도 개국할 수 있게 되었고요!
목소리에 힘이 빠지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사부님!!
처음 전화드릴 때는 그렇게 부담스럽더니, 막상 이제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니, 조금 서운하네요. ㅜㅜ..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전화드리겠습니다~!! '사부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워지실 때쯤이요. 나머지 날들은 사부님 말씀처럼 방송을 통해 세상과 통화하고, 소통하겠습니다. 세상의 부지깽이가 되고픈, 이미 그런 역할을 하고 계신 사부님처럼 저 역시 세상의 어떤 하나를 좋게 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며, 꾸준히 살아갈게요. 늘 제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시는 사부님이, 저는 참 좋습니다. 감사해요 사부님~!!!^^"
이 말을 남기신 시점으로부터 9개월이 지난 2013년 4월에 사부님은 영면하셨다. 아마 이때부터 병으로 인한 고통이 더 심해지신 것 같다. ‘네가 사부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그리울 것이다 라는 이 말씀이 마치 본인의 머지않은 현재의 시간을 예감하고 말씀하신 것 같아 지나고 나서야 더 가슴이 아팠다.
사부님은 많은 제자들과 독자들의 가슴에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었고, 나 역시 그런 영감을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사부님께 무언가를 여쭤보면 정답을 얘기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질문을 던져주셨다. 사부님 곁에서 늘 북돋아주는 동기들 덕분에 머릿속에 있는 많은 것들을 실행해 옮겨볼 수 있었다.
사부님의 추모 학술제를 통해 내 가슴속의 불을 지펴주었던 불쏘시개, 부지깽이였던 사부님이 다시 살아났다. 이제는 그동안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을 세상을 위해 써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구본형 사부님이 그러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