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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Oct 20. 2022

관계에 대한 불편한 진실

2012년 1월


휴가인 친구와 파주에 있는 북카페로 바람을 쐬러 가는 길.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에 만난 친구가 죽었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비보로 멍해진 나를 위해 친구는 근처 카페로 차를 돌렸다. 30분 동안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내 곁을 지켜 주었고, 안양의 장례식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친구의 휴가를 망쳐서 미안했고 정신없던 나를 잘 챙겨주어 고마웠다. 장례식이 끝나고 메신저에 접속해 있던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잘 지내고 계신가?? 요즘 많이 바빠?”

“응, 프로젝트 마감이 얼마 안 남아서 조금 정신이 없네.”

“그렇구나. 내가 문자 두 번이나 보냈는데, 다 씹었어.ㅜㅜ.”

“아, 그랬나?? 카톡으로 보냈구나? 일할 때는 귀찮아서 알람을 꺼 두거든. 보낸 지 한참 됐구나? 답장 없어서 마음 상했구먼??”

“그래, 내가 좀 소심하잖아.ㅋ 아니, 그냥 차 한잔 하자고. 밥을 먹어도 좋고.”

“차? 너 자주 가는 카페에서 차 한잔 할까? 어디서 볼까? 서울대 입구? 숭실대? 어디 맛있는 거 있어??”

“뭐 상관없어. 차든 밥이든. 차 마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굴 보려고 하는 거니까.”

“그래, 그러면 내일 저녁에 보자.”


다음 날 저녁 친구와 만났다. 얼굴이 많이 힘들어 보였다. 친구를 만나기 전, 카페에서 엄마의 전화를 받아서 내 기분 역시 갑자기 다운되어 썩 유쾌하지 않은 상태였다.

친구가 주말에 산 옷을 바꾸기 위해 쇼핑몰로 향했다. 가는 길에 라디오를 들었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잘못 안내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한 시간이나 걸렸다. 매장에 도착해 친구는 바쁘게 아래 위층을 뛰어다녔다. 옷을 바꾸고, 친구는 지난주에 문을 닫아 못 먹은 타코를 먹자며 지하 푸드 코트로 나를 데리고 갔다.


하지만 가는 길에 업무 전화를 받은 친구의 심기가 다시 불편해졌다. 통화를 끊고, 친구는 이메일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업무를 마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드디어 음식을 주문했다. 마주 앉아 먹을 때까지도 대화는 없었다. 친구는 계속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딱히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힘들었다. 함께 했지만, 각자의 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근데, 오늘 왜 보자고 한 거야? 뭐 할 말 있었던 거 아니야?”

“아니, 그냥 차나 한잔 하자고 했던 거지 머.”

“그럼 차 마시러 갈까?”

“(버럭 화를 내며) 됐거든!!!”


사실 친구에게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도 에너지가 없는 상황에서, 더 에너지가 없는 친구를 보니 체력이 고갈되어 버렸다. 그래서 버럭 화를 내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마을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어, 마을버스 지나가네. 나 그냥 마을버스 타고 갈게.”


라고 했다. 이번에는 친구가 버럭 화를 낸다.


“야, 내가 집까지 안 데려다주겠냐?”


그렇게 또 둘 다 말없이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다. 어색한 침묵으로 온몸이 긴장됐다. 집에 내리는데 친구가 말한다.


“오늘은 내가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다음에는 상태 좋을 때 보자. 근데, 아마 프로젝트가 끝나고 난 뒤일 거야.”

“그래, 데려다줘서 고마워. 회사 일 마무리 잘해.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렵다. 얼른 떠나야겠다.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그저 스치는 인연들만 있는 곳으로. 그러면 편해지겠지. 지친다. 관계들로 인해. 차라리 고독을 택하는 게 마음은 훨씬 편할 것 같다. 진심.”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페이스북에 사람들이 댓글을 남겼다.


“너 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거야~~~”

“내 말이~~~”

“이유가 있는데 본인이 거부하는 이유가 아닐지.”

“그저 토닥토닥…”


그리고 나는 댓글을 남겼다.


“선배.. 이유라.. 그냥. 갑자기 지금까지 내가 관계를 맺어온 방법들이 다 잘못된 것 같이 느껴져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사람들을 가리게 되고. 이게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자체가 피곤하기보다 어떤 상황들이 피곤한 듯…”


여기에 선배는 또다시 내게 말을 걸어준다.


“응. 그럴수록 외면하지 말고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리를 꼭 해 두는 게 좋아. 안 그러면 집에 들어올 때마다 안 치워둔 방처럼 짜증 나거든. 결국 치우기는 싫고 치울 엄두도 안 나니 이사 가버려야겠다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렇다. 뭔가 정리가 필요했다. 어제 친구와의 상황부터 생각해 보자. 아니 어제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어제는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왜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어졌을까? 언제부터인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사람을 만나기 싫어졌다. 나쁜 기분에 사람을 만나면,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줄 수가 없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필요한 것은 공감이다. 하지만, 공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안 좋은 기분에 사람을 만나면 이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찬다.


‘아… 이 대화를 어떻게 끝내지. 어떻게 마무리하고 집에 빨리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시작되면,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단답식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금세 대화가 끊기고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스스로 공감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기 부담스러워졌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감정이나 현재 상태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이런 상태가 잦아졌다. 그때마다 사람들과 거리감이 느껴지고 관계도 불편해진다. 그래서 요즘은 내 모습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만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관계는 정리되고 좁아지고 있다.


어제 친구와의 만남도 역시 그랬다. 친구를 만나기 전부터 내 기분은 별로였고, 거기다 친구의 감정 상태까지 더해져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오늘 아침 기분이 다시 좋아지고 나서야, 어제 있었던 상황과 내뱉은 말들을 곱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다시 미안해졌다. 그리고 어제의 감정과 오늘의 미안함을 어떻게든 전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넘겨야 할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이런 감정 상태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리고 사람들과 계속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마주할 자신이 없고, 선배의 말처럼 계속 피하게 된다. 당분간은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 어쩌면, 먼 다른 나라로 떠나고 싶은 게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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