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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Oct 20. 2022

진짜 페르소나를 찾아서

2011년


나의 페르소나는 무엇일까? 페르소나(persona)란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이다.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했다.

자아가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이나 역할을 수행한다. 이 단어는 원래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점차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개인을 이르는 말로 쓰여졌다.


가족, 친구들, 회사 동료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요즘 가족들이 바라보는 모습은 ‘제 갈길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돈도 잘 못 벌고 있는 애물단지’인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곧 미국으로 유학 가는 동생과 함께 가는 것을 권한다.


“어차피 여기서 대단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외국에 나가서 하는 것이 어때? 가서 괜찮은 사람을 만나 아예 눌러앉는 것도 괜찮고.”


라고 말이다. 맏딸이지만 기댈 수 있기보다 걱정이 앞선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은 일도 있어서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나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바닥을 친 상황이다.


친구들에게 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다. ‘자기 얘기를 잘하지 않는 친구’이기도 하다. 여전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으나-'을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다. 어느 정도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나를 보여준다.


직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아마도)할 일은 찾아서 하는 사람’ 일 것 같다. 잔소리 듣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누군가 시키기 전에 할 일은 찾아서 하려고 애쓴다. ‘믿을 만하고, 계속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도 있다.


어쩌면 페르소나는 사람들이 판단하기 전에 ‘내가 만들어 내는 모습’ 일지 모른다. ‘이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는 것이 바로 페르소나가 아닐까? 


페르소나를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라고 한 융의 표현처럼 무의식 속의 열등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계속 나를 포장한다. 그리고 실제 모습과 페르소나의 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사람은 외로워지는 것 같다. 내가 의식하는 ‘자아’와 환경에 대처하고 있는 가면 ‘페르소나’가 조화롭지 못하면 심리적인 부담이 커진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페르소나는 늘 자신감이 넘치고, 매사에 당당하고, 약속을 잘 지키고,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정직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의 자아는 자신이 없어서 자꾸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 한다. 약속을 어기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타인보다 나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 여유를 갈망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여유롭지 못하다.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나를 타인에게 내보일 수 있는 훈련도 필요할 것 같고, 

이미 여유로운 부분에서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여유롭지 못한 부분에서는 여유를 만드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 걸음씩 자아와 페르소나를 일치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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