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어린 시절 스키, 스노보드, 플루트 등 친구들이 할 수 없는 각종 스포츠와 악기를 배웠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곤 했다. 무엇이든 '남들이 하지 않는 무언가를 할 때’ 우월감을 느꼈고 부러워하는 시선을 즐겼다. 이중생활은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잘 사는 집 아이로 행복한 척했다. 하지만 내게 집은 감옥이었다. 집에 있는 시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품고 있는 것과 같았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날 기류가 흐르면, 내 심장은 쪼그라들었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들에게 그런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듯한 아이’의 모습을 보였다.
핵폭탄이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한 시간은 중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중학교 때 나의 분노가 극에 달해 부모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식칼 사건’ 후, 서로 조심했다. 그러나 여전히 극도로 긴장했고, 행복이라는 가면은 벗지 못 했다.
나는 매 학년마다 친구들을 갈아 치웠다. 매년 반이 바뀌어 친한 친구들과 떨어지는 것은 내게 축복이었다. 가면을 1년만 잘 보여주면 되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인간관계란 일 년용이었다.
그러다가 4년을 함께 보내야 하는 동기들이 있는 대학에 왔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 공간은 낯설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서도 새로운 공간을 계속 찾아다녔다.
대학 졸업 후 7년째인 현재. 대학에서 만난 인연 중 소수만 남았다. 그중 나를 잘 아는 친구를 만나면 불편했다. 왜냐하면,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친구가 내게 행복한 척하지 말라고 했을 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내 글을 본 사람들은 글에 묻어 있는 '우울한 모습들’을 잘 찾아냈다. 나의 우울을 감지한 지인의 도움으로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있던 '행복하지 않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다’
‘행복하지 않은’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금방 싫증이 났다. 어차피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 무기력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는 모든 일에서 손을 뗀 채, 음악을 듣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 혹은 맥주를 마시는 것 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만난다. 변하려면 나는 무얼 해야 하지? 나를 진정으로 행복해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거? 지금까지의 나를 다시 분석하는 것?
일단 내 진짜와 하나가 될 정도로 딱 붙어버린 행복의 가면을 조금씩 벗겨내야겠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민낯을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렇게 조금씩 가면 벗은 모습을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면, 다른 것들도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