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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Oct 20. 2022

무의식 속 신념

2012년 6월


'나는 행복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왜 행복하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내게 던졌다. 어릴 적의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가족과 주변 관계를 다시 볼 필요가 있었다. 그때 방영 중이던 교육 방송의 '가족관계 개선'을 위해 심층적인 심리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에 출연 신청을 했다.

몇 시간 뒤, 제작사에서 출연하게 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하지만 방송 출연을 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동생들은 본인에 대해 어떤 것도 방송에 나가지 않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마지막 관문인 엄마가 남았다.


엄마 친구 딸의 결혼식이 있는 토요일, 엄마와 함께 사진전을 보기로 했다. 결혼식장 가는 길에 엄마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엄마는 남편이 없는 것도, 가정 폭력도 공개하기 원치 않았다. 결국 방송 출연은 취소했다. 하지만 얻은 것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방송 출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엄마는 내게 했던


'너네 아빠랑 어쩜 이리 똑같니?'


라는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알았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왜 그렇게 신상을 숨기려는지 이해했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먼저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기다린다. <비폭력 대화> 중


방송 출연 신청을 할 때 나보다 엄마가 변해야 우리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거라 믿었다. 엄마에게 받은 내 상처가 아물기 위해 엄마의 변화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방송 출연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네가 방송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얻고 싶은 게 뭐야? 그것에 대해 우리 둘이 이야기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면, 방송에 출연할게. 그러니 그걸 정리해서 엄마에게 말로 할지, 글로 써서 줄지 정리해봐"


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또 화가 났다.


'엄마는 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군. 또 이런 식으로 나의 의지를 꺾어버리려고 해.'


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대화를 시도해야 하니, 방송에 나가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내가 변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핵심이었다. 감정 표현이 서툴고, 무표정하게 사는 내가 더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더 많은 감정 표현을 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을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엄마는 진지하게


"네가 그토록 원한다면, 이 방송 출연을 통해 상담을 받지 않아서 후회하고 나중에라도 나를 비난할 것 같으면 출연하겠다."


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다른 조건을 하나 더 제시했다. 방송이 나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내가 경제적으로 책임진다면 출연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책임까지는 어려웠다. 결국 엄마가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엄마가 야속해 펑펑 울었다.


다음 날 나는 문득


'내가 변하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 붙여 놓은 전지에 내 마음속 신념들을 적어 내려갔다. 가운데에 '행복하지 않다'를 쓰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생각들을 적었다. 무한 긍정이라고 생각했던 내 머릿속은 사실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부정적 생각 옆에 원하는 것을 적었다.


'행복하지 않다'는 '행복하고 싶다'로. 가족은 불행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가족은 행복의 시작일 수 있다'로, '친구 관계에서 항상 신뢰와 인정을 받아야 한다'란 생각은 '때로 다투고 오해할 수도 있다. 잘 해결하면 더 깊은 관계가 된다' 등으로. 기존의 생각들을 지우고, 새로운 생각들을 하나씩 적었다.


이렇게 적어서 내 머릿속 깊이 뿌리 박혀 있던 신념이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다. 단지 무의식 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것들을 인정했더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무기력증과 우울증으로 손을 놓고 있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실현 불가능한 이상과 희망은 버렸다. 그리고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씩 실행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나를 괴롭히던 생각과 숨겨져 있던 '무의식'을 알고 인정하자 지금껏 나를 괴롭히던 우울증 그리고 나도 모르게 흘렀던 눈물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이해하기 시작하자, 가슴 한편에 늘 있던 무거운 돌덩이도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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