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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상하는 마케터 Mar 16. 2023

알바의 인사발령

5개월 전에 지인을 알바로 뽑았다. 당시에 나는 다른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었고, 짝꿍 혼자 함께 만든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팔아야 할 제품군이 확대되면서 혼자 일하던 짝꿍의 일이 너무 많아졌다. 단순 업무이지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주문 발주 및 발송처리와 교환 및 반품 등의 CS 업무를 알바에게 맡기기로 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알바는 나보다 일곱 살인 짝꿍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다. 위탁 판매 쇼핑몰을 하는 우리는 직접 물건을 사서 택배 포장을 하고 송장을 하는 업무는 없다. 전체 쇼핑몰의 주문 발주를 관리하는 하나의 프로그램에서 거래처별 주문 현황을 엑셀 파일로 다운로드하여 거래처에 직접 전달하거나, 해당 물건을 파는 사이트에서 구매를 하면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택배 송장 번호가 나오면 반대로 송장 입력을 하여 고객에게 발송처리를 하면 된다. 중간에 주소를 갑자기 변경해 달라고 하거나, 주문/취소/교환/변경 등의 요청에 응해주는 것이 알바의 업무다.

아르바이트생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한다.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이고, 점심 식사 후에 10분 거리에 있는 얕은 산으로 산책을 갔다 온다. 자연과 걷기를 좋아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이 시간이 ‘우리 회사 최고의 복지’다.

처음 아르바이트생과 일을 하며 짝꿍에게 들려오는 이야기는 대체로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산책을 했고, 산책 길에 고양이를 만났으며, 집에 있던 츄르를 줬더니, 매일 산책 시간에 츄르를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직접 출근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두 사람이 좋은 분위기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겼다.


시간이 흐르고 회사 매출이 늘면서, 업무가 많아졌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3일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 달 전부터 짝꿍이 있는 회사로 돌아왔다. 출근한 첫날 알바와 짝꿍 사이에 어색하고 불편한 기운을 감지했다. 

본인이 맡은 아주 단순한 업무를 처리하는데, ‘할까요?’라고 하나하나 물어보는 알바와 ‘그걸 왜 또 물어보냐?’는 뉘앙스를 가득 담아 ‘네, 하세요’라고 대답하는 짝꿍. 알바와 짝꿍 사이 책상에 자리를 잡은 나는 두 사람의 이런 기운이 몹시 불편했다. 하지만 끼어들 수는 없으니 잠자코 있었다.


그제야 그동안 수도 없이 내게 말했던 알바에 대한 짝꿍의 불만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씩 실수를 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렇게 단순한 업무인데??”

혈액형 B형인 짝꿍에게는 일을 같이 할 때 자기 방식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사람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한 일을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거나, 중요한 업무를 물어보지 않고 처리할 때도 그런 기운을 뿜어내곤 한다. 


같이 살고 있어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 짝꿍의 이런 모습은 소심한 A형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B형의 강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모습으로 인해 A형은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긴장하며 일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더 잦은 실수를 유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B형 관리자와 A형 직원과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고 말았다. 주변의 다른 지인을 통해 아르바이트생이 본인이 회사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나이가 많아서 이렇게 실수를 자주 하는 것인지, 본인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관리자인 짝꿍 역시 아르바이트생이 지인이다 보니, 완전히 화를 내지는 못하고 꾹꾹 눌러 참다 보니 화가 쌓여 얼굴이 까매지고 배부터 가슴, 목과 어깨 그리고 머리에 이르기까지 상체 전체가 굳어지고 숨을 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 상황을 지켜본 스승님의 조언에 따라 아르바이트생 관리자를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 아침 아르바이트생이 출근하자마자 인사 발령을 통보했다.

“오늘부로 ‘투덜이’ 팀에서 ‘해맑은’ 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짝꿍 말처럼 사소하지만 잦은 실수, 중요한 업무를 미리 물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 보조 업무 때문에 우선 업무를 놓치는 것 등의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짝꿍과 함께 쓰고 있는 노션에 알바의 업무를 기록할 수 있는 페이지를 새로 만들었다. 가장 중요하게 먼저 처리해야 하는 우선 업무와  두 번째로 중요한 CS 업무 그리고 시간이 날 때 하길 바라는 보조업무 세 가지 표를 만들었다.


현재처럼 실수의 빈도가 줄어들 때까지 업무 하나를 할 때마다 기록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발주(주문하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나를 불러 달라고 했다. 발주하기 전 최종 확인을 한 뒤에 주문을 하여 실수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실수로 시작되긴 했다. 분명히 주문을 하기 전에 나를 불러달라고 했는데, 이미 주문완료된 상태에서 나를 불렀다. 하지만 그 부분은 내가 설명을 제대로 못 한 잘못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얘기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내가 말한 대로 주문 전에 확인을 받았다. 노션 페이지 역시 익숙하지 않은 툴인데 금방 잘 사용하고, 기록을 꼼꼼히 했다.


퇴근 전까지 모든 업무를 잘 처리하였으며, 큰 실수 없이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물론 오늘도 시작할 때 무언가 작은 실수가 있어 짝꿍은 ‘오늘도….’라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라 다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다른 성향으로 인해 서로의 말과 행동이 마음과 몸의 병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상황을 좀 바꿔 보기 위해 투입된 나. 과연 알바는 앞으로 매일 하던 실수를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으로 점차 줄여나갈 수 있을까?


구본형 작가의 <사람에게서 구하라>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관중은 ‘그 사람에게 맞는 적절한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었고, 적합한 사람이 적합한 자리에 잇지 못하면, 결국 개인은 몸을 망치고 조직은 일을 망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관중과 같은 지혜로 어려운 시기를 잘 헤처 나갈 수 있기를…


사장은 저도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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