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크리스마스는 모처럼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온전하게 쉴 수 있는 빨간 날이었다. 요즘 짝꿍과 나는 월수금 3일은 러닝을 하고,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수영을 하고 있다. 러닝은 8주 차 프로그램을 시작해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쉬지 않고 30분 달리기에 성공했다. 주말에는 수영장에 가서 헬스와 수영을 하거나 휴양림이나 오름을 산책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였던 목요일 어제 아침부터 짝꿍의 계획은 아침에 수영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침밥을 먹으면서 최근 다시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시즌2’를 보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티브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결국 열려 있는 모든 회차를 보고야 말았다. 그러고 나니 오후 4시가 되었다.
마지막 회차의 영상을 볼 때 짝꿍은 결국 기다리다 지쳐 자기 할 일을 하러 가 버렸다. 할 일이 끝날 때쯤 내게 얘기했다.
“속옷이랑 수영 갈 것 좀 챙겨줘요.”
알았다고 대답하고 계속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다시 한번 짜증을 내며 말했다.
“짐 좀 챙겨줘.”
그제야 나는 수건, 속옷, 수영복 등을 주섬주섬 챙겨 가방에 넣었다. 드디어 흑백요리사 마지막 회차가 끝났고, 그에 맞춰 짝꿍이 하던 일도 마쳤다. 수영 가방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와 차에 탔다. 차에 타면서 내 마음속에서도 화가 났다. 그래서 차를 타자마자 짝꿍에게 정색하며 물어볼까 생각했다.
“아니, 근데 도대체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모처럼 빨간 날이라 쉬는데 늦게까지 티브이 좀 보고, 운동을 늦게 가게 된 것이 그렇게 화를 낼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물어보면 서로 화만 나고 싸움이 될게 뻔하기 때문에 숨 고르기를 하면서 참기로 했다.
수영장까지 20여분. 차를 타고 가며 나는 내 마음을 그리고 또 짜증을 냈던 짝꿍을 마음을 헤아려보기로 했다.
‘결국 티브이 보다가 소중한 하루를 또 이렇게 보내버렸네. 오늘 마음먹고 하려고 했던 일들이 많았는데… 짝꿍이 아침에 운동하러 가자고 할 때 갈걸 그랬나..’
‘짝꿍도 오늘 계획했던 일들이 있을 텐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 돼서 짜증이 났겠구나.’
그렇게 하루를 돌아보고, 마음을 들여다보니 화를 내려고 했던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수영장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짝꿍의 목을 주물러 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대지(우리는 서로를 대지라고 부른다)가 고생이 많네.”
그제야 짜증으로 굳어져 있던 짝꿍의 표정이 풀리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이고, 우리 삐죽이”
나는 삐죽거리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비틀며 말했다. 그러자 웃으면서 말했다.
“요리해 줄 것도 아니면서 하루 종일 요리프로그램은…”
그렇다. 사실 우리 집 셰프는 짝꿍이다. 나는 설거지 담당이자, 가끔 요리 보조를 할 뿐이다. 집에서 요리와 주방은 짝꿍이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요리 프로그램을 열심히 본 내게 짝꿍이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ㅎㅎㅎ 그렇네. 보고 맛있는 것도 안 해줄 텐데, 내가 너무 열심히 봤네.”
결혼하지 않고 십여 년째 살고 있는 우리. 사실 10여 년 동안 크게 싸운 적은 없었다. 싸움이라고 얘기하기도 뭐 할 정도의 이번과 같은 ‘투닥거림’ 정도다. 그나마 싸운다고 하면 오늘 같은 날 한 명이 상대방을 긁는 말을 할 때 다른 하나가 참지 못하고 서로에게 화가 나는 감정을 그대로 내뱉을 때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많지는 않다.
상대방이 화가 나서 하는 말에 당연히 똑같이 한 마디를 쏘아붙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눈을 감고 들고 나는 숨을 바라보거나 아랫배에 손을 얹어 넣고 아랫배의 움직임을 잘 느껴보면서 한 템포 쉬어가는 것이 좋다. 그렇게 잔잔했던 바다가 파도를 만들어내려고 할 때 숨 고르기를 하면 다시 잔잔해진다.
그러면서 ‘나는 왜 상대방의 말에 발끈하게 되었는지’, ‘상대방은 왜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화가 날 때는 바로 맞받아치지 말고, 한 템포만 쉬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