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의 빅 피처

by 라프
선미는 평소에 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 좀 더 깊은 대화를 해 보고 싶어 가족 구성원 모두와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다.


#지나의 빅 피처

지나: IMF 터진 뒤에 선미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니까 사람들이 전부 놀랐어. 무슨 돈을 숨겨놨냐고 하는 거야.

선미 여동생: 그때부터 학자금 대출이 생겼지. 그전같았으면 우리 학교 못 갔어. 입학금 없어서 합격 취소한 애들도 많았고.

지나: 산골에서 공부 잘해 서울에 있는 학교 입학해도 등록금이 없어서 애들 학교를 못 보낸 사람들도 많았지

선미: 사람들이 숨겨놓은 돈 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얘기했어?

지나: 숨겨 놓은 거 없다. 그냥 보낸 거다. 죽어라 치킨 팔아서 가르쳤잖아. 그때는 선미가 제일 부자였지. 서울 월세방 값이랑 우리 집에 매달 생기는 돈은 전부 선미한테 보냈거든.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할 때였잖아. 그래서 사람들이 애들 다 서울로 보냈다고 놀랐어.

선미 여동생: 나는 언니한테 얹혀살았지.

지나: 너는 정말 언니 덕 많이 봤어. 그래도 없는 것보다 백배 낫지. 코딱지만 한 집에 혼자 살았으면 못 살았어. 언니 울타리에서 살았지.

선미: 그럼 우리가 다 서울로 간 게 엄마의 빅 피처였네?

선미 여동생: 이제 알았니?

선미: 엄마가 서울 가라고 했다는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지나: 선미는 운이 좋았지. 수능 한 달 전부터 무지하게 열심히 했어.

선미 여동생: 나는 평소에 열심히 해서 수능 반, 내신 반으로 갔어.

지나: 선미가 그때 학교 못 갔으면 재수도 못 시키고 큰일 날 뻔했어.


#슬픈 장면

선미: 엄마가 생각하기에 가장 슬픈 일은?

지나: 우리 선미가 외국에 안 간 거. 선미한테 가장 많은 투자를 했고 파일럿이 되길 바랬는데 안 돼서 짜증 나.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데 엄마 마음을 알았으면 분발하기 바래.

선미: ㅋㅋㅋ 그것 말고 또 다른 건?

지나: 아빠 하늘나라 간 거. 아빠 갑자기 떠났는데 수중에 80만 원이 전부였어. 대학생 두 명에 고3 한 명, 애 셋이랑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지.

선미 여동생: 대학생 됐는데 알아서 살아가는 거지 뭐.

지나: 누울 방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 대구 집 정리하고 서울 올 때 집이 없었잖아. 서울에 올라오는 순 간 발 뻗고 잘 곳이 없다는 게 참 슬펐어.


#지나가 잘하는 것

선미: 엄마는 남들보다 뭘 잘하는 것 같아?

지나: 포기는 잘 하지만 끝까지 해내는 끈기가 있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미래를 바라보는 그런 게 좀 있어. 미래지향적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주제에 대해 사람들은 1을 생각하면 나는 9나 10을 생각하고 있어. 20~30년 후를 많이 생각해. 어떻게 보면 좀 덜 떨어진 사람 같기도 하지.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갈 수 있어. 남들이랑 다르게 생각하니까.

선미: 예를 들면?

지나: 지금 살기 힘들다고 애들도 안 낳고 결혼도 안 하잖아? 사람들은 인구가 적어져서 걱정하는데 나는 인구가 적어지면 집도 공짜고, 취직도 잘 되고, 경쟁력이 없어서 살기 좋아지겠다고 생각해.


지나: 그런데 공부에는 끈기가 없어. 개근은 하는데 1등은 못하는 성격이지. 공부 말고 꼭 해야 하는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하는 편이야.

선미: 끝까지 한건 뭐야?

선미 여동생: 애들 키운 거

지나: 맞아


선미: 그럼 엄마의 단점은 뭐라고 생각해?

지나: 일을 슬렁슬렁하는 것 같아. 뒷심이 약하다는 거지.

선미: 그런 경우가 있었어?

지나: 거의 다 그래, 나는.



# 가족관계에서 힘들었을 때

선미: 다른 가족보다 내가 더 노력하지만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언제였어?

지나: 나는 아빠 떠나고 너네 먹여 살리느라 힘들게 죽어라 일하고 있었는데 선미는 제주도로 여행 가고, 나랑 선미 여동생이랑 집안일하고 있을 때는 기분 나쁘다는 핑계로 카페로 도망가고 선미가 참 얄미웠어. 또 한 번은 선미가 공항에 마중 나왔어. 나는 내 무거운 가방 들어주러 왔나 보다 하고 기특해했는데 가방도 놔두고 친구 만나러 가버리는 거야. '도대체 쟤는 왜 왔지?'라고 생각했어. 나는 아빠도 없으니까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데 선미는 탱자탱자 노는 거야. 직장 그만둘 때는 빚만 가득하고. 내가 너무 열심히 살아서 애들이 약해진 건가 생각했어. 열심히 산 게 후회가 됐어. 언젠가 개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일을 쉬게 된 거지.

선미: 내가 잘못했네.

지나: 아는 언니 딸은 아빠가 없어서 월급 타면 자기가 10원도 안 쓰고 엄마에게 다 갖다 줬데. 근데 엄마는 돈을 받은 기억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그 집 딸이 엄청 억울해했데. 나도 순간적으로 억울했어. 선미 너 첫 직장 갈 때 3년 동안 5천만 모아서 유학 가겠다고 했는데, 진짜 그럴 생각은 있었던 거야?

선미: 돈이 생각보다 안 벌렸어. 카드값으로 다 썼어.

지나: 나는 네가 5천만 원 모아서 파일럿 되겠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말과 행동이 맞지 않아서 실망한 거야. 지금도 늦지 았으니까 가라고 하는 거지. 너에 대한 엄마의 마지막 희망이자 바람이야.



# 사람 관계에서 중요한 것

선미: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야?

지나: 의리 있고 솔직한 거. 근데 나는 의리를 지킨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볼 때 의리가 없다고 생각하더라.

선미: 왜 그럴까?

지나: 사람들의 사고와 내 사고가 달라서 그런 거겠지?


선미: 가족의 화합을 위해서는 뭐가 중요할까?

지나: 건강과 돈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것.



# 롤모델

선미: 엄마 닮고 싶은 사람 있어?

지나: 나 자신. 나는 나를 제일 좋아해. 내가 최고인데 남을 본받고 싶지 않아.

선미: 엄마의 어떤 점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나요?

지나: 내 잘난 맛에 사는 거지 뭐.(ㅎㅎㅎ)



# 가족과의 추억

선미: 아빠를 생각하면 어때?

지나: 사업을 멋지게 하고 싶어 했어. 늘 큰 꿈을 꾸었는데 못 하고 간 게 아쉬워.

선미: 무슨 사업?

지나: 늘 마음속으로 계획만 세워서 무슨 사업인지는 모르지.


선미: 선미를 생각하면 어때?

지나: 파일럿이 되면 좋겠어. 엄마의 희망사항이야.

선미 여동생: 언니 꿈을 왜 엄마가 정하고 그래.

지나: 말도 지독하게 안 듣는 선미.


선미: 여동생과의 추억은?

지나: 항상 얼굴에 불평불만이 많아서 나한테 맨날 '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낳았어?'하고 물어봤어. 그런데 2020년 1월 2일에 드디어 쌍꺼풀 수술을 했지. 그렇게 마감한 게 큰 추억이야.


선미: 남동생은 어때?

지나: 친구 따라 외국 유학 가서 3개월 만에 올 줄 알았는데 9년째 잘 살고 있는 게 기특해. 결혼도 일등으로 해서 제일 효도한 거지.

선미 여동생: 엄마는 아빠랑 불행했으면서 왜 우리한테는 결혼하래?

지나: 내가 시킨다고 시키는 대로 할 애들이냐?


선미: 다시 태어나도 아빠랑 결혼할 거야?

지나: 응 해야지.

선미: 왜?

지나: 왜는. 할 남자가 걔밖에 없으니까 그렇지.

선미 여동생: 돈 벌고 혼자 살면 되지 뭐.

지나: 그렇네.




이전 10화반화반거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