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는 술을 참 좋아한다. 소주는 못 마시지만 맥주를 사랑하고, 정종은 즐기지 않지만 와인의 향을 좋아한다. 영업을 하던 시절에는 주 3일 이상 술자리가 있었다. 친구가 부르거나 선미가 부르거나 어떤 행사가 있거나. 하지만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들어오는 선미를 지나는 못마땅해 했다.
영업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편이었다. 어느 단체 모임의 뒤풀이 모임에서 한 친구가 연극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연기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선미는 지나가는 말로 '나도 기회가 되면 연기를 해 보고 싶다'라고 했다. 얼마 후 친구가 선미에게
"아마추어 극단이 있는데 이번에 뮤지컬을 해. 너도 같이 할래?"
"오~~~ 좋아!!!"
아마추어 극단에서 뮤지컬 '렌트'를 함께 하기로 했다. 지나가는 행인 1이었지만 노래 부르는 것도 어렵고 무대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한 달여의 연습 끝에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몇 주 뒤 함께 공연했던 멤버 중 2명과 집 근처 와인바를 찾았다. 공연 얘기, 각자의 연애 이야기 등등 신나게 수다를 떨면서 와인을 마시다 보니 각 1병을 마셨다. 이때만 하더라도 와인을 즐겨마시지 않던 시기라 와인 1병에 엄청 취해 버렸다.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오는 길의 기억이 사라질 정도로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바닥에 엎드려 있었는데, 뭔가 느낌이 '쌔'했다. 그리고 바닥은 차가웠고 으슬으슬 추위가 느껴졌다. 잠은 깼지만 눈을 뜨기가 싫었다. 왠지 눈을 뜨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제 분명히 집으로 왔는데, 내가 누워 있는 여기는 뭔가 평소와 다른 낯선 곳의 느낌이다.
눈을 뜨자 타일 바닥이 보였다.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보니 왼쪽에는 세면대 아래가 오른쪽에는 변기가 있었다. 화장실이었다. 배에서 느껴지던 묵직함은 화장실 문턱 위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배를 중심으로 홀딱 벗겨진 상체는 화장실 바닥에 있었고, 하체는 거실에 있었다.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으~~' 신음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지나가 말한다.
일어났니?
응. 엄마 나 왜 이러고 있어?
너 어제 와서 화장실에 토하고 있길래 씻겼는데 너무 무거워서 방으로 못 데려다 놨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지나는 속 쓰린 딸을 위해 북어국을 끓여주었다. 그마저도 너무 속이 쓰린 선미는 몇 숟가락 못 뜨고 출근했다. 출근길에 계속 아침에 눈 떴을 때의 그 장면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선미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굴욕(?)의 아침. '정말 이제는 술을 적당히 처마셔야겠구나'하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 이 날. 이날을 선미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반화반거(반은 화장실에, 반은 거실에)의 아침>
지나의 이야기
새벽에 들어온 선미의 토사곽란으로 인해 고요하던 지나의 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잠자다가 묘한 냄새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일어났더니 선미가 화장실에 엎드려 토하고 있었다.
"이놈의 지지배가 또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우선 화장실 바닥의 구토물을 치우고 선미의 옷에 묻은 토사물을 치우기 위해 의식이 없는 선미의 옷을 벗겼다. 그리고 몸 여기저기에 묻어 있는 것들을 샤워기로 씻겼다. 도저히 무거운 딸내미를 방으로 옮길 자신은 없어서 그대로 놔두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어이구. 내가 이 꼴 안 보기 위해서라도 저거 빨리 독립시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