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을 건사하기 위해 남자들이 하기에도 체력적으로 힘든 일을 해야 했던 지나. 지난 3개월간 일로 인해 지쳐서인지 지나가 선미에게 내뿜은 부정적인 아우라를 선미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평소에도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심부름시킬 일이 더 많아졌고, 퇴근할 시간이 다가오면 선미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어디서 노냐? 집에 몇 시에 들어올 거냐?
물론 질문의 목적은 여느 엄마들처럼 그저 ‘딸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12시 안에는 들어갈 거야
라는 대답에 예전 같으면
그래, 적당히 놀고 들어와
라고 쿨하게 대답하던 지나였는데, 그렇게 쿨했던 지나는 사라졌고, 전화 통화로 선미가 말한 귀가 시간이 지나는 그 순간부터 수십 번씩 전화를 하는 엄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들어가겠다고 얘기한 어느 날, 선미는 엄마와 집에 들어가기로 약속한 시간에 여전히 술자리에 있었다. 선미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야, 지금 몇 시야? 너 몇 시에 들어온다고 했어? 10시? 근데 지금 몇 신데? 너, 진짜 엄마 죽는 꼴 볼래? 넌 어쩜 이렇게 너네 아빠랑 똑같니?
선미는 지나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무거운 마음과 발걸음으로 먼저 일어서겠다며 술자리에서 가방을 집어 들고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그런데 선미는 생각하고 곱씹을수록 지나의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선미 역시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채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말 화가 나는 건, 집에 도착하면 그렇게 화를 내던 엄마가 언제나 세상모르고 아주 편안하게 주무시고 있다는 거다. 차라리 전화로 화를 냈던 그 상태 그대로 내게 다시 화를 낸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매번 이런 식이다. 엄마는 늘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내게 마구 던진다. 그걸로 끝이다.
안 그래도 진로 문제로 머릿속이 복잡한데, 지나까지 선미를 못살게 구니 이제는 정말 선미가 도망칠 구석이 없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전히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고 계신 지나여서 선미가 눈 뜨기 전에 지나는 집에 없다는 것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는 지나와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선미가 서로가 깨어있는 얼굴을 볼 시간이 매우 적다는 것은 선미 입장에서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지나가 선미에게 화를 낸 지 3개월에 접어들었다. 선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하루라도 빨리 동생이 있는 호주로 도망가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지나는 화의 근원이던 ‘일’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날 새벽, 지나가 자고 있던 선미를 깨웠다.
엄마, 오늘 일 못한다고 얘기할 거야. 그러면 그 일 못해서 못 받는 돈은 어떡할 거야?
자다 깨서 비몽 사몽인 선미에게 지나는 또 한 마디를 한다.
너는 다른 사람들들이랑은 희희낙락 얘기도 많이 하고 맨날 늦게 들어오면서, 엄마랑 겨우 잠깐 이야기하는 시간에 눈도 제대로 안 뜨냐.
눈 뜨고 정신 차리는 시간이 다른 엄마와 딸. 본인이 깨어 있는 시간에 일방적으로 말을 건네는 지나가 하는 말에 선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서 오늘도 선미는 지나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 몇 주만에 둘 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지난 3개월간 있었던 일을 선미에게 이야기하는 지나. 알고 보니 지나의 화를 만든 원인이 ‘그 일 자체’가 아니었다. 힘든 일을 하는 것은 괜찮으나, 그 일을 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말도 안 되는 뒷담화’들. 그리고 그 뒷담화가 오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쓸데없는 오해들’이 문제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팠는데,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하면서 이유 없는 두통-선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던 바롸 그것-도 말끔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나가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난 그 날, 선미는 지나에게 전화를 한 통도 받지 않았으며, 지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웃으면서 대화가 가능했다. 본인의 상황을 얘기한 후 지나가 선미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네가 그 일 왜 그만뒀는지 이제 알겠어. 남들이 뒷담화하는 게 이렇게 스트레스받는 일인지 몰랐지 뭐니?
얼마 전 비서로 일하던 공기업을 그만두겠다고 고백하면서 선미는 지나에게 ‘임원의 험담’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는 얘기를 했다. 당시는 지나가 선미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도 좀 참지 그랬니?’라고 얘길 했는데, 이번에 지나도 선미와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선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그동안 엄마가 왜 그렇게 나한테 짜증을 내고 못살게 굴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감시받으면서 일하기 싫어하고, 알아서 자유롭게 본인이 일한 만큼 벌어가는 것이 편한 엄마가 ‘누군가의 감시’를 받으며 일 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게다가 큰 딸이라고 하나 있는 건 제 앞가림도 못하고 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다. 그런 내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네 아빠 살아 있을 때도, 네 사람을 먹여 살렸는데 말이야. 너네가 지금처럼 다 컸는데 아직도 너네를 먹여 살리고 있어야 해? 넌 언제 엄마 먹여 살릴래?”
이 한 마디에서 엄마가 현재 짊어지고 있는 삶의 고통과 무게가 그대로 느껴졌다. 나이 서른 먹은 딸내미가 생활비는 못 낼 망정, 엄마에게 여전히 빌붙어 살고 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다. 내가 엄마 입장이었어도 답답할 것 같다.
엄마가 힘들었던 상황을 듣고 보니 그동안 내게 화를 냈던 것이 사실은 '나 이렇게 힘들어. 제발 나 좀 봐줘.'하고 엄마가 내게 도와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엄마에게 계속 원망하는 마음만 내고 있었다. '엄마 왜 그래? 요즘 무슨 힘든 일 있어?'하고 한 번만이라도 물어봤더라면 엄마가 힘든 내색도 하고 위로를 좀 받았을 텐데 말이다.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 선미가 공기업을 나오겠다고 할 때는 정말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이 나이에도 종일 운전해 번 돈으로 다 큰 자식들 먹여 살리고 있는데 회사에서 고작 말 한마디 돌아다니는 걸 참지 못해 그 좋은 회사를 또 그만둔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쓸데없이 열심히 살아서 선미가 너무 나약해진 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데 지난 몇 달간 회사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나를 두고 온갖 뒷담화를 하고 그것들이 오해를 불러일으켜 다시 화살이 되어 내게 돌아오는 상황을 경험하고 나니 내게 회사 상황을 자세히 말하진 않았지만 선미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겠구나 싶었다.
그동안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고 공황장애 증상까지 와서 운전을 하다가 위험한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상황을 견디며 하루하루 버티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생활비 한 푼도 안 보태면서 매일 친구들과 술판을 벌이는 선미를 보면 정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애 셋은 어린 상황에 생활비 한 푼을 벌어오지 못하던 선미 아빠가 생각나 선미에게 화를 많이 냈다. 지나고 보니 내가 너무 심했나 싶긴 하다. 그래도 오늘 저녁에 선미에게 다 얘기하고 보니 속이 좀 시원하다. 그동안 화를 낸 거에 대해 선미가 이해를 한 것 같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