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3년 8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나의 첫 번째 스승인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 선생님의 오랜 꿈이자 1인 기업가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간인 크리에이티브 살롱 9를 합정동에 오픈하게 되었다.
2010년 12월에 모아 둔 돈은 커녕 카드 빚과 여전히 남아 있던 학자금 대출을 잔뜩 남긴 채 첫 직장을 그만둔 이후로 번듯한 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나 단기 계약직을 전전하던 첫째 딸인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지나였다. 그러다가 합정동에 오픈하는 카페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지나는 불같이 화를 내며 내게 구본형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너무나 갑자기 화를 버럭 내는 바람에 얼떨결에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만 나.
구본형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고 난 뒤, 지나는 내게 다시 전화를 걸어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너네 그 잘난 선생에게 남의 귀한 딸 커피나 팔게 할 거냐고 얘기했어."
나 역시 지나에게 '도대체 왜 그랬냐'며 언성을 높였다. 전화를 끊은 후 차마 사부님에게 직접 말씀드릴 자신이 없어서 문자를 드렸다.
'사부님 죄송해요. 저희 엄마가 전화해서 괜히 사부님을 곤란하게 만들어 드렸네요.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는 게 아니었는데. ㅠㅠ 정말 죄송합니다.'
구본형 선생님은 2009년 직장 상사와 사이가 좋지 않아 힘들어하던 때에 구본형 선생님의 신간인 'The Boss'를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덕분에 알게되었다. 책을 읽고 상사와의 관계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런 책을 쓴 사람은 누구인 걸까?'라는 생각과 '사람 욕심'이 발동해 구본형 선생님을 인터넷에서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강남 교보문고에서 선생님의 강연이 있었고, 사람들로 꽉 차 있던 강연장의 먼발치에서 구본형 선생님을 실제로 처음 만나볼수 있었다. 선생님을 만나고 다시 '이 분과 꼭 친해지리라'하는 마음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는 구본형 변화경영 연구소의 '연구원' 제도가 있었다. 그해부터 매년 도전하기 시작해 3년째 되던 날 드디어 사부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 매주 책을 읽고, 책의 어느 문단, 구절에 비추어진 나를 글로 풀어놓기 시작하면서 어두워질 수밖에 었었던 나를 마주할 수 있었고, 점차 밝아져 갔다. 사회와 등진 채 점점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가기만 할지도 몰랐던 나를 살려 준 내 인생의 첫 번째 은인이 바로 구본형 선생님이었다. 그런 선생님에게 엄마는 '남의 귀한 자식 데리고 커피나 팔게 하느냐'라고 다그쳤으니, 나는 정말 쥐구멍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내 머리를 처박고 싶은 마음이었고, 사부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사부님은 '니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씀해주셨고, 걱정했던 내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작년 9월에 3년간 정직원으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사업자로 온라인 스토어를 시작했고, 동시에 내 인생의 두 번째 스승인 법화 스님이 30년째 운영 중인 윤주영 명상요가센터에서 지도자로 합류하게 되었다. 수업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되면서 지나에게 나와 동생들은 온라인 3개월 수강권을 선물했고, 3주 정도 지나서 지나는 가족 단톡 방에 이런 글을 남겼다.
30년 이상 해 오던 테니스가 명상요가 시작한 뒤에 더 잘 된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때부터 지나는 내 수업에 대한 냉철한 모니터링을 하면서 조언을 해 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와 수업 전에 잠깐 통화를 할 일이 있었다.
"수업 시작 전이나 수업 끝난 후에도 어리바리하지 말고, 똑 부러지게 말해. 그리고 센터 일을 남의 일처럼 하지 말고 내 일이다 생각하고 잘해 봐."
나는 지나씨의 이 말을 듣는 순간 8년 전 구본형 선생님과 함께 했던 카페 오픈을 앞두고 일어난 놀라운 그 상황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8년의 시간 동안,
나에게,
그리고 지나씨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8년 전 나는 엄마만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내게 해 주는 어떤 조언(심지어 정말 내게 도움이 될만한 것도)도 전부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무슨 말만 꺼내면 다 듣기도 전에 엄마에게 화를 내며 '그만하라'고 화를 내며 다그쳤다. 그리고 그런 내게 늘 엄마는 "너는 왜 내가 무슨 말만 화면 그렇게 화를 내냐?"라고 얘기했다.
8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와 나는 둘 다 명상요가를 만났고, 내가 먼저 변했다. 첫 번째는 엄마의 말을 끝까지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두 번째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화가 나지 않게 되었고, 세 번째는 내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엄마에게 명상요가의 가장 좋은 점은 30년간 수많은 테니스 경기에서 늘 2등에 머물러 있다가 비교적 자주 1등을 차지하는 영광을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크게 와 닿는 것이었을 테고, 그리고 늘 가슴 한편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던 큰 딸과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얼마 전 집에 초대한 지인에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을 했다.
음… 그게 말이지.. 변화라기보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