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에게 찾아온 미니멀리즘

by 라프

#수납공간이 부족해

모두가 잠들었을 새벽이었다. 오늘도 방 안에서 혼자 맥주를 홀짝이던 선미는


'쿵. 쿵. 쿵'


무언가 새벽에 어울리지않는 큰 소리에 작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지나가 현관문 쪽에 있던 2미터가 조금 안 되는 크기의 나무 책장을 주방 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엄마 뭐해?"

"이거 화장실로 옮겨 놓게."

"뭐라고????"

또. 다시. 냉랭한 기류가 시작됐다. 엄마와 딸의 1차전을 예고하는 기운이 선미의 미간을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엄마.. 그거 화장실에 안 들어가. 그리고 나무로 된 걸 물기가 많은 화장실에 두면 어떻게 되겠어? 얼마 안 지나서 곰팡이 필텐데?"

"아니. 그래도 난 이거 화장실에 넣어 볼래."


좀처럼 버리기 힘들어했던 지나에게는 수납공간이 늘 부족했다. 당장 쓰지는 않지만 '언젠가 쓸지도 모르는 잡동사니들'이 곳곳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마트에서 사 온 1회용 팩과 팩을 감싸고 있던 비닐, 1회용 종이컵과 음료가 담겨 있던 플라스틱 음료수병까지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이미 갔어야 하는 수많은 물건들이 있다.

공간은 정해져 있고 보관해야 할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니 당연히 공간이 부족할 수밖에. 화장실 한 켠에는 지나가 키우는 화분 중에 일부가 놓여 있었고 또 다른 한 켠에는 내용물이 없어 비어있는 각종 세제 통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 아이들을 정리해 보겠다는 마음이었다. 얼마 전 선미가 버리겠다고 비워놓은 책장을 화장실로 옮기겠다고 결심한 이유 말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지나보다 큰 물건을 낑낑거리며 옮기는 걸 선미가 도왔겠지만 이번에는 절대 도와주지 않을 거야 하고 굳게 마음먹었다.


'차라리 내가 안 봐야지'


하고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잠시 뒤에 이번에는 망치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 지금 남들 다 자는 시간이야. 도대체 왜 이래?"


얼마 후에 결국 지나도 책장 옮기기를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나에게 찾아온 미니멀리즘

몇 년 후의 일이다. 공부를 마친 선미 여동생이 직장을 구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 기쁜 소식을 들은 지나는 둘째 딸의 졸업을 축하하고 새로운 시작을 돕기 위해 날아갔다. 이 즈음 선미 여동생은 그녀의 인생에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었다. 지나가 가기 전부터 본인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주변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있었다. 취미활동을 위해 샀던 전자피아노부터 시작해 쓸만한 모든 물건들을 말이다. 그리고 가장 큰 쓰레기봉투에 버릴 것들을 꽉꽉 채워서 하루 평균 다섯 봉투씩 갖다 버렸다. 지나가 도착할 무렵에도 버리기는 계속되었고, 결국 이사를 하루 앞둔 선미 여동생에게 남은 이삿짐은 자동차와 캐리어 5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이사하기 얼마 전 선미는 여동생과 대화를 나누다가 선미 여동생이 요즘 자주 보고 있는 한 패션 블로거가 알려준 옷 정리하는 법을 들었다.


어느 날 길에서 전 애인을 만났을 때, 부끄럽게 느껴지는 옷은 전부 버리세요.


오오오. 선미도 듣자마자 매우 공감했다.


"정말! 그렇게 버리면 되겠구나!!"


또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여동생에게 생긴 또 다른 변화 중의 하나는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때의 기준이었다. 예전에는 정말 사고 싶지만 비싼 물건과 꼭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저렴한 물건 중에 후자를 선택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하나를 사더라도 정말 마음에 드는 물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을 구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나는 선미 여동생의 이사 준비를 지켜보면서 굉장히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딸에게 말했다.


"나도 집에 가면 너처럼 다 버릴 거야!!!"

아니 듣던 중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족 단체 채팅방에서 이 소식을 접한 우리는 모두 지나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한 달 여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나는 정말 버리기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10개씩을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나의 미니멀리즘 라이프가 시작됐다. 과연 지나는 얼마나 버릴 수 있을까?


두둥…!


#지나의 이야기

이번에 둘째 딸이 이사할 때 캐리어 5개만 남긴 건 정말 충격이었어. 심지어 이사 가서 당장 써야 하는 그릇도 다 버리고 가더라고. 가서 다시 사는 한이 있어도 다 버리겠다고 말이야. 매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 것들도 내 눈에는 다 필요한 거였는데 얘는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잘도 버리는 거 있지.

근데 캐리어 5개만 가지고 이사를 하니 너무 좋은 거야. 이사 가는 길에 여행도 할 수 있고 말이야. 사실 이사한 둘째의 집을 보고 좀 부러웠어. 넓은 집에 꼭 필요한 가구만 들여놓고 바깥에서 보이는 물건이 하나도 없는 거 있지. 몇 개 안 되는 물건인데 다 문이 있는 수납공간 안에 들어가 있어서 아주 깔끔했어. 그렇게 해 놓으니까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 우리 집도 둘째네처럼 해 놓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도 꼭 그렇게 살아봐야지.

이전 04화아무것도 못 버리는 지나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