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대한 기억

by 라프

어김없이 돌아온 토요일 새벽. 가족 통화가 시작되었고, 각자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공유했다. 그리고 막내 선동이 오늘은 비가 오니까 비에 얽힌 각자의 추억을 얘기해보라고 주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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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의 비에 얽힌 추억

어릴 때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어. 그런데 어느 날은 엄청난 비가 쏟아져서 2층까지 물이 찼지. 똥이 다 넘쳐 공병과 함께 물에 떠 있었어. 집에 먹을 게 떨어져 가는데 슈퍼에는 갈 수도 없었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게 큰 고무대야에 아주 긴 끈을 달고 양쪽 집에서 끌고 당겨서 슈퍼에 있는 음식들을 집으로 날랐던 기억이 나.


# 선동의 비에 대한 추억

나는 누가 우산을 맨날 챙겨줬어. 그래서 우산을 잘 쓰고 왔어. (온 가족 모두: 선동이가 준비성이 대단하네.) 대구 살 때 태풍 시즌이 특히 다이내믹했지. 왜 비가 오는지 알았냐면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샜거든. (맞아맞아, 모두 공감) 지붕에 뭐도 날아다녔어. 모래주머니 같은 것도 있고. 비 오는 날엔 슬레이트 지붕이 밤새 들썩여서 시끄러웠지.


선동: 선미는?


#선미의 비에 대한 추억

나는 글쎄. 특별한 기억이 없는데… 나도 학교에 우산 들고 기다리는 엄마들 보면 부러웠어. 근데 나는 엄마한테 오라고 얘기한 적은 없는 것 같아. 비 맞고 간 날에 집에 엄마가 있었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서 '우리 엄마는 바빠서 우리를 데리러 오지 못하나 보다'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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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끝나고 걸어오는 길에는 시장을 지나서 닭 염통 꼬지를 파는 아줌마가 있어서 돈 있으면 꼭 거기서 꼬치 하나씩은 꼭 사 먹었거든? 비 오는 날에는 장사를 안 하셔서 염통 꼬지를 못 사 먹는 게 아쉬웠어.


# 지나의 이야기

나도 학교 다닐 때 엄마는 가게를 해서 우산 가지고 데리러 못 왔어. 비를 쫄쫄 맞고 가면 가게에 있던 엄마가 "왔니?" 하고 묻는 거지. 가게 하니까 못 오는 걸 이해해도 어린 마음에 우산 들고 오는 엄마가 부러웠어. 비 맞고 집에 오면 화나고 서글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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