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의 어린 시절

by 라프
선미는 평소에 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 좀 더 깊은 대화를 해 보고 싶어 가족 구성원 모두와 인터뷰를 해보기로 했다.

#어린 시절

선미: 엄마 어린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뭐야?

지나: 6살 때 우리 집이 방앗간을 하고 있었어 원피스를 맞춰 입을 정도로 부잣집이었어. 논두렁을 지나 5촌 할아버지 집으로 혼자 놀러 가곤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너네는 쌀밥 먹지?"라고 물어봐. 그러면 "네"라고 대답했지. 방앗간이니까 드럼통에 쌀이 이만큼 쌓여있었어.


선미: 엄마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

지나: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인심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었어. 방앗간 하니까 손님이 오면 물김치랑 밥을 지어줬어. 큰 이모 아들이 고등학생 때 학교 갔다 오면 우리 엄마가 해 준 동치미 국수가 정말 맛있었데. 그런데 우리 아빠한테는 바가지 박박 긁는 마음에 안 드는 아줌마였데. ㅎㅎㅎ


선미: 어릴 때 이모랑 삼촌들이랑 있었던 일 중에 가장 좋았던 기억은 뭐야?

지나: 너네 큰외삼촌이 고등학교까진 정말 착했어. 그런데 큰 사촌오빠가 동생들을 두들겨 패라고 교육을 잘못시켜서 성질이 나빠졌어.

선미 여동생: 엄마는 우리를 너무 많이 팼어. 내가 테니스 안 한다고 나한테 폭력 쓴 건 잘못이야. 엄마가 강요하면서 하라는 걸 안 한다고 때리는 건 아니지 않아?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지나: 그건 미안, 엄마가 잘못했어.

선미 여동생: 사과 받아들일게.


선미: 그리고 또 좋은 기억은?

지나: 남동생이 어릴 때 나를 굉장히 좋아했어. 어릴 때 용돈을 줬는데 나 주려고 싸구려 목걸이를 사 왔어. 내 것만 사온 거지. 정말 고마웠어.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


선미: 엄마는 어릴 때 어떤 아이였어?

지나: 어릴 때 얼굴이 노랗게 뜨고 배가 튀어나올 정도로 굉장히 아파서 사람들이 나를 '병 조아리'라고 했어. 그리고 '곧 죽을 애'라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살아서 너네 엄마가 됐어.


선미: 어릴 때 꿈은 뭐였어?

지나: 체육 선생님이 하고 싶었어. 내가 운동을 좋아하니까. 고등학교 선생님이 미달된 체육학과에 넣어주겠다고 했데 등록금이 없어서 못 갔어. 지금처럼 학자금 대출 같은 게 있었으면 갔을 거야.


선미: 엄마가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은 뭐라고 생각해?

지나: 우리 아이 셋을 건강하게 잘 키운 거. 처음 결혼할 때 애들을 다 서울로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게 하나씩 다 이루어졌어.

선미: 클 때 엄마가 나한테 서울 보내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없는데?

선미 여동생: 아니야. 난 엄마가 맨날 서울 가라고 얘기해서 대구에서 대학 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지나: (선미 여동생) 졸업 여행 갔다 와서 담임한테 대구에 있는 학교에는 원서 하나도 안 넣고 무조건 서울로 갈 거라고 얘기했어.

선미 여동생: 서울로만 원서를 3개 쓰니까 담임이 '너 같은 애 처음 본다'라고 그랬어.

지나: 남들이 애들 2명 외국에 가 있다고 하면 알부자인 줄 알아. 웃기는 게 아이들이 외국 갔다가 면 부러워하면서 자식들을 자기 울타리 안에서 놓지를 못해. 나는 내 울타리에서 아이들을 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선미: 지금까지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지나: 엄마가 중학교 때 사당에 살았거든. 결혼 전에 사당에 살았는데 그때는 서문여고가 호박밭이었어. 부동산에 눈을 조금만 일찍 떴으면 사당에 땅을 사놨을 텐데. 결혼 후에도 대구 살면서 돈이 좀 있을 때 서울에 집을 하나 사놨어야 했어. 그때는 집 걱정을 평생 안 할 줄 알았지. 집은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선미: 엄마 결혼 전에는 무슨 일 했어?

지나: 스무 살 조금 넘어서 취직하려고 친구랑 돌아다녔는데 그때는 젊은 여자들이 다방 레지나 버스 안내를 많이 했어. 그런데 그런 일은 내 수준에 안 맞다고 생각해서 아예 보지도 않았어. 그러다 들어간 사무실이 국민서관 북 세일즈를 하는 곳이었어. 6개월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영업에 도가 트였어. 계몽사로 옮겨서 계속 책을 팔았는데 돈을 많이 벌었어. 은행 차장 월급이 15만 원일 때였는데 계몽사 가서 15일 일하고 첫 월급으로 25만 원 받아서 쌍꺼풀 수술을 한 거야. 첫 월급이 25~30만 원이었는데 지금의 250만 원 정도야. 돈맛 보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

선미 여동생: 어떻게 영업을 그렇게 잘했어?

지나: 나는 사람을 한번 만나면 100%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었어. 그때 내가 좀 젊고 예뻤거든. 그때는 여자 세일즈맨이 없었어. 엄마들이 구로동에서 부업을 많이 했는데 엄마들한테 가서 얘기했지.


"돈 벌어서 뭐해요. 자식 위해서 사는 거 아니에요? 하루 300원씩만 모아봐요."


구역을 정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들러서 놀았어. 모든 서점의 책 카탈로그를 가지고 다녔어. 10만 원짜리 책 한 세트를 2~3만 원에 사서 엄마들한테 30% 할인해주고 팔았어. 5세트는 20만 원에 팔았어. 그때 돈 진짜 많이 벌어서 외할머니 많이 갖다 줬어. 한 번은 외할머니가 곗돈을 날렸다고 누워있는 거야. 얼마냐고 하니까 30만 원이래. 내가 그 자리에서 30만을 줬지.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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