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병이 도졌다

by 라프

# 신입사원의 등장

우여곡절 끝에 꽤 똑똑한 신입사원이 입사를 했다. 복잡할 것 같은 업무를 한 번 말하면 척하고 알아들어주니 참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믿고 일을 완전히 맡기려는 찰나에 실수가 하나씩 튀어나왔다. 결국에는 한 달 간의 사이클이 세 번 정도는 돌아야 본인이 맡은 업무에 완전히 익숙해질 것 같다.


영업팀 직원이 그만두기 전에 나는 자유롭게 일을 하는 편이었다.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면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에 적어 둔다. 원래 맡은 업무는 온라인 마케팅. 종이책에 담겨 있는 기사를 각 담당 기자들이 홈페이지에 옮겨 놓으면 그것들을 회사에서 운영하는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 퍼 나르는 업무를 한다.


그렇게 기사를 나르다 보면 다른 기사들도 발견하게 되고, 회사에서 부족한 부분이나 추가적인 온라인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하는 여러 가지 연간 행사들을 진행하는 데 있어 때에 맞추어 할 일들을 챙기는 것도 그만둔 영업팀 직원과 함께 했던 일이었다.


사실 누구도 내 업무에 터치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사사건건 물어보지도 않았고, 가끔 부장님이 내게 빨리 올려줬으면 하는 기사 링크를 전달해 주거나 가끔 제안서를 만드는 등 필요한 일이 있으면 시키는 정도였다. 부장님이 끊임없이 챙기고 채찍질하는 대상은 그만둔 영업사원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업무를 부장님이 시켜서 했는지, 아니면 시간은 지나가는데 아무 성과가 없어서 보다가 참지 못한 부장님이 그렇게 하나하나 다 챙기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빈자리에 가고 보니 부장님이 시키는 일을 처리하고 재무팀과 소통을 하다 보면 하루 일과가 끝나버리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영업 담당 직원이 그만두고 그 자리에 업무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신입사원이 오자 새로운 일을 가르치는 것과 그 직원이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일까지 해야 하는 업무가 더해졌다.


#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숨 막히는 매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서서 있든 운 좋게 앉아서 있든지 간에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와 쉴 새 없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로 지친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따라 쉬어준다.


그렇게 쉬다 보니 계속 이 질문이 나를 찾아왔다.


이 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점심시간을 제외한 8시간의 근무시간 중에 6번은 눈을 감고 숨을 쉬며 숫자를 100까지 쉬거나, 한 동작 요가로 잠시라도 업무를 멈추고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실천해 왔는데 옆자리 직원이 그만두고 그 업무가 오롯이 내게 오면서 하루 6번은커녕 3번도 쉬는 시간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쉬지 못한 만큼 퇴근길은 더욱 지쳤고, 방전되어 집에 가면 그대로 뻗어 버리는 일상이 늘어났다.


# 내가 얘기하지 않았나요?

신입사원의 실수가 잦아졌다.


메일을 보내거나 전자결재 올릴 때 참조를 걸어주세요.


라고 얘기했지만, 한 번 이후에 까먹고 계속 안 보내고 있다. 그러다가 실수가 발견되면 실수에 대한 수습은 내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매일 아침 신입사원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 리스트를 적어서 준다. 물론 그것 외에도 중간중간 계속 일이 생기니 신입사원도 정신 차리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다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밥 먹는 도중에 신입사원에게 전화가 왔다.


"아, 네. 9월부터는 아니시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통화의 내용을 듣고 직감적으로 8월까지만 광고를 진행하기로 한 광고주임을 알았다. 전화를 끊고


"ㅇㅇㅇ 회사 담당자예요?"

"네."

"9월 광고 리스트 정리해서 미리 보여달라고 얘기했을 텐데… 그리고 그 업체는 전에 8월까지 광고한다고 얘기했었고요."

아…..


어리둥절.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신입사원의 외마디. 그리고 우리는 말없이 밥을 먹었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수습 기간이 3개월이었던가? 지금처럼 하면 3개월 뒤에 못 볼 거라고 협박을 할까? 그러면 좀 정신을 차리려나."


온갖 생각들이 밥을 먹는 그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아마 같은 시간 맞은편에서 밥을 먹던 신입사원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먹었을 것이다. 말없이 점심을 번개처럼 먹은 뒤에 각자 계산을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때 신입사원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과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커피 한잔 하실래요?"

"그래요."


역시 이번에도 직감적으로 신입사원이 무슨 말을 할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앞에 두고 신입사원은 잠시의 뜸을 두고 직감했던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었다.


"저 친구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같이 하자고 하셔서,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영업직으로 지원했지만 사무실에서만 있는 게 답답하기도 했고, 자기가 여기에서 이 업무를 10년 하고 나가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까지 여느 직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 과연 나는 여기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신입사원의 말에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제 챙길 사람이 없어졌다는 홀가분한 마음과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막막한 마음. 신입사원이 그만두겠다고 했던 날 오후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입사원과 나의 하루도 숨 가쁘게 지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지금 하는 업무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갑갑하게 느껴졌다. 사실 퇴사를 생각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어제 부장님과의 대화였다.


"우리 행사 협찬 메일 보낸 곳에 확인 연락해 봤어?"

"아니오."

"해봐야 하지 않아? 내가 확인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


그때의 내 반응은 내가 신입사원을 마구 쪼아대던 때 신입사원이 내게 보인 반응과 99.9% 일치했다.


'꼭 해야 하나요? 언제 말씀하셨죠? 기억이 잘… 그리고 정말 하기 싫은 걸요.'


뭐.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사고 회로의 전개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던 같다. 그리고 순간 보험 영업을 했던 첫 직장에서 그만두던 때와 비슷하게 가슴이 매우 답답해졌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영업직인데 사람들 목소리도 듣기 싫고, 그래서 전화하기 싫어했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너무 싫었던 그때. 사람을 만나야 일이 되는데 만나기 힘들어 마음의 병을 얻었던 그때 말이다.


# 퇴사를 생각하며…

꽉 채운 3년이 지나고 4년 차에 접어들었다. 퇴사를 생각하자 '꽤 오래 다녔네'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의 신작 <오티움>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는 삶이 최고 효율로 발휘되는 상태를 가리켜 '몰입'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했다. 그가 40여 년간 몰입에 대해 연구한 바로는 행복에도 등급이 있다고 한다.


가장 낮은 등급은 아무런 노력 없이 순수한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것이고 조금 더 상위의 행복감은 풍경이 좋은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노력은 있지만 그 환경이 사라지면 만족감도 사라지는 수동적인 행복이다. 또 이보다 더 상위의 행복감은 노동이 끝난 후의 휴식이나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이다. 그리고 가장 상위의 행복감은 몰입을 통한 성취 경험이다.


하지만 저자는 일에서 몰입을 느낀 적이 얼마나 있는지 묻는다. 자율성이나 전문성이 잘 보장되는 직업이나 근무 환경이 아니라면 사실 일에서 몰입을 느끼기란 쉽지 않으며 아무런 권한이나 자율성도 없이 시키는 일만을 해야 하거나,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밥 먹듯이 되풀이해야 하는 경우라면 정말 답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일에서의 몰입이란 의도와 상관없이 자칫 자기 착취로 이어지기 쉽다고 했다.

갑자기 바뀌어 버린 업무 환경에서 나는 왜 이렇게 퇴사에 대한 욕구가 커졌는가를 생각하다가 <오티움>이란 책에서 그 답을 발견했다. 자율성이 매우 보장되는 업무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몰입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에 3년이란 시간을 큰 무리 없이 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완전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 시키는 업무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매일매일 퇴사에 대한 열망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아마 지금의 상황이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퇴사를 결정하게 될 것 같다. 신입사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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