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과거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리를 스치듯 지나며' 이 순간을 위해 그 일들을 겪어 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때가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의식 혁명>이란 책에서 의식은 자동적으로 그것이 순간순간 최고라고 여기는 것을 선택하며 우리들 각자는 가장 정교한 인공지능기계보다 훨씬 앞선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데 어느 때건 이용할 수 있는 그 컴퓨터는 바로 인간 마음 자체라고 했다.
2012년 더운 여름의 어느 날 합정역 근처에 있는 물고기 카페에서 소다 언니를 만났다. 살롱. 9 오픈 멤버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던 그 날이 생생하다.
신치야, 같이 하자!
이 말을 듣자마자 짧게는 한 달 길게는 5달 정도 다녔던 여러 회사와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카페 주말 알바까지 지난 1년 반 동안 일했던 곳들과 방황하는 그 시간 동안 했던 여러 가지 활동들이 떠올랐다.
5개월간 일하다가 더 이상 월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나오게 된 벤처 기업,
3개월간 다녔던 라임을 수입해 유통한 라임 팩토리,
8월 이탈리아 여행 후 한 달 반 동안의 백수생활,
4개월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서 일까지 해보고, 결국 5개월 만에 뛰쳐나온 공기업,
한 달 반 동안 함께 했던 아티스트 웨이.
영업을 돕기로 했다가 결국 흐지부지되어 일을 하지 않게 된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하는 노란 코끼리.
그리고 밥벌이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하며 즐거운 실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내가 만든 회사 '실험하는 아이디어 컴퍼니'
나처럼 우울의 늪에 빠져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팟캐스트 방송 <정신건강 회복 프로젝트, 성철스님 불탄 법어 독송>
‘독립해서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나 돈이 없어 시작하게 된 무모한 도전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소셜 펀딩 프로젝트>
"직업, 연봉, 집안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아닌 '그 사람'만 보고 사랑할 사람을 만날 수는 없을까?"를 실험해 보기 위해 해 본 <러브 매칭 프로젝트>
소다 언니에게 살롱. 9 오픈 멤버 제안을 받았을 때 두 가지 면에서 운명이라 느꼈다.
하나는 '카페'라는 공간의 동시성이었다. 요리를 하는 것도, 맛있는 음식들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친한 선배의 지인이 오픈한 카페에서 우연히 카페 알바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살롱 9의 오픈 준비 기간과 주말 카페 알바를 하고 있는 시기가 맞물려 살롱. 9의 카페 메뉴 등을 정하는데 일하던 카페 매니저에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실험 공간'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동안 혼자서 개인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실험을 했는데 이제 공간이 생기면 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살롱. 9'의 제안을 받았던 2012년 7월 홍대의 물고기 카페에서 나는 내가 '운명의 길 위에 서 있음'을 처음으로 느껴보았고 무척 설레었다.
살롱. 9가 정리될 때쯤 다음 일자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기획을 주된 업무로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다른 업무를 하게 된다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찾다가 면접까지 보게 된 세 곳이 있다.
서울문화재단.
일상예술 창작센터.
개인들 간의 상거래 장터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헬로마켓'
이때 즈음 명상요가 지도자인 짝꿍이 소그룹으로 요가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요가 수업을 개인적으로 받고 싶어 하는 지인이 있어 같이 찾아가게 된 홍대입구역 근처의 '어슬렁 정거장 카페'. 한국 여성 민우회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분들이 나와서 만든 그리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였다. 여성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여러 프로그램, 교육, 상담 등을 진행하기 위해 그리다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어슬렁 정거장 카페는 이 협동조합에서 기획하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공간이었다. 2014년 1월에 오픈해 카페가 안정화시키는 몇 달간 공간을 만든 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여력이 없는 상태인 그때, 내가 그곳에 방문하게 된 것이다.
마침 그리다에서는 기획자가 필요했고, 같이 일을 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력서를 보내고 살롱. 9를 정리하기 3일 전, 면접을 보았다. 전날 다른 곳에 이력서를 보낸 상황이었지만 그리다 면접을 보는 그 자리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주일의 쉬는 시간을 가진 뒤에 그리다 협동조합의 어슬렁 정거장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출근을 했더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꽤 많았다. 그리다 협동조합의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뭐라도 좋으니 무엇이든 기획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어슬렁 정거장 카페를 찾게 하자'는 것이었다. 둘째 날부터 시작된 기획안 작성과 회의. 홈페이지도 무언가 손 볼 데가 많았으나 홈페이지 개발자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했다. 홈페이지 관리자 로그인 페이지를 열었더니, 다행히 살롱. 9에서 스스로 고용하는 자들 파티를 기획하며 배웠던 워드 프레스를 이용해 만든 홈페이지였다. 초보자 정도만 돼도 몇 가지는 수정할 수가 있었다.
하루 종일 홈페이지를 바꾸느라 이것저것 클릭하다가,
'아, 내가 <스스로 고용하는 자들 프로필 전시>를 하기 위해 워드프레스를 배웠는데, 결국 여기에서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뭐, 어찌 됐든. 왠지 이번에도 내가 가야 하는 길로 잘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상과 글쓰기를 함께 하게 되면서 마치 내 영혼이 내 몸에서 빠져나와 나를 지그시 바라보듯이 세상을 왜곡시키는 시선과 나만의 경험으로 생긴 아집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경험이란 필터로 세상을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게 될수록, 내 마음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
2014년 5월 26일에 쓴 글을 다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