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야 지난 할머니 장례식 때 오래간만에 만나 우리는 대화를 나눴지. 그때 한 번 대학 입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고 있던 네가 말했어.
"누나 나는 대학을 도대체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냥 돈이나 많이 벌 수 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물었지.
"그래? 모든 사람이 굳이 대학을 갈 필요는 없지. 그래서 네가 말하는 '많이'는 한 달에 얼마 정도 벌면 좋을 것 같아?"
"음… 500만 원?"
"그래서 너는 뭘로 돈을 벌고 싶은데?"
"글쎄… 하고 싶은 건 딱히 없는데, 돈을 많이 벌려면 뭘 해야 할까?"
다시 내게 되물었지. 지유야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말이야. "얼마를 벌 수 있느냐 보다는 무엇으로 돈을 버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 네가 원하는 것처럼 '아무 일이나' 하면서 '돈만 많이' 벌 수 있는 삶도 있지. 그런데 어른들이 그런 말 하잖아.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죽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살았지만,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긴 인생을 살지는 아무도 몰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왕이면 '재미있는 삶'을 살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
너보다 겨우 몇 년을 앞서 살아가고 있다고 지유 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한 번 해 볼까 해. 무슨 이야기냐고?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야. 네가 그토록 부러워하고 공경에 마지않는 스티브 잡스, 이건희 회장 혹은 빌 게이츠처럼 엄청난 부자가 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네가 그토록 가기 싫어하는 대학 안 나온 사람이 성공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
내가 하고자 하는 나의 이야기에 결론이란 없어. 단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보여줄 거야. 내가 이것저것 '실험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말이지. 나의 삶에서 네가 느꼈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특별하게 없어. 네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하나라도 느끼고, 니 삶에 아주 작고 미묘한 변화라도 만들어 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 될까? 나도 기대가 되는구나.
지유야, 나의 대학생활이 어땠을까? 비록 학점은 낮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 봤기 때문에 아주 만족스러웠어. 첫 직장인 보험회사? 역시 만족스러웠지. 물론 네가 원했던 것처럼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좋았거든.
직장을 다니면서 '2막'이란 책을 보고 너무 좋아서 '함께 꾸는 꿈 너머 꿈'이란 모임을 만들어서 내 인생 최고의 친구들을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어. 이것이 내 인생에서 나 혼자 기획하고 실행했던 '실험'의 시작이었어. 아니, 두 번째구나. 첫 번째 실험은 고등학교 때 했던 '윈엠프 방송'이었다. 물론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했던 신분'이었기에 엄마라는 큰 장벽에 부딪혀 얼마 못 가 방송을 그만뒀지만 말이야. 대체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오던 내게 첫 직장에서 '잘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스물아홉이 되던 2011년은 내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한 해가 되었지. 1년간 회사를 5군데를 옮겼고, 3년 만에 합격한 변화경영 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 덕분에 내 인생 최고의 스승들을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어. 그리고 1년의 과정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끈기 없는 내가 연구원이 그토록 되고 싶었던 이유는 결국 '나 자신'이 궁금했기 때문이었음을 발견하게 되었지. 이렇게 방황을 하고, 2012년 봄. 내게 또다시 큰 고민이 시작되었어.
'나는 이제 뭐 해 먹고살지?'
푸르덴셜이란 한 회사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 나온 직후에도 같은 고민을 했지만, 그때는 5개의 회사를 전전하며 좀 더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나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난 후라 그런지 고민의 깊이가 조금 달랐던 것 같아. 내가 즐거웠던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 나의 강점과 기질 등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 그리고 나의 멘토이자 사부이신 구본형 선생님이 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했어.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세 개가 나왔는데 말이야.
하나는 예전부터 꿈 중에 하나였던 나의 사업을 하는 건데, 회사 이름이 튀어나왔지. 2막이란 책을 보고 바로 모임을 만들었던 나는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을 해봐야 하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어. 아이디어가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샘솟는 편이고 말이야. 그래서 "실험하는 아이디어 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
첫 번째 프로젝트는 나처럼 스펙 딸리는 아이들의 취업을 도와주기 위한 '인재 박람회'를 선택했어. 그리고 두 번째는 고등학교 때 잠깐 했던 윈엠프 방송을 떠올리며 '팟캐스트'를 활용한 개인 라디오의 디제이가 되고 싶었어.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채널이 될 수 있으니까. 직접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방송을 통해 미지의 사람들과 만나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자유'와 연결된 삶을 위해 필요한 직업이야. 노트북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 나의 작업실이 될 수 있는 '작가'라는 직업이지.
이렇게 나를 찬찬히,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나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나만의 직업 이름은 바로 '실험하는 아이디어 컴퍼니 프로듀서'였어. 뭔가 있어 보이지 않니? ㅋㅋ
뭔가 있어 보이고, 멋진 이름도 생기고 하고 싶은 일들도 정해졌는데, 바로 시작했을까?
아니, 못 했어. 이 후로 몇 달간 계속 방황하고 고민했어. 그러다가 실험하는 아이디어 컴퍼니에 첫 번째 프로젝트가 우연한 기회로 다가왔지. 그건 바로 '책 홍보 마케팅 기획'이었어. 내가 쓸 기획안이 실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했지만, 제안서라곤 단 한 번도 써 본 적도 없는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잖아? 그래서 전자출판을 시작하고, 경영에도 일가견이 있는 선배의 도움을 받으면서, 첫 번째 기획안이 완성되었어. 기획안을 쓰는 과정에서 팟캐스트 광고를 기획했거든. 그때 재미있게 듣고 있고, 꽤 많은 청취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던 팟캐스트 진행자와 연락을 하게 되고, 우연히 두 번째 프로젝트인 '팟캐스트 광고 에이전트'가 시작될 수 있었지. 또 하나의 '밥벌이 프로젝트'가 되어 준 커피 영업도 빼놓을 수 없겠다. 벤처기업에서 영업할 때 알게 된 카페 사장님이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그분에게도 변화들이 생겼는데, 이번에 드디어 서로 타이밍이 맞아 함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거지. 그래서 세 번째 밥벌이 프로젝트는 '커피'를 파는 걸로 결정!
이런 일들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재미있겠는데?'라고 생각할 법한 아이디어들도 떠올랐어. 그 프로젝트들에는 '실험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지. 나를 포함해 주변의 외로운 싱글 영혼들을 위한 '러브 매칭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나의 정신건강 회복을 위해 읽기 시작한 성철스님의 법문을 읽어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나만의 팟캐스트도 드디어 개국했지. 내가 만든 방송을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볼 수 있는 그 기분이란! 정말 짜릿하다! 누가 내 방송을 들어줄까? 생각했는데, 다운로드가 어느새 200을 넘어서고 있어. 전혀 모르는 누군가와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한 것 같아. 완전 신나는 일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내가 벌이고 있는 실험들이야. 지금 다른 팟캐스트도 하나 준비 중이고, 이후에 다른 실험들도 현재 나의 환경에서 실험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다 해 볼 생각이야. 이렇게 닥치는 대로 실험하고 나서 진짜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냐고?
내가 이렇게 다양하게 벌리는 이유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통해서 '돈이 나오는 일들'을 여러 개 만들고, 계속 확장해 나갈 생각이야. 실험하는 프로젝트들도 처음 시작은 '재미'이지만 돈벌이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할 생각이고. 궁극적으로 이렇게 이것저것 하다가 '평생 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어. 또 다른 꿈이 있다면 2년 내에 그토록 꿈꿔왔던 '항공 유학'을 훌쩍 떠나는 것?
어때? 지유야 내가 들려줄 나의 실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오니? 그랬으면 좋겠구나. 결론은 나도, 너도, 부처님도, 하나님도 모른다. 이 실험을 하는동안 좌충우돌 생생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면 좋겠다~! 나의 이야기가 우연히 파일럿이란 꿈을 찾게 해 준 '승무원 양성학원의 스팸메일'처럼 누군가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아. 단 한 명이라도.
2012년 7월 24일에 쓰다.
8년이 지난 오늘. 달라진 꿈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꿈도 발견하다.